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한 딸들의 외식 권리

“아직 시집도 안 갔는데 웬만하면 사 먹지”

by 세모아저씨
“아직 시집도 안 갔는데, 웬만하면 사 먹지.”

장모님의 말은 처가 가족 카톡방에서 흘러나왔다.

사위는 없는 그 방에서, 결혼을 앞둔 장녀를 향해 던진 말이었다.

살림을 알려주시던 손길 사이로, 그 말이 스며들었다.

단순한 편의의 권유가 아니었다.

결혼하면 안 하고 싶어도 결국은 요리를 해야 한다는 것, 가사는 시작하는 순간 끝없이 이어지는 고생이라는 것을 이미 몸으로 아신 엄마의 마음이었다.

그래서 결혼식 전만큼은 딸이 조금이라도 덜 고생했으면, 그 시작을 늦출 수 있다면 늦추게 하고 싶으셨던 것이다.


처가댁 식탁에 앉아 있으면 장모님은 서울 예비사위에게 늘 “뭘 더 줄까? 더 먹어. 응?“하고 연신 물으셨다. 이미 그릇은 채워져 있었지만, 장모님 마음은 늘 비워지지 않았다.

식사 후에도 정갈하게 깎아낸 과일과 작은 디저트를 내어주시며 “더 먹어, 맛만 봐”라며 권하시곤 했다.

그분의 손길은 끊임없이 채워주려는 사랑이었다. 주어도 주어도 부족한 것만 같은 엄마 마음.


멀리 서울로 시집보낸 딸을 보고 싶으시면서도

“뭘 자꾸 와. 바쁜데 “ 라며 애써 담담하게 말씀하셨다.

그 말속에는 그리움과 아쉬움이 동시에 묻어 있었다.

그러면서 나를 향해 “우리 사위가 귀한 집 자손이지”라고 하시는 말씀의 무게를 나는 가장으로서, 남편으로서 기꺼이 짊어져야 한다.

“제가 귀한 집 자손이라 귀한 집 딸을 만난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대답하며 다시 한번 유념하기로.


식탁 위 당신의 그릇보다 딸의 그릇보다 사위의 밥그릇, 국그릇, 자주 손이 가는 찬에 가는 젓가락에만 머물던 장모님의 눈빛 속에서, 결혼이란 단순한 제도가 아니라 서로를 귀하게 여기며 살아가는 과정임을 다시금 깨달았다.


가사는 어느 철저히 나누어진 규율이 아니라 상대의 피곤을 기꺼이 덜어주고자 하는 솔선수범으로, 사랑으로, 공동으로 할 때. 그것은 가사노동이 아니라 진짜 결혼 생활이 되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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