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빙 동지들을 만나러 스페인 그란 카나리아까지 갈 가치가 있었나?
최근 Coliving Hub에서 주최한 Coliving Gathering에 참여했습니다. 3박 4일간의 일정을 위해 무려 스페인까지 가서요. 게다가 개더링은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 같이 비교적 접근성이 좋은 대도시가 아니라 그란카나리아라는 섬에서 열렸습니다. 그 섬에서도 시내가 아니라 시내를 지나 한참 북서부로 달려가야만 하는 Agaete라는 작은 어촌에서요. 아부다비 경유해서 마드리드까지 간 다음 다시 비행기를 타고 그란 카나리아에 가서는 또 버스를 한번 갈아타고 마지막은 택시로 이동하는, 꽤나 힘든 여행이었습니다.
"과연 이렇게까지 해서 갈 일인가?"
신청하기 전에, 아니 이미 신청하고 나서도 고민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데에는 동지들을 만나고 싶다는 바람 때문이었습니다.
점점 여러 갈래로 쪼개어져 가는 세계 속에서 코리빙은 개개인의 공존 능력을 키우고, 다양성을 존중하고 기념하는 문화를 확산하는 플랫폼으로서의 역할을 더 적극적으로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가치에 동의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런 고민과 시도의 씨앗을 심을 수 있길 바랐습니다.
그러니까 뭔가 지식이나 팁을 구하러 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운영하는 코리빙은 여타 다른 코리빙과는 성격이나 환경, 운영 방식이 많이 달라서 그대로 참고할 만한 코리빙 레퍼런스는 그리 많지 않거든요. 그래서 교육이 아닌 말 그대로 모임의 이번 개더링이 저한텐 더 적합한 장이었어요. 코리빙 생태계에서 익히 듣게 되는 이름들, 인터넷에서 우연히 읽고 매우 공감한 글을 작성한 사람, 더 알고 싶었던 코리빙을 시작한 그 사람 등등을 일일이 찾아가지 않고 한 군데에서 만나 대화를 나눌 수 있다니! 게다가 코리빙을 준비하거나 관심 있는 사람까지 포괄한 장이 아니라 이미 운영하고 있는 사람들만 한정한 모임! 반가웠습니다. 표면의 이야기를 건너뛰고 더 깊은 대화를 할 수 있으니까요.
(Coliving Hub에서 주최하는 오프라인 이벤트 중 Founers Retreat의 경우 좀 더 긴 기간 동안 코리빙 운영에 필요한 실무 내용을 찬찬히 다룹니다. 혹시 코리빙 스페이스 오픈을 준비하고 있거나, 오픈 후 고민이 있다면 해당 프로그램이 더 유용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우여곡절 끝에 찾아간 Coliving Gathering!
결론부터 말하자면 참여하길 잘했습니다.
앞서 설명했던 참여 동기(단절의 시대에 다양성을 증진하는 플랫폼으로서 코리빙의 역할을 확대하고 필요한 툴을 함께 개발해갈 동료들을 찾는 것)의 좋은 시작점이 된 것 같습니다.
운영진을 포함해 20명 이내의 규모의 크지 않은 규모의 개더링이었지만 좋은 친구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대체로 이런 일을 하고 게다가 이런 교류의 장까지 찾아오는 사람들이란 많은 돈을 벌고자 이 일을 하는 게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대체로 돈이 그렇게 되진 않지만 굳이, 부러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요. 저도 그러한 부류이기 때문에 같은 족속(?)의 친구들을 만나니 일단 마음이 편했습니다. 배경을 알아가다 보면 겹치는 관심분야와 키워드들이 발견할 수 있어 '역시나!'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어딘가 한 박스에 들어가지 않는 사람. 내 사람들이 모인 곳 맞는구나, 안심했습니다. 게다가 일일이 다 말하지 않아도, 또 정확하게 경험들이 일치하지 않아도 동병상련을 나누면 얼마나 위안이 되던지요!
