프롤로그
연재 하나를 마치면 나는 확실히 선명해졌다. 하지만 자신을 드러낸 글쓰기 과정은 일종에 진을 빼는 여정이었다. 헝클어진 서랍을 정리하듯 헤픈 내 역사를 낱낱이 들어 올리던 나는, 그것이 내 정체성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연말을 보내고 연초를 맞는 동안 나는, 내 마음을 가만히 두고 싶었다. 한편으론 내 헤픈 마음의 진정성을 시험해 보고 싶기도 했다. 매사 스스로 정한 높은 기대치 위에서 현기증을 일으키던 내게, 마음 가는 대로 해 볼 자유를 주고 싶었다.
우선, 반드시 할 것! 이란 단서를 제외하고 들여다본 내 일상은 무척이나 단조로웠다. 그 정도면 평화로웠으나, 종종 무력함이 손님처럼 찾아왔다.
그런 내게 하루 두 번, 새벽 6시 저녁 6시에 길고양이들의 밥을 챙기는 일상은 삶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역시, 나는 헤픈 마음을 땔감 삼아 삶을 유지하는 게 분명했다.
헤픈 마음은 세상을 바꾸겠다는 다짐이 아니다. 그보다는 오늘을 덜 외롭게 건너고 싶은 소망에 가깝다. 그 마음은 타인 삶이 내 삶과 무관하다는 말에 동의하지 못했으므로, 간혹 유난스러운 사람으로 치부되거나 치러야 할 대가를 감수하느라 불안을 이불처럼 덮어써야 했다.
지난 [헤픈 마음 1]에서 나는, 누군가를 지켜보고 외면하지 못해 헤프게 마음을 쓴 순간을 소개했다. 그 마음은 대부분 다정함이나 경계 없는 호의로 표현됐다. 하지만 그 뒤엔 의도치 못한 오해가 덤으로 따라붙고, 자기 소모라는 대가가 선물처럼 들려있었다. 관계 안으로 들어갈수록 헤픈 마음은 훨씬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연재 말미에 이르러선 헤픈 마음을 나의 정체성으로 받아들였다. 그것이 나를 나답게 만들었다고 말해 본 첫 기록이 된 셈이다. 그러나 연재를 겨우 마치고도 질문은 끝나지 않았다. 헤픈 마음은 과연 어디까지 미담이고, 언제부터는 무모함일까. 개인의 선의는 어디까지 허용되는가.
빠른 속도와 효율을 우선시하는 세상은 우리가 미처 생각할 틈 없이 편리함을 제공했다. 당연히, 느리고 불편한 것들은 세상의 시스템 밖으로 밀려났다. '편리함'이란 양지 뒤에는 누군가의 과로와 침묵, 희생이 전제 됐지만, 눈이 부신 우리는 밝은 빛에 가려진 어둠을 볼 수 없었다. 설사, 우연히 그것을 봤더라도 자신의 일이 아니라거나, 나 하나 변한다고 세상이 달라지겠냐며 자신을 평가절하했다.
헤픈 마음은 바로 그 순간에 멈칫하는 태도였다. 불편해질 것을 알지만 동의할 수 없는 일, 그럼에도 한 발 더 다가서는 선택. 그것은 세상을 바꾸겠다는 거창한 결심이 아니고, 적어도 방관자는 되지 않겠다는 작지만 고집스러운 결의였다. 또한, 나 하나로 달라질 세상의 일부를 믿는 마음이었다.
[헤픈 마음 2]에서는 그런 마음이 관계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간 이야기를 기록하려 한다. 도움과 개입의 경계에서 망설였던 순간.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멈추지 못했던 선택과 그로 인해 생긴 균열. 전가된 책임과 다시 돌아와 희망을 건네는 존재들의 이야기 말이다.
분명한 것은 이 글은 용기나 선의의 서사가 아니다. 그저 불안을 안고도 등을 돌리지 못한 순간의 기록이다.
이제 보름간의 휴가는 끝났고, 나는 다시 가장 나다웠거나, 나를 나답게 만든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헤픈 마음이 정답일 수 없는 세상이란 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우리가 끝내 외면하지 않기로 선택한 순간이 모여 이 세상을 아주 조금 덜 춥게 만든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다.
이 연재는 헤픈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고, 한번 더 손을 내민 사람의 이야기다. 어쩌면 그는 효율이란 시스템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문 밖에 선 사람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