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딸기

3/22, 덕분이 태어나다!

딸記 #3. 16-03-26

by 오세준

새벽 6시반, 우리는 이미 깨어 있었다. 덕분M은 사알짝 진통이 있어 밤새 깊이 잠을 못잤고 나는 멍멍이꿈만 계속 꾸다보니 깊게 잠이 들지 못한 상태였다. 아침을 간단하게 먹고(M은 밥을, 나는 걍 바나나만 먹음), 병실에 도착하니 7시 반. 간호사가 유도분만용 링거를 꽂으면서(아! 그 전에 M은 지옥의 관장맛을 봄) 출산 준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어제 열린 문이 3cm, 그 상태에서 서서히 진통을 겪으면서 M은 자꾸 호흡을 놓치고 앓는 소리를 내며 괴로워 하고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간호사의 조언에 따라 출산 때까지 옆에서 계속 호흡을 같이 했다. 짐볼위에 오른 M에게, 이 말을 반복하였다.


코로 깊이 들이마시고, 그렇지 잘 한다~ 입으로 후우 내쉬고~ 와 정말 잘 하네! 자, 힘 빼고 인상쓰지말고 어깨힘 풀고 다시~


이렇게 40분 넘게 호흡을 가이드하였고, 지친 와이프에게 딱 세 번만 더 호흡하고 다시 침대에 올라 쉬자고 했는데 그 때 이미 문이 열려버렸다(이때 함께 호흡을 하면서 무통주사 대신 고통과 마주했던 시간이 출산 전체 시간을 줄이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결국 화장실에서 소변과 함께 피를 확인한 M은 간호사를 불렀고, 간호사는 얘기를 듣고 내진을 하였다(참고로 이 내진이 무지 아픈다. 하는 내내 M께선 엄청 힘들어하셨다. 커튼 뒤에서 자궁을 간호사가 손으로 휘젓는 소리가 들릴 정도이니… ㅠㅠ). 그 결과 문이 이제 상당히 커지고 얇아졌음을 확인한 간호사는 바로 다른 간호사들과 의사를 불렀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아이낳기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M의 표현을 그대로 빌자면, 그야말로 주라기 공원의 익룡이 우는듯한 소리가 병실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나는 커튼 뒤에서 질질 짜고 있었다. 내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게 안타까웠다. 차라리 내가 아프면 좋으련만… 울 엄니도 저렇게 나를 낳으셨구나… 아… M에게 참으로 미안하다 미안해… 이런 오만 생각이 들면서 우는 사이, 간호사가 이제 때가 되었다며 안으로 들어와 M의 출산을 도우라고 했다.


다시 호흡을 함께 하기 시작하고 중간중간 M이 배에 힘을 주고 아이를 조금씩 자궁밖으로 밀어낼 때 배에 힘을 좀 더 줄 수 있게 등을 받쳐주며 같이 땀을 흘렸다. M이 힘을 줄 때 나도 함께 힘을 주고 있었다. 그렇게 아이의 머리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고, 배에 몇 차례 힘을 주고 났더니, 드디어! 덕분님이 이 땅에 오셨다! (배경음악으로 알렐루야 넣고 싶다).


아 시원하다


라는 말과 함께 나온 우리 덕분이를 보는 순간, 두 눈이 뿌얘졌다. 벅찬 감동의 눈물이 내 가슴 위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직접 가위를 들고 탯줄을 조심스럽게 자르고 덕분이에게 말을 걸며 따뜻한 물에 담그는데, 난 연신 덕분이에게 태어나줘서 고마워 고마워 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말그대로였다. 내게 와줘서 그저 고마울 뿐이었다. 태명 그대로, 이 모든게 네 ‘덕분’이구나, 내 딸 덕분아 사랑해 그리고 고마워…


겨우 가슴을 진정시키고 아이를 엄마품에 안겨주는순간, 덕분M은 내가 덕분이의 탯줄을 끊고 목욕시킨순간 아빠가. 되었듯, 드디어 엄마가 되었다. 그리고 난 직감했다. 이제 우리 집의 최고존엄은 덕분M이고, 무상존엄은 덕분이이며, 난 그냥 두 분을 모셔야 하는 신분이 되었구나라는 냉엄한 현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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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수에 푹 담궈져 있어 그런지 갓 태어난 얼굴이 지금 보면 팅팅 불어 있는데, 그 땐 그 모습도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럽고 예뻐 보였다. 입도 코도 감은 눈도, 얼굴에 덮인 태지도 모두 사랑스러웠다. 그리고 생각했다. “결혼을 하길 잘했다. 그리고 애를 낳길 잘했다”


무엇보다도, 이제 내가 아빠라는 것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이제 나는 아빠구나. 다른 무엇보다도 아이의 보호와 성장을 우선시하는 그런 역할이 나에게 주어졌구나… 가슴이 뿌듯해졌다. 그리고 새롭게 생긴 정체성이 참으로 마음에 들었다.


나는 덕분이 아빠다

나는 덕분app이다! (발음을 하면 덕분앱, 즉 덕분애비의 줄임말인것 같아서, 그리고 덕분이를 위한 만능 app이 되겠다는 일념을 담아 나의 새로운 ID를 지어봤다)


다시 태어난 기분이다. 태어난 건 아이인데, 마치 내가 다시 태어난 것 같다. 낡은 껍질이 떨어져 나가고 나비가 된 기분이 든다. 가슴 옆에 날개가 돋은 것 같다. 내가 아

그 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다시 한 번 외쳐본다.


난 덕분이 아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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