3박 4일 동안 다양한 고민과 경험을 틈틈이 나눴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의 고민에 포커스 맞춰 다 함께 머리를 맞대는 마스터마인드(Mastermind)는 단연코 개더링의 꽃이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 그랬을 거예요. 그 세션이 조금 더 길었으면, 조금 더 창조적인 방식으로 운영되면 더 좋겠다는 게 저 포함 복수의 의견이었어요.
고민을 듣자면 크게 이런 두 가지 생각이 들었어요.
"아, 나만 이런 문제가 어려운 게 아니구나!" "이런 고민을 하고 있구나. 반갑다!"
전자의 케이스는 다음과 같은 사례가 있었습니다. 한 코리빙에서는 물가가 미친 듯 올라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선 멤버십비를 조금은 올려야 하는데 차마 올리지 못하고 주저하고 있었습니다. 기존 알럼나이들의 반응이 어떨지, 올린 이후에 특정 나라의 사람들만이 향유할 수 있는 커뮤니티가 될 것을 걱정하고 있었어요. 다양성을 지키고 싶었던 거죠. 저도 비슷한 성장통을 겪은 적이 있어요. 매우 매우 괴로운 과정이었죠. 그래서 많이 공감이 되더군요.
한편으론 놀라기도 했습니다. 사실 이 고민을 했던 친구의 코리빙에 지내본 적이 있는데 겉으론 너무 성공적으로 보였거든요. 유지 비용이 꽤 들겠다고 으레 짐작을 하긴 했지만 그 이상으로 사실은 그들에게도 코리빙은 좋아서 하는 것이고 돈이 전혀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의외로 우리가 같은 고민들을 했다는 것을 알고 나니 크게 두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역시 겉보기로는 실제를 알 수가 없다는 것.
그렇기에 겉만 보고 부러워할 필요도 없고,
그 실제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실망하거나 서운해할 필요 없다는 것.
그의 고민을 들은 다른 팀에서 점진적으로 멤버십비를 올린 경험을 나눠주며 그의 방향을 지지해 주었습니다. 저는 제가 그의 코리빙에서 지낸 경험을 바탕으로 이번을 계기로 오히려 다른 지역 출신의 멤버들을 모집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을 거라 격려했습니다.
이렇게 경험과 의견을 나누면서 상호 협력, 개방성, 투명성, 공유의 정신이 빛나는 분야가 코워킹/코리빙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고요. 이전에 코워킹 업계에서 일할 때에도 사랑하고 자부심을 가졌던 이 특별한 상호 연결감을 다시 경험할 수 있어서 정말 반가웠습니다.
후자의 케이스 중 인상 깊었던 것은 지역사회에 대한 임팩트이었습니다.
두 사람이나 해당 고민을 던졌죠. 어떻게 하면 코리빙 커뮤니티 멤버들이 지역 사회와 융화되게 할 수 있을까, 지역 사회에 긍정적 임팩트를 만들 수 있을지, 책임 있는 체류를 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인가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질문을 던진 두 팀 모두 카나리 제도의 섬에서 각각 코리빙 또는 커뮤니티 호스텔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디지털노매드들의 커뮤니티는 종종 로컬과의 교류에 소극적 자세를 보여 그들만의 리그, 버블을 형성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그런 대표적 문제 외에도 물 문제가 거론되었어요. 근래 카나리 제도군에서는 심각한 가뭄에 시달렸다고 해요. 농사에도 큰 영향을 미치기도 했고요. 그래서 지내는 이들에게 물을 아껴 써달라고 요청해도 잘 실천이 안 되더라는 겁니다. 마침 개더링이 진행되던 토요일에는 그란 카나리아에서 꽤나 큰 시위가 열리기도 했습니다. 지속가능한 투어리즘의 필요를 주장하는 행진이 이루어졌는데요, 관련 질문을 했던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참여하고 와서 어떤 분위기였는지 나누어주었습니다. 미디어에서는 디지털 노마드를 원치 않는다는 식으로 묘사했지만 그건 일부일 뿐, 주요 어젠다는 지속가능한 관광, 노마드 체류 인프라의 필요에 대한 요구였다고 알려주었어요. 이런 문제에 신경을 써주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더없이 기뻤습니다.
