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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세준 Jun 26. 2016

누가 그대를 씻겨주는가?

내일의 심리학 #5.

스타니슬라브 그로프 박사가 개발한 홀로트로픽holotrophic 호흡작업을 시작한 첫날.

ethnic한 음악과 짧고 깊은 호흡의 결합을 통해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무의식 혹은 초의식의 세계로의 다이빙을 시도했다.


세 시간 반 가까이 진행된 세션동안 좀처럼 집중하지 못했다. 나는 다른 이들이 내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고 나의 호흡에는 제대로 집중하지 못했다. 그렇게 나는 스스로 호흡작업에 실패했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노력을 포.기.했다.


그러자 내 옆에 앉아있던 도우미가 내 상체를 살짝 들어주곤 발끝부터 물로 깨끗이 씻겨주기 시작했다.
발을 지나 내 성기까지 씻겨주고 얼굴도 닦아주고 머리도 감겨주었다. 물론 옷을 벗긴 채로 말이다.
이 모든 과정이 끝나고 그는 나를 붉은 색과 푸른 색이 조화를 이룬 셔츠로 갈아입혀주었다. 근데 옷이 뒤집혀져 있어서 '아, 이건 제가 입을게요'라고 말했다.


근데, 꿈이었다.

아무도 나를 씻겨주지 않았다.

그런 일은 일어난 적이 없었다,

실내에는 물도 없고, 씻은 이도 없고, 그저 호흡작업 중인 사람들이 앉거나 누워있었을 뿐이었다.

난 어리둥절했다.


뭐지? 난 분명 씻었는데...
나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들도 나처럼 옷을 벗고 온몸을 씻었는데...
그게 내 꿈이었다고?
말도 안돼!


난 믿을 수가 없었다. 그것은 정말 나에겐 현실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날 씻기던 물의 따뜻함, 날 씻겨준 존재의 따스한 온기는 그것이 꿈이 아니라고 내게 말하고 있었다. 정말 영어표현을 빌자면 surreal, 초현실적인 경험이었다. 현실보다 더 현실같다는 점에서의 초현실 말이다.


이 과정을 이끄는 Judith Miller와 Ingo는 이것을 두고 정화purification이라고 표현하였다. 나 또한 그렇게 느꼈다. 내가 의도하지도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이지만 그것은 나에게 일어났고, 나를 정화시켜주었다. 아니, 그 정화의 과정은 그 공간안의 모든 이들에게 일어나고 있었다. 나 뿐만 아니아 모든 이가 옷을 벗고 누군가에 의해 씻겨지고 있었다. 그것은 참으로 자연스럽고 신성한 과정이었다. 비록 꿈이었지만...


오늘 내가 겪은 이 정화의 경험은 분명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일어날 일이 일어났다는 생각이 나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것이 나에게 필요한 경험이란 내면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나는 씻겨진 몸과 마음으로 다시 일어났다.


저녁을 먹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명상으로 하루를 마무리한 후, 이렇게 글로 정리하며 다시 그 경험을 돌아본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피에타가 떠올랐다. 삽자가에 못박힌 예수의 죽음을 슬퍼하는 마리아. 그런데 그 마리아가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씻기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마리아는 그가 고난 중에 흘린 피와 땀을 닦아주고 있던 것이 아닐까? 그의 죽음이 아니라 부활을 알기에, 오히려 예수의 몸을 깨끗이 닦아주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느닷없이 들었다. 왜 이런 생각이 드는지 모르겠다. 그냥 이미지다. 이미지.


지켜 보아야겠다. 아직 호흡 작업은 4일이나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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