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딸기

아빠도 덕분이도 미래의 패셔니스타

딸기 #53

by 오세준

-덕부니는 패셔니스타!
-아빠는 패션고자 탈출!

전자는 양육목표고 후자는 개인목표다.

그렇다. 나는 패션고자다. 하지만 내 딸은 패셔니스타로 키우고 싶다. 그것은 마치 오사마 빈 라덴이 자기 아들은 오바마로 키우겠다는 것과 같다. 하지만 나님위키에 불가능이란 없다.

고백하자면, 난 추리닝성애자다. 게다가 등산복도 좋아한다. 무려 아버지꺼도 물려 입는다. 참고로 우리 아버지도 추리닝과 등산복을 사랑하신다(꼭 사고나서 어머니에게 욕 먹는다). 이런 것도 유전인가? ㅠㅠ

이게 끝이 아니다. 옷을 사면 기본 10년이다. 구라 아니다. 이번에 유민님(부인, 32)이 한꺼번에 버린 옷들 중에 나 고등학생때 입었던 20년 가까이된 옷도 있었다. 아쉽다 생활사 박물관에 기증했어야 하는데...


그렇다고 옷을 아주 못입는건 아니다. 결혼 전 연애할 때 한껏 멋을 내 입고 나가면 유민님은 '노력했네'라는 평을 해주셨다. 그냥 봐줄만은 한 수준이다.

패션테러리스트는 확실히 아니다. 그렇지만 패션센스가 거의 없고 의지도 부족하고 노력도 안하니 패션고자가 맞다.

그렇다면 왜 난 패션고자인가? 오고가는 지하철 속에서 장시간 고민했다. 그 결과 세 가지 원인을 발견했다.


1. 체형
다리 길고 팔 길고 둘 다 얇다. 골반 크다. 가슴 두껍다. 어깨넓이는 보통. 그리고 오다리. 성장기 내내 그러했다. 긴팔 긴다리 땜시 항상 옷을 한 치수 크게 입었다. 친구들은 그런 나를 두고 한 마디로 정리했다.

"농부"

고등학교 친구들은 날 두고 농사꾼 패션이라고 불렀다. 대학교 친구들은 나를 두고 넌 옷은 브랜드를 입는데 브랜드 같지 않다고 말했다.

그렇다, 난 모든 옷을 자연 속의 농부가 입는 옷처럼 민든다. 체형이 그렇다. 몸에 달라붙게 입으면 팔이나 다리가 항상 짧았다.

참고로 내 팔은 강동희만큼 길다.

2. 무관심
패션에 대한 지독한 무관심(혹은 혐오)는 아마 지식인 특유의 허세가 아니었나 싶다. 농담이 아니라 난 국민학생 시절부터 내가 지식인이라고 생각했다(네이버 지식인 아님).

그리고 지식인은 겉으로 보이는 패션따위는 신경쓰지 않고 오로지 내면의 수양과 지식의 연마에 힘을 써야 한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중2병에 일찍 걸린듯하다.

암튼 패션을 하위문화 정도로 취급한 덕분에 나의 용돈은 전부 서점행이었다. 옷은 내 돈주고 산 적이 없다. 농구화를 좋아했지만 패션은 부차적이고 쿠셔닝이 더 중요했다. 디자인은 언제나 뒤고 옷이라는 제품의 기능과 효용만이 중요했다.

무관심, 패션에 대한 나의 태도를 이보다 더 잘 축약할 순 없다. 그리고 보통의 경우 무관심은 무능으로 귀결된다.

3. 저항
대략 중딩때 패션을 추구하는 것은 돈있는 자본주의자들의 한심한 작태이자 과시성 소비라고 보았다. 중이병에 좌빨, 그것이 나였다.

우리집 책장엔 무려 맑스의 사상이 자세히 친절하게 심지어 우호적으로 묘사된 이원복(그 이원복이 맞다)의 '자본주의 공산주의'책과 더불어 말지 창간호부터 최신호까지가 쭈욱 꽂혀 있었고 내 발밑엔 한겨레 신문이 굴러다녔다.