어떤 친구는 멤버 큐레이션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어요. "적지 않는 사람들이 우리더러 왜 멤버들을 선발제로 뽑지 않느냐고 묻는데 큐레이션 해야 할지 고민이야" 이런저런 의견이 오가는 가운데 큐레이션을 제일 빡세게 하는 저희 커뮤니티 사례를 조금 공유했어요. 왜 하고, 어떤 과정을 거쳐서 지금의 형태가 되었고, 어떤 식으로 이를 커뮤니티 빌딩에 활용하는지를요. 저희 커뮤니티는 신청서를 모든 코리버들이 다 같이 열람하여 볼 수 있고 피드백을 나눌 수 있습니다. 역시나 다들 신기하게, 흥미롭게 여겨주었습니다. 큐레이션 외에도 여러 면에서 색다르게 하고 있기에 나중에 이런 코멘트를 받기도 했어요.
"너희 커뮤니티에서 하고 있는 것들 참 창의적인 것 같아. 그 아이디어들은 어떻게 나온 거야? 너가 한 거야?"
예기치 못한 칭찬에 어쩔 줄 몰라하며 고맙다고 했어요. 한편으론 괴짜로 보이진 않을까 걱정도 했었던 것 같은데, 의외로 이렇게 친구들의 인정을 받기까지 하다니, 고무적인 일이었습니다.
마지막 차례에 나눈 저의 고민은 어떻게 하면 개개인의 트라우마를 넘어서, 판단을 넘어서 더 깊은 상호 이해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까였습니다. 저희 커뮤니티 내에 있었던 갈등 사례를 소개하면서요.
한 장기 멤버가 주방 관리와 쓰레기 분리수거에 관해 리마인드 하는 메시지를 디스코드 (저희는 온라인 소통 채널로 디스코드를 사용하고 있어요)에 올렸는데, 그걸 보고 한 단기 멤버 (체류기간 2개월)가 기분이 상한 거예요. 그는 굳이 왜 그런 이야기를 온라인으로 하느냐는 거였어요. 자기라면 대면해서 이야기하는 게 훨씬 나을 거라는 게 그의 입장이었고, 리마인드를 보낸 장기멤버가 마이크로 매니징 한다고 판단했어요. 어찌어찌 표면 상에서는 오해를 풀고 서로의 감정과 상황을 나누고 봉합이 되었는데, 아주 깊숙한 곳에서는 각자의 생각이나 감정이 많이 바뀌진 못한 듯했습니다. 상당히 아쉬운 일이었습니다.
두 가지 제안을 받았습니다. 한 친구는 자기 커뮤니티에서 진행하는 리스닝 서클(Listening Circle)을 추천했습니다. 한 사람이 자기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생각, 감정 등등)을 이야기하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피드백이나 질문 없이 그냥 무조건 듣기만 하는 쉐어링의 형태입니다.
다른 한 친구는 그런 생활 매너에 대한 공지성 리마인더가 올라가고 나면 개인적으로 받아들이지 말라고 뒤이어서 상기시키는 메시지를 올려볼 것을 권유했습니다. 둘 다 커뮤니티에 돌아가면 시도해 보겠다고 했어요. 과연 효과가 어떨지, 어떻게 멤버들이 받아들일지 궁금합니다.
유럽에서는 노마드 인구 증가 & 코리빙 스페이스에 대한 인기로 팬데믹을 기점으로 코리빙 스페이스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그중에는 코리빙 스페이스로 부를 수 없다고 보이는 공간들도 더러 생기는 거죠. 안 그래도 저도 그란 카나리아에서 코리빙으로 스스로를 부르는 곳에 1박 해봤는데 호스텔과 다를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이로 인해 코리빙 스페이스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지기도 하는 악영향을 입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진짜 코리빙과 그렇지 않은, 이름과 코리빙인 곳을 구별할 수 있는 판별 인증 개발에 Coliving Hub에서 나섰습니다. 해당인증의 취지와 기준을 대략 설명한 뒤 인증 여부와 등급을 판정하는 서베이를 다 함께 테스트했습니다. 답변 후에 질의응답 및 피드백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어요. 인증과 등급 판정에 객관성을 더할 위원회를 꾸릴 것인지, 위원회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 그렇게 한다고 했을 때 인증을 유료화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할 것인지 등등 논의를 나눴습니다.
