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땅, 모로코의 추억

by 발쌤


여행을 꽤나 많이 해보았다고 자부하는 나에게도 '중동'에 대한 나의 로망은 이상하리만치 오래도록 지속되었다.


한때 영어공부를 하겠다는 취지? 하에 한참을 즐겨 보았던 미드 '섹스 앤 더 시티' 극장판에서 보게 된 중동의 매력이 나의 중동의 로망을 한층 더 채워줬는지 모르겠다. 영화의 배경으로 나왔던 '아부다비'가 그렇게 신선하고 아름다워 보였다. 사막과 어울리는 화려한 의상까지도.



중동의 로망을 실현할 곳으로 두바이&아부다비를 손꼽고 있었는데 어느 출장길에 두바이 경유를 하면서 넘쳐나는 오일머니와 재물이 압도하는 분위기에 아.. 그곳으로의 여행은 조금은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생각했었다. 신상보다 빈티지를 좋아하고, 원래 새것보다 예스러움. 옛것. 오래된 것을 좋아하다 보니 모래땅 위에 돈을 쏟아부어 만든 인공 도시보다 예전의 모습을 구석구석 그대로 간직한 곳이 더 좋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다 신혼여행으로 12월 겨울. 13일간의 긴 휴가를 갖게 되었다. 휴양지를 제외하고, 둘 다 가보지 못한 곳. 12월이라 유럽도 춥고. 미국도 춥고. 겨울엔 날씨 좋을 동남아는 이런 긴긴 휴가에 가기엔 싫고. 좀 특이하고 특별한 곳을 생각하다 '중동'을 떠올렸다.


문득 다시 찾아보게 된 중동의 로망 찾기에서 뜻밖의 정보를 알게 되었다. '섹스 앤 더 시티' 영화의 촬영지는 아부다비가 아니라 모로코 라는것! 그렇다. 여성에 대한 규제가 심한 중동에서는 촬영 자체가 허가되지 않아 대체지로 모로코에서 영화가 촬영되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말로만 들었던 '사하라 사막'도 모로코에 있단다.


그래. 여기다. 더할 나위 없이 여기다.



뜨거운 태양. 사하라 사막. 낙타. 히잡.


숙소만 예약해둔 채 아무런 계획도 없이 그냥 떠났다. 정말 이래도 될까 싶도록. 정말 무계획. 옆에서 불안해하던 남편의 모습은 이제 추억이 되었다.



'여행은 현지인처럼'


모로코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산 아이템은 모로코의 필수 의상 '질레바(Djellaba)'였다. 모로코의 12월은 생각보다 쌀쌀했다. 여행 내내 함께했던 질레바는 모자가 있는 것, 팔이 긴 것, 짧은 것 나름의 컬러와 디자인이 독특한 모로코의 전통의상이다. 모자가 달린 질레바는 마치 그 모습이 요정과도 같다. 가격은 천차만별이었지만 꼭 맘에 드는 디자인의 젤레 바를 찾아 철벽남과도 같았던 할아버지와 가격 흥정을 하고 또 하고 그래도 많이 깎아서 (그럼에도 다른 젤레 바 보단 비쌌다. 그러나 너무 마음에 들었으므로)


비싸게 주고 산 질레바는 너무 따뜻해 모로코 여행 내내 입고 다녔다. 만나던 모든 모로코 사람들이 굉장히 좋은 질 레바라며 칭찬 일색. 깎아서 미안해요 할아버지. 이거 정말 좋은 거라 안 깎아주신 거였구나..



인샬라! inch allah



마라케시에 도착한 우리는 바로 다음날 사하라 사막 투어를 원했다. (예약도 없이) 인터넷에서도 예약은 되지만 2명의 경우 그룹 투어 요금이 아닌 덕에 금액이 터무니없이 비쌌다. 현지에서도 예약이 된다길래 무작정 그냥 갔다. 가서 당장 다음날 떠나는 투어를 예약했다. 엄청 싸게. 싼 금액과 당장 다음날 떠날 투어 예약이 안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바꾼셈이다.



마라케시에서 사하라까지는 차로 꼬박 1박 2일이 걸린다. 첫날은 이동만 10시간 한다고 했다.


그 사실을 버스에 타서야 들은 남편은 내 멱살을 잡을 뻔했다. 멀다고는 말해줬지만.. 나도 10시간이나 타는 줄은 몰랐다고...



다행히도 가는 길목 중간중간 중간 기착지가 있었다. 그중 기억에 남는 곳. "와르자자트" 벤허, 글래디에이터, 미라 등 많은 영화의 배경지가 된 도시이기도 하다. 흙벽을 따라 이어지는 수많은 작은 골목들이 마치 시간여행을 온 듯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실제 사람들이 살기도 하고 과거에 살았었고.


모로코는 딱 그랬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공존한다는 그 흔한 이야기가 곧 모로코인 것이다.



대협곡과 대자연이 끝나고 보이는 광활한 길은 도대체 가도 가도 끝이 없다.


나야 차창으로 내리쬐는 따뜻한 햇살에 꾸벅꾸벅 졸기야 하면 되지만 운전을 했던 요정 아저씨 (내가 키 작고 유쾌하시던 모로코 할아버지에게 지어준 별명)가 훨씬 더 피곤하셨으리라. 한참을 가다 보면 가장 행복한? 시간이기도 한 '밥' 시간이 찾아온다. 야외 식당에 들렀다. 뜨거운 음식만큼 뜨거운 태양 아래서 즐기는 한낮의 점심. 덥다고 불평할 시간도 없이 쓱쓱 바닥까지 깨끗하게 먹어버리게 만든 의외의 미식이였던 모로코 음식.



몇 분마다 바뀌는 풍경. 아마 이곳은 미지의 세계가 아닐까. 대자연이 주는 웅장함과 알 수 없는 고요함이 주는 편안함 그리고 안락함. 모로코는 그랬다. 저 끝에 드디어 보인다. 사막이.



드디어 사하라 사막에 도착했다.


투어가 어느덧 3일 차가 되니 함께 했던 브라질, 남아공, 중국 친구들과도 제법 친해졌다. 영화나 티브이에서 보던 만큼 깨끗한 낙타는 아니었지만. 사하라 사막 위로 낙타를 타는 기분은 황홀 그 자체였다.



사막 위에서의 밤은 쏟아지는 별빛과 세찬 바람에 휘날리는 모래 소리로 못내 잠 못 이루었고 사하라의 밤은 그렇게 지나갔다.


사막에서 맞아보는 귀한 일출을 위해 새벽같이 일어났던 새벽 4시의 하늘은 칠흑 같은 어둠으로 깜깜하기 그지없었다. 파울로 코엘류의 연금술사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산티아고는 자기 고향의 오랜 속담 하나를 떠올렸다. 가장 어두운 시간은 바로 해뜨기 직전이라는."


칠흑 같은 어둠이 걷히자 찬란한 태양이 사막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게 우리는 모로코, 사하라에 스며들어가고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정열로 가득 찬 아름다운 도시 - 스페인, 바르셀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