자본주의가 미웠다. 패션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의 욕망을 부추기고 살살 꼬드겨 그 돈이면 할수 있는 훨씬 가치있는 일 대신 하찮은 옷쪼가릴 사게 만드는 체제가 미웠다. 그래서 패션에 저항했다. (내가 쓰면서도 손발이 오그라든다...)

그렇게 나는 점점더 패션고자의 길로 한걸음 한걸음 나아갔다.


나는 왜 이 길에 서 있나? 이게 정말 나의 길인가? (feat. GOD)



이상의 이유들 덕분에 난 의도적으로 패션을 멀리했고 그 결과 내가 입는 옷=어머님이 사주신 옷이 되었다. 그 속에서 옷을 고르는 안목이나 취향이 발달할 여지는 없었다. 비록 나의 선택이기도 했지만 돌이켜보면 참으로 치기어린 어리석은 선택이기도 했다.

패션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알려고 하지 않았고 사랑하려하지 않았고 표현하려하지 않았다. 지금은 안다. 그것이 사실 두려움이었음을. 옷으로 나를 표현하는 것이 무서웠던게다. 그것으로 남들이 나를 보는 것이 싫었던 것이다.

지금은 그 아이를 이해한다. 옷이 주는 아름다움과 즐거움과 편안함을 온전히 즐기지 못하고 검은색 곤색 회색 추리닝 뒤로 숨은 아이는 그저 옷입기가 옷으로 나를 드라내기가 두려웠을 뿐이다.

그리하여 먼 길을 돌아 지금 여기에서 나는 다시 편안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와 푸른색 등산복을 입고 자리에 누워 이 글을 쓴다(응?).

중요한 것은 두려움을 대물림하지 않는 것이다.

내 아버지는 가난했던 학창시절 비싼 브랜드 추리닝을 친구들처럼 입지 못했던 한이 남아 지금도 추리닝을 사신다.

나는 친구들 앞에서, 사람들 앞에서 옷으로 나를 드러내고 나의 선택과 취향을 표현하는 것이 두려워 편한 옷 뒤로 숨었다.

그렇다면 우리 덕분이는?

두려움 없이 입어야 한다. 빨주노초파남보의 과감한 원색도 입어보고 이른바 여자옷도 남자옷도 입어보고 내가 좋아하는 옷도 싫어하는 옷도, 편한 옷도 불편한 옷고, 명품도 싸구려도 모두 입어보고 느껴보고 즐기면서 한껏 자신을 표현하면 좋겠다.

그렇게 full-spectrum을 경험하고 그 속에서 자신과 꼭 맞는 옷을 하나가 아니라 여러벌 찾았으면 좋겠다. 옷장 안에 옷들을 보면서 오늘은 뭐입지 하고 즐거운 고민에 빠졌으면 좋겠다.

혹은 옷장에 옷이 없어도, 나를 표현할 옷을 못 찾았어도 낙담하지 않고 여전히 옷을 사랑하고 즐길줄 알면 더더욱 좋겠다.

그것이 패션고자인 아빠가 미래의 패셔니스타 덕분이에게 바라는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더 이상 패션고자에 머물지 않겠다. 내 몸을 사랑하고 그에 맞는 옷을 사랑하는 연습을 해야겠다.

더불어 패션고자와 결혼해 그동안 뜻하지 않게 숱한 안구테러를 경험한 유민이에게도 더 이상의 스트레스는 주지 않으려 한다. 즉 밖에 나갈 땐 등산복을 입지 않겠다. ㅎㅎㅎ

덕분아 오늘도 네 덕분에 아빠의 기나긴 패션흑역사를 돌아보는구나. 고맙다. 그리고 사랑해 :)


덕분이가 기대어 자고 있는 이옷이 바로 문제의 푸른 등산복이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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