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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세준 Jul 29. 2016

여성혐오(성적 대상화)는 정신건강에 해롭습니다

오늘의 심리학 #12. 

  여성의 몸을 성욕의 대상으로 삼으면서 그들의 가치를 몸매와 외모, 성적 기능으로만 평가하는 사회문화 속에서 여성의 건강은 바람 앞의 촛불 신세이다. 이 글을 통해 그 촛불의 위태위태함을 이야기 하고자 한다. 지금 내가 사랑하는 여성들-할머니, 어머니, 누나 혹은 여동생, 여사친, 여친, 배우자 등-이 건강하게 그들의 삶을 살아가길 원한다면 이 글을 끝까지 읽어보길 권한다.  


  오늘 할 얘기는 주로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이지만, 사실 이 문제는 여성에게만 국한되지 않음을 미리 밝혀둔다. 여자들도 똑같은 방식으로 남자를 성적 대상으로만 취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메갈리아의 미러링과 이를 둘러싼 남성들의 폭발적인 분노는 성적 대상화가 얼마든지 성별을 바꿔서도 일어날 수 있으며 당하는 입장에서 매우매우매우 기분이 나쁜 일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성적 대상화의 심각성을 알리려는 의도였다면 미러링은 그보다 더 성공적일 수 없었다. 특히 고추크기 가지고 남성들을 일방적으로 규정짓는 것은 전형적인 성적 대상화이다). 하지만 오늘은 일단 남성에 의한 성적 대상화를 주제로 이야기하고자 한다. 가장 오랫동안 자행되어왔고, 전세계에 만연해 있으며, 훨씬 심각하기 때문이다. 


  요즘 핫한 단어가 하나 있다. 바로 '여성혐오misoginy'. 그런데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 중 하나가 여성혐오가 꼭 여성을 미워하고 배척하고 물리적으로 공격하는 형태로만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진심 억울한 표정으로 "전 여성을 혐오한 적 없거등요!"라고 외치는 남성들도 자신이 진정 여성을 성적 대상화한 적이 없다고는 말하지 못할 것이다. 만약 그런 적이 있다면, 그게 바로 여성혐오다. 여성혐오의 정의상 그렇다. 위키백과의 정의를 살펴보자.     


  여성혐오(女性嫌惡, misogyny 미소지니[*]) 또는 여성증오(女性憎惡)는 여성에 대한 혐오나 멸시, 또는 반여성적인 편견을 뜻한다. 이는 성 차별, 여성에 대한 부정과 비하, 여성에 대한 폭력, 남성우월주의 사상, 여성의 성적 대상화를 포함한 여러가지 방식으로 나타나며, 고대 세계에 관한 신화 뿐만 아니라 여러 종교 신화(설화) 속에서도 발견된다. 또한, 많은 서양 철학자들과 사상가들이 여성혐오적이라 묘사된다. 
출처 : https://goo.gl/SQ3HCG


  그렇다. 우리가 매일 보는 드라마, 매일 듣는 노래, 매일 즐기는 게임 속에 마치 공기처럼 스며들어가 있는 성적 대상화(sexual objectification), 그것은 여성혐오의 대표적인 표현 방식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이번 넥슨이 출시한 게임 '서든어택2'을 보라. 여성 캐릭터가 어떻게 '주체'가 아니라 '대상'으로 소비될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결국 서든어택2는 X망했고(오늘 서비스 개시 22일만에 종료한다고 기사가 떴다), 너무 심하게 노골적인 성적 대상화는 어느정도 대중의 상식에 의해 제어가 되고 있음을 보여주지 않았나 싶다. 


  각설하고, 여성혐오의 표현 방식 중 하나인 성적 대상화, 이것의 개념 정의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뭐 논문 한 편으로도 모자를 것이다. 그리고 그런 식의 설명으론 "그래서 뭐 어쩌라고?"라는 반응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래서 여혐의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지는 성적 대상화가 얼마나 여성들의 심신을 좀먹는지를 보여주고자 한다. 그래야 이 글을 읽는 사람들도 이게 결코 좌시할 일이 아니구나 하는 경각심이 들테니까 말이다. 


