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프레소
#에스프레소
출근 버스에서부터 강철은 피곤했다. 다리는 천근만근이었다. 30대 중후반을 지나가는 중인 강철은 언젠가 한 번은 근육질의 몸짱이 되어보리라 생각했지만, 매일 반복되는 야근은 언제나 ‘몸짱의 꿈’은 그저 꿈으로만 남겨두었다.
출근 버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다들 고단한 얼굴로 월요일의 악몽을 시작하는 중이었다. 그때 때마침 아는 얼굴을 만났다. 언젠가 강철은 그녀에게 큰 도움을 준 적이 있었다.
“아니 이게 누구세요?! 선생님, 정말 오랜만입니다.”
그녀는 70대 할머니였다. 그녀는 한사코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 앉으세요.”
“무슨 말씀이세요. 서서 갈게요.”
“매일 야근을 하시는 양반이 무슨 말씀이세요? 얼른 앉아요. 제발.”
“정말 괜찮습니다.”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것이 기껏해야 자리를 내어드리는 거밖에 없어요. 이게 제 예의입니다.”
누가 봐도 이상한 상황이었다. 노인이 반대로 젊은 남자에게 자리를 양보하다니.
“정말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요즘 건강하시죠?”
“제발 좀 여기 앉으세요.”
그녀는 고집을 꺾지 않고, 강철에게 자리를 양보하려고 했다. 강철은 이 상황이 너무 곤란했다.
“어르신이 이러시면 제가 너무 불편해요. 어서 도로 앉으세요.”
강철은 그녀를 자리에 억지로 앉혔다. 버스에 탄 사람들은 뭔가 이해되지 않는 이 상황에 수군거렸다. 그렇다고 강철이 이 상황이 어떻게 해서 일어난 일인지 그 긴 스토리를 하나하나 승객들에게 설명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버스에서 내린 강철은 저 멀리 보이는 건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오늘도 출근길의 강철은 좀비 같았다. 결국 강철은 가방에서 편의점에서 샀던 캔 커피를 꺼냈다. 일단 오늘 일을 하려면 이 멍한 기운을 없애야 했다. 도파민을 발산해야 할 타이밍이 바로 지금이었다.
그때였다. 한 남자가 강철의 앞을 빠르게 뛰어갔다. 하마터면 부딪힐 뻔했다. 강철의 캔 커피는 바닥으로 쏟아졌다. 남자는 달리기를 하는 중이었고, 헤드폰을 끼고 있어서 강철에게 일어난 일을 모르고 있었다.
‘쫓아가서 따지기라도 해야 하나?’ 하고 생각을 해보았지만, 그러기에는 강철은 지금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아니 사실 속으로는 그 남자에게 약간의 질투를 느낀 것도 사실이었다. 강철은 미라클 모닝에 러닝으로 삶을 활기차게 시작하는 그런 멋진 삶을 꿈꾸던 적이 있었는데 하고 부러워했다.
“아악!”
얼마 가지 않은 러닝을 하던 남자가 소리를 질렀다. 돌부리에 발을 헛디딘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남자는 다리를 접질리면서 몸의 중심을 잃었다. 남자는 살짝 쓰러졌다. 혹시 도와줘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강철은 망설였지만, 그는 툴툴 털고 일어나 다시 뛰어갔다. 인생은 그런 것이다. 오뚝이처럼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나고 목표를 향해 뛰어가는 것. 그래 오늘도 나는 다시 일어나서 뛰어가야 한다, 강철은 그렇게 다짐을 했다.
강철은 커피를 주문하러 근처 별다방에 들어갔다. 오늘 아침에도 카페인 보충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있었다. 강철이 아침에 마시는 것은 늘 똑같은 메뉴였다. 에스프레소 더블샷. 가끔 쓰리샷을 주문할 때도 있었지만 오늘은 그 정도는 아니었다.
“아니 저런 걸 어떻게 먹어? 속 쓰려서 죽을 거 같은데. 맛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는 걸. 저건 그냥 한약이라니까.”
강철의 주문에 뒤쪽에서 누군가가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아아의 민족'에게 에스프레소는 마치 커피의 종류가 아니라는 뉘앙스였다. 그건 마치 시대극에서 사약이라도 들이키는 장면이라는 투였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점원은 카드를 돌려주었다.
그리고 그때였다!
갑자기 미친 듯이 빠른 속도로 차량이 유리문을 부수며 돌진해서 들어온 것은.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