제가 냈던 의견은 커뮤니티 분야였어요. 몇 가지 항목을 체크하여 커뮤니티의 정도를 일직선으로 점수화해서 내는 것은 커뮤니티에 대한 명확한 그림을 제시하지 못하는 것 같다. 커뮤니티도 사람들의 기대도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으니, 이를 서포트할 수 있도록 어떤 커뮤니티인지를 전달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제안했습니다. 어떤 채도, 어떤 밀도, 어떤 리듬의 커뮤니티인지를 판별할 수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CGV 앱에서 영화 평가 하는 것처럼 말이죠.
"어때? 이 인증서를 필요로 해? 나오면 쓸 것 같아?"
세션을 진행하던 친구가 던진 마지막 질문에 과반의 손이 올라갔습니다. 저는 골몰하다가 손을 들진 않았어요. 인증서의 필요성에 대해선 공감할 수 있었지만, 여전히 저희 커뮤니티에 해당되는 내용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있으면 나쁘진 않을 것 같습니다. 커뮤니티 중심인 코리빙만 찾아다니는 노마드 친구들이 있어요. 그런 친구들은 서울에 내가 원하는 커뮤니티가 있네, 하고 올 수도 있을테죠. 결코 많지는 않겠지만 말입니다. 어떠세요? 노마드이시거나, 코리빙을 운영하고 계시다면 인증서가 있다면 어떨 것 같나요? 어떤 인증서가 필요할까요?
마스터 마인드, 코리빙 인증서 관련 세션 외에는 코리빙 허브 소개가 있었습니다. 스위스와 그리스에서 코리빙 스페이스를 운영 중인 Escape팀이 스위스에서 시작했을 때만 해도 노마드를 대상으로 하는 코리빙이 유럽 전역에서 다섯 군데밖에 없었더랍니다. 그래서 지식과 경험을 나누고자 시작한 게 코리빙 허브입니다. 제가 참여한 오프라인 이벤트는 연 2회 정도 열고 이 외에는 온라인 이벤트를 주기적으로 열고 있습니다. 주제도 상당히 다양해요. 언젠가 참여해보려고 합니다. 참고로 Coliving Hub 외에도 Mapmelon이라는 '진짜' 코리빙만 큐레이션 해서 소개하는 앱에서도 코리빙 운영자들을 위한 지식 공유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유사하지만 그렇다고 배타적 관계는 아니고요. Mapmelon 창업자들도 코리빙 허브 커뮤니티의 멤버이기도 하죠. 무튼, 앞으로 코리빙 스페이스가 증가하면서 이런 플랫폼과 조력자들 생태계 역시 풍성해질 것 같은 예감이에요.
Coliving Hub 팀에는 Escape 창업자 외에도 다양한 친구들이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자신의 공간을 가지고 있지 않아도 다수 코리빙에서 봉사자 또는 커뮤니티 매니저로서 일하며 다니는 반 노마드 반 커뮤니티 매니저 역할을 하는 친구들인데요. 그중 한 커플과는 추후 한 코리빙에서 만나기로 해 기대가 됩니다. 한 커플은 코리빙에서 만나 아예 자신만의 공간을 오픈하였고, 다수 코리빙 오너들이 찾아와 오픈을 축하해주기도 했다네요. 상부상조하는 유럽 코리빙 생태계가 참 보기 좋아 보였습니다.
저희 개더링을 호스팅 해준 Repeople 팀의 소개도 기대 이상으로 흥미로웠습니다. 원래 그란 카나리아 출신으로 여러 기회와 배움을 위해 섬을 떠났으나 종래엔 고향이 그리워 돌아온 나초씨(Repeople 대표)가 코워킹으로 시작해 코리빙까지 사업분야가 진화한 팀인데요.
