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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모 Oct 11. 2022

일을 미루지 않는 법 - 서론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다. 빠르게 읽고 넘어갈 것.

나는 ADHD 진단을 받은 지 10년, 꾸준히 약물 치료를 받은 지는 7년 여가 지난 베테랑 환자이자 미루기의 달인, 마스터다. 동시에 혹독한 근무 환경에서 일을 해나가고 있는 게임 시나리오 작가이자 회사 창업 멤버이자, 양극성 기분 장애와 불안 장애를 가진 자살 고위험군 환자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이 '일을 미루는' 행위를 습관, 게으름, 선택 등으로 쉽게 일축하고는 한다. 하지만 때로 어떤 사람들에게 미루는 행위는 자신의 선택도, 게을러서 하게 되는 행위도 아니다. 습관이 아니라고 말하지는 않겠다. 어떻게 그렇게 단언하냐고? 아무리 게으른 사람도 회사에서 잘릴 정도로 심각한 문제를 만들 수 있는 상황이라면 일을 미루지 않는다. 아무도 사랑하는 사람들이 완전히 등을 돌릴 정도로 큰 잘못을 저지르는 걸 선택하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겨우 일을 미루는 습관 때문에 심한 자살 충동을 겪는 사람은 많지 않다.

(물론 아래 팀 어반의 정의에는 100% 동의한다.)


Ted Talk '할 일을 미루는 사람의 심리'로 유명한 팀 어반의 미루기에 대한 정의.

미루기

명사

아무 합당한 이유 없이 자신의 인생을 망치는 행위




내가 겪은 모든 일들이, 내가 했던 모든 행동이 전부 ADHD와 내가 가진 다양한 기분, 불안 장애의 영향 때문이라고 말하지는 않겠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그 정도로 내 인생에 '미루기'라는 단어가 큰 골칫거리였고, 지금도 그렇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신과 의사보다 약에 대해, 병에 대해 잘 아는 자들이 누구인 줄 아는가?

바로 베테랑 환자들이다. (이건 실제로 얼마 전 진료에서 의사 선생님께 직접 들은 말이기도 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1. 환자는 백과사전이 아니라 족보에 가깝다.


의사는 병에 대한 웬만한 걸 다 알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일반인의 기준에서 정확히 뭐가 필요하고 뭐가 불필요한 정보인지, 뭐가 접근성이 좋고 뭐가 접근성이 낮은 정보인지는 환자(이 경우에는 나처럼 미루기가 병적으로 심한 사람)가 더 잘 알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즉, 미루기의 정의부터 역사까지 설명하거나 원론적인 소리는 잘 알지도 못할뿐더러 굳이 늘어놓을 이유도 없다는 거다. 환자는 오로지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그리고 최근에도 활용할 수 있었던 정보에 집중한다.



2. 환자는 공부를 하는 게 아니라 연구하기 때문이다.


정신 질환이 있는 환자는 어떤 면에서는 꽤 천편일률적인 과정을 겪는데, (이 과정에 대해서는 리단 작가님의 <정신병의 나라에서 왔습니다>에 아주 잘 나와 있다.) 그 중 한 가지가 어느 정도 병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고 숙련도가 생기고 (그에 더해 많은 인생의 시련을 겪고) 나면 다들 공부가 아니라 '연구'의 과정으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단순히 책을 읽고 정보를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맞는 방법이 무엇인지 효과가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직접 시도하고 실험하고 기록하고 데이터를 해석해가며 어떻게든 병에 적응하는 동시에 통제하려고 애쓰게 되는 것이다. 즉, 환자의 이야기는 단순히 머리로 배운 이야기가 아니라 몸으로 배운 실질적 노하우인 동시에 당장 써먹을 수 있는 레퍼런스가 된다.


요약하자면 만약 당신이 이 글의 제목에 이끌려 들어 온 사람이라면 잘 오셨고, 수많은 자기계발서와 미루는 습관 고치기에 대한 콘텐츠 중 하필 이 포스트를 고른 건 잘한 일이라는 것이다.


생성일은 3월이지만 그 후 수도 없이 업뎃되었다


이 포스트의 제목은 내가 쓴 지극히 개인적인 노션 문서의 제목이다. 브런치 발행을 목적으로 쓴 글도 아니고, 누구에게 보여주려고 쓴 것도 아니며 온전히 나를 위해 정리한 문서다.


이미 내가 다 읽어봤고, 해봤고, 실패하고 성공해봤다.

지금부터 그중 의미가 있었고 효과가 있었던 것만 정리해보려 한다.




참고로 나는 지금 내 진짜 일을 미루고 있다.

이 '생산적 미루기'에 대해서는 이후 더 설명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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