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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쎄묘 May 19. 2022

사우스햄프턴은 놀랍게도.

타이타닉이 출항한 도시, 사우스햄프턴에 가다.


막연하게 타이타닉 호는 뉴욕에서 출항했을 것만 같지만, 커다란 비극을 앞둔 채 떠난 그 배는 영국의 항구도시인 사우스햄프턴 Southampton에서 출발했습니다. 처음 듣는 이야기라고 당황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오늘 사우스햄프턴의 씨시티(SeaCity) 박물관에 가서 처음 알게 되었으니까요.


씨시티 박물관의 표지판에는 사우스햄프턴이 타이타닉의 도시라고 쓰여 있습니다. 타이타닉 호가 리버풀에서 만들어졌다고는 하나 타이타닉 호가 처음이자 마지막 항해를 시작한 곳이 사우스햄프턴 항구여서 그런 것 같습니다. 박물관은 세 개의 큰 전시실이 있는데, 그중 가장 큰 전시실에 바로 타이타닉 호의 이야기를 담은 전시가 있습니다.


1997년작 영화 <타이타닉>의 영향인지는 모르겠으나 저는 타이타닉 호가 굉장히 옛날이야기, 아니, 그보다는 하나의 '역사적 사실'로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인지 오늘 사우스햄프턴에서 실제로 타이타닉 호에 탑승한 사람들의 모습을, 그들의 유산과 이야기를 보니 기분이 묘해졌습니다.



타이타닉의 3등실 사물함 열쇠



전시는 제가 예상했던 것 보다도 더 본격적이었습니다. 처음 들어간 입구에는 타이타닉 호에 탄 승무원들의 사진이 이름, 나이, 출신지역과 함께 쭉 나열되어있었는데, 그중에는 저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들도 다수라 씁쓸한 기분을 감출 수 없더군요. 저의 기분과는 반대로 전시의 시작은 매우 활기찹니다. 벽에 달려있는 손잡이를 열면 타이타닉 호에서 사용하던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기도 하고, 타이타닉 호를 직접 운전해보는 인터랙티브 코너가 있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중간에 전시실 안의 다른 방으로 넘어가는 작은 육교에서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그 부분을 지나가면 항구의 사람들이 배를 타고 떠나는 사람들에게 배웅을 하는 소리가 녹음되어 있는 것이 들리는데, 그때부터 기분이 조금 묘해지기 시작했어요. 언젠가는 다시 볼 줄 알았던 사람들을 영영 못 보게 될 줄도 모르고 안녕을 고하는 소리가 그렇게 슬프게 들릴 수가 없더군요.


그렇게 넘어간 전시장에는 타이타닉 호의 생존자들이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영상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남자 승무원 한 명과 여자 승객 두 명의 회고가 담담하게 이어집니다. 약 3분간 사고 당시의 상황을 오직 목소리로만 설명하는데, 화면에는 그들의 얼굴조차도 나오지 않았음에도 저는 도저히 중간에 일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타이타닉 호의 사고에 대해 글로 읽는 것과는 굉장히 다른 경험이었어요. 뻔하게 들릴 수도 있겠으나 어떤 사건이 역사적 사실로 인식되는 것과 누군가가 겪은 이야기로 서술되어 듣게 되는 것은 참 다른 경험입니다.



생존자들의 이름과 그들의 인터뷰 날짜



7,80년 전 일어난 사건을, 그 사고 당시 상황 기억하며 담담하게 이야기를 해 나가는 에바, 시드니, 그리고 이디스의 목소리를 듣는 저는 또 다시 묘한 기분에 휩싸였습니다. 서사는 생각보다 빨리 역사가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것이었을까요? 아무 곳에도 기록되지 못했지만, 얼마나 더 많은 에바, 시드니, 그리고 이디스들의 이야기가 그 배와 함께 대서양 바다에 잠겼을까요.


아래는 제가 기억하는 그들의 회고 중 일부분입니다.



"아빠는 엄마와 저를 구명보트에 태우고는 '조금 후에 보자, ' 하고 돌아섰어요. 
그리고 그게 제가 아빠를 본 마지막이었죠.


"깜깜한 밤바다에 침몰하는 거대한 배와 천여 명의 사람들의 비명소리는 너무나도 끔찍했어요. 
하지만 그보다 더 끔찍했던 건 그 후의 암흑과 침묵이었어요."



거시적으로만 세상을 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을 넓게, 인생을 멀리 내다볼 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은 이미 우리가 미시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노력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일부러라도 거시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보는 시각을 연습하지 않는다면, 미시적인 존재인 우리는 필연적으로 눈앞의 것만을 좇게 될 테니까요. 하지만 지난 시간을 되돌아볼 때, 인류가 살아온 발자취를 집약하여 기록한 역사를 바라볼 때 가끔은 그 역사를 살아간 사람들 역시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침몰할 수 없는(unsinkable)' 배라는 수식어를 달았었지만 결국 첫 출항에 바닷속으로 사라진 배. 올해 4월은 타이타닉 호 침몰의 110주년입니다. 아직 생각보다 그렇게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았습니다. 



타이타닉을 사우스햄프턴 항구에 묶어두던 사슬 중 일부. 거대하다.



타이타닉 호의 사고 이후로 해양 여행을 더욱 더 안전하게 하기 위해 인류는 많은 기술을 발전시켰습니다. 그러나 기술이 이만큼 발전했다고 인류가 자만해서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기술이 많이 발전했기 때문에 더욱이 인류는 자만해서는 안됩니다. 기술로 인해 세상이 더 편해지고 안전해졌다는 건, 기술이 사라지는 순간 세상은 그만큼 더 어렵고 위험한 곳이라는 것에 대한 반증이니까요. 그러니까 제 말은, 기술의 눈부신 성과에 눈멀어 우리가 한낱 인간이라는 사실을 망각하지 말자는 것 입니다. 어느 분야에서나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것은 인간을 더 나은 존재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길로 인도하지만, 결코 정말 신으로 만들어주지는 않으니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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