그래도 최소한의 상식 차원에서 성적 대상화 이론이 최초 Fredrickson과 Roberts(1997)에 의해 제시되었음은 알아두고 넘어가자. 여성들의 신체 혹은 신체의 일부가 한 인간으로서의 그녀로부터 배제되거나 분리된 채 주로 남성의 성적 욕구를 채워주는 신체적 대상object으로 간주될 때 일어나는 것이 바로 성적 대상화이다(Bartky, 1990). 


 성적 대상화가 여성의 건강을 해치는 경로는 크게 두 가지-직접적 경로와 간접적 경로로 나타난다. 


1) 직접적 경로 : 타인에 의한 성적 대상화를 당하는 경험 (예: 노골적인 몸매 훑어보기)

2) 간접적 경로 : 성적 대상화를 내면화하기 (예: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외모나 몸매로 평가)


  직접적 경로가 더 불쾌하고 해로울 것처럼 보이지만, 연구자들이 주목하는 것은 특히 성적 대상화의 내면화이다. 성적 대상화를 당연시하고 그러한 관점으로 스스로를 바라볼 때, 즉 성적 대상화가 내면화되었을 때 나타나는 심리적 결과들이 정신건강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이를 그림으로 도식화해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이 모델의 장점은 각각의 요인들이 '경험적'으로 연구되었다는 점이다. 


  위 모델의 핵심은 간단하다. 성적대상화를 경험하거나 혹은 이를 스스로 내면화하는 것은 심리적으로 해로운, 무려 다섯 가지 결과를 낳는다 : 


1) 외모불안 : 자신의 외모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지고 남들의 평가를 두려워하며 불안해짐 
2) 몰입감소 : 어떤 행위에 깊게 몰입하여 시간의 흐름이나 공간, 나아가 자신에 대한 생각까지도 잊어버리게  되는 몰입 경험을 누릴 기회가 줄어듦
3) 내적자각 감소: 배고픔, 성적흥분, 위장 수축 같은 신체 내부의 감각에 대한 자각 수준이 떨어짐
4) 모델 같은 비현실적 몸매만 강조되는 문화적 기준에 따라 스스로의 몸을 바라보면서 수치심을 느낌
5) 강간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커지는 등 신체적으로 안전하지 못하다고 느낌

 

  중요한 것은, 이러한 심리적 문제들이 쌓여 개인의 정신건강이 위태로워 진다는 사실이다. 섭식장애, 우울, 그리고 성기능장애. 셋다 무시무시하다. 섭식장애는 폭식 또는 억제의 양상으로 나타나는데 특히 모델들이 흔하게 경험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괜히 선진국에서 말라깽이 모델을 런웨이에서 퇴출하겠다며 부산을 떤 것이 아니다. 과도한 성적 대상화가 낳은 특유의 모델 문화 속에서 젊고 아름다운 여성 모델들이 '이상적인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과도하게 음식을 억제하다보니 결국 그로 인한 스트레스로 목숨을 잃기까지 한 것이다(이를 신경성 식욕부진 Anorexia Nervosa이라 한다). 


신경성 식욕부진, 이른바 거식증으로 죽은 우루과이 모델 엘리아나 라모스. 그녀의 나이 결국 18살. 불행히도 그의 언니인 루이젤 라모스 역시 거식증으로 죽었다...

   우울의 심각성이야 뭐 다들 잘 알고 계실 것이다. 연구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자살 원인의 절반 이상은 우울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한 연구에 따르면 성차별 경험을 일상에서 보다 자주 경험할수록 우울과 불안을 경험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우울과 불안이 누적되면? 그 결과는 다들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여배우들이 자살충동에 시달리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이에 못지않게 심각한 것이 바로 성기능 장애이다. 대표적인게 바로 불.감.증.이다 이게 때때로 우스개 거리가 되는데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부부 관계에서 이혼사유가 될만큼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성관계인데 이것과 관련된 가장 흔한 부부상담사례가 바로 '아내의 불감증'이다. 보통 그럴 경우 남편들은 입이 댓발은 튀어나온채 클리닉 혹은 상담실 문을 두드린다. 아내를 두고 목석같다며 비난하고 도무지 재미가 없다며 불평을 늘어놓으면서 얼른 치료해달라고 애원한다. 그런데 그렇게 된 원인에 눈을 돌리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우리는 그 원인들 중 적어도 하나는 알고 있다. 바로 성적 대상화이다. 


  성적 대상화는 여성이 자신의 몸이 전해주는 감각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성적 흥분과 이완이 가져다주는 쾌감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게 방해한다. 자신의 몸에 대한 끝없는 가치평가에 지친 여성들은 결국 몸의 생생한 감각을 느끼길 포기하게 되고 이와 더불어 성적 쾌감도 사라지는 것이다. 성기능장애에 불감증만 있는 건 아니지만, 일단 예시는 이 정도로도 충분하리라 본다(성적대상화 경험으로 인해 섹스를 혐오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보통 어린 시절 남성들에 의해 성추행, 성폭행 등 극단적인 형태의 성적 대상화를 경험한 경우 섹스 자체를 혐오하게 되며 나아가 자신의 몸, 그리고 존재 자체를 혐오하기에 이르곤 한다).       


  이 정도 길게 설명했으면 됐다. 이제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야겠다. 여혐이 여성을 '혐오'하는 것이 아님은 다들 대충은 들어 알고 있을 것이다(모르겠다면 찾아봐라. 설명하기 귀찮다). 여혐은 여성을 한 사람의 인격체로, 나와 동등한, 존엄한 인간으로 보지 않고 '몸'으로 '얼굴'로 '성적 파트너'로만 간주하는 것으로 표현되며 그러한 태도를 두고 우리는 성적 대상화라고 부른다. 


  이것을 방치할 경우,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 적어도 절반을 차지하는 사람들의 정신건강이 위험하다. 대놓고 말하자면, 이 글을 읽고 있을 당신의 할머니, 어머니, 누나(or 여동생), 여사친, 애인, 아내 등 가까운 여성들의 건강이 위험하다. 왜? 성적 대상화라는 방사능이 그녀들의 마음을 오염시켜 스스로의 가치를 깎아내리고, 남들의 시선에 따라 자신의 몸을 끊임없이 저울질하며 괴로워하게 만들며, 끝끝내 자기 몸을 거부한 나머지 차라리 죽음으로 그 고통을 벗어나길 택하는 일까지 낳기 때문이다. 


  쉽게 와닿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기회가 된다면 여성들에게 물어보라. 그녀들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들었던 끝없는 품평들에 대해 귀를 기울여보라. 그리고 그 때마다 그들이 무엇을 느꼈는지 들어보라. 그러면 알게 될 것이다. 그동안 이해하지 못했던 그들의 우울과 불안의 기원을...


  끝으로, 내가 이런 글들을 계속 쓰는 이유는 죄책감 때문이다. 

  나 또한 인생의 상당기간을 남자로서, 여성을, 몸매로, 얼굴로, 그리고 '성기'로 재단하여 생각하고, 말하고, 판단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 행위의 결과를 대학교 때 짝사랑하던 여성으로부터 듣고 난 뒤 모든 것이 달라졌다. 왜냐하면 나와 내 친구들이 못생겼다고 느꼈던 사람이 짝사랑하던 그녀의 친구였기 때문이다... 


  니들이 그렇게 놀렸던 걸, 걔가 다 알고 있었어. 
그 때 걔가 죽고 싶어했었던 것 아니?

 

  아직까지 미안하고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분명 나와는 만나고 싶지도, 대화를 나누고 싶지도, 어떠한 관계를 맺고 싶지도 않을 것이다. 평생 속죄하며 살것이다. 이미 저지른 짓이라 되돌릴 수도 없다. 그냥 앞으로 안 하는 수밖에. 아무리 철없고 생각없던 청소년기였다지만, 그것이 나쁜 일이라는 것은 내 조그마한 양심으로도 이미 그 때부터 알고 있었다. 다만 모른척 했을 뿐. 


  지금 100일을 갓 넘은 딸을 키우는 아빠의 입장에서, 나는 내 딸이 다른 누군가로부터 외모로, 몸매로, 성기로 판단되길 원치 않는다. 내 딸이 그런 경험을 하고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지하철 복도를 왔다갔다 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래서 이런 글이라도 써본다. 

  



*참고문헌*

Szymanski, Dawn M.; Moffitt, Lauren B.; Carr, Erika R. (January 2011). "Sexual objectification of women: advances to theory and research"The Counseling Psychologist(Sage39 (1): 6–38. doi:10.1177/0011000010378402. 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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