앞서 코리빙에는 돈 말고 다른 것을 보고 시작하는 사람이 많다고 했는데, 그렇다고 다들 코리빙으로 돈을 못 버는 것은 아닙니다. 수익을 잘 내는 팀들도 적지 않죠. Repeople 역시 저희가 모임을 가졌던 Agaete 지점을 통해 충분한 순수익을 남겨 건물주들도 만족시키고 있다는데요. 예전에 애매한 호텔로 운영될 때는 유지 비용(많은 포션이 인건비, 예컨대 리셉션 상시 대기 인원 고용비)으로 오히려 적자가 나는 때가 많았다고 해요.
Repeople이 맡아 일단 착수한 일들 중에는 이러한 고정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시설을 손 보는 것이었습니다. 카드키 같은 시스템을 폐지하고 건물 입구, 코워킹 입구, 개인 방 모두 각자에게 부과되는 비번을 동일하게 입력하면 열 수 있는 시스템으로 바꾸어 리셉션에 누군가가 없어도 되게 하는 거죠. 마찬가지로 기존에 있던 코인 세탁기도 코인 없이 이용 가능한 세탁기 변경했습니다. 코인이 있으면 누가 또 코인을 바꿔줘야 하고 에러가 생길 수도 있는데 그런 이슈에 대응할 노동력을 갖추는 것보다는 차라리 세탁을 편하게 하게 하는 것이 최종적으로 비용이 저렴하다는 판단에서였습니다.
매년 노마드시티라는 이벤트를 주최하고 있으며, 그란 카나리아 전반에 걸쳐 두세 군데 정도 지점을 운영하고 있음에도 팀 인원이 나초를 포함해 3-4명으로 유지하고 있는 것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인상 깊었던 것은 Agaete 지점은 임대비를 내고 운영하는 게 아니라 건물주와 수익 셰어 모델로 운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루프탑에 설치된 태양광 발전 시설 같이 장기적으로 건물에 붙어 있을 시설은 건물주가 부담을, 그렇지 않은 소모품, 운영비용, 단기 소모 자재(?) 등은 리피플에서 투자하고, 순수익을 나눠가진다고 합니다. 보증금, 월세 등과 같은 고정 비용 리스크를 최소화해서 운영할 수 있는 좋은 방식이라 생각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저희도 언젠가 추가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만,,, 그런 건물주를 어디에 계실까요? :)
그란 카나리아에 대해서 처음 인지하게 된 것은 노마드 리스트 (Nomad List)를 통해서였습니다. 오랜 기간 상위에 랭킹 되어 있었고, 언젠가는 1위를 한 적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노마드리스트 뿐만 아니라 여러 다수 미디어를 통해서 소개가 되면서 많은 관광객과 노마드들이 사랑하는 섬입니다. 그래서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멀긴 했지만 겸사겸사 개더링을 위해 방문할 핑곗거리가 생겨서 잘된 일이기도 했죠!
제가 방문하는 시기 동안 마침 그란 카나리아 라스팔마스에 있었던 노마드 친구 커플은 연중 6개월 가까이를 이곳에 머문다고 했습니다. 연중 온화한 기후의 그란 카나리아 안에서도 라스 팔마스는 바다가 시내에 바로 접하고 있어 편의성과 자연환경, 재미, 커뮤니티 모두를 갖추고 있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심지어 한국 식당도 많다는 것! (나중에 찾아보니 한국 근현대사의 굴곡과 연관된 곳이었습니다!) 한국 음식을 좋아하는 친구에게는 파라다이스 그 자체인 셈이죠. 친구는 라스팔마스가 짱이라며, Agaete는 쳐주지 않았는데요, 크게 기대 없이 가서 그럴까요? 전 기대보다 Agaete가 라스팔마스보다 더 좋았습니다.
Repeople 루프탑에서 보는 경치가 끝내주고 10분만 걸어가면 등산로에 깨끗한 자연 풀이 있어 접근하기 너무 좋고, 리피플 코워킹 앞에 있던 bici cafe라고 보난자 커피 원두를 써서 만족스러운 커피도 마실 수 있고 저는 충분히 좋았고 오히려 편했습니다. 그란 카나리아 안에서도 유일하게 하양 & 파랑 컬러인 마을로 가성비 좋고 여유로운 산토리니의 느낌이 살짝 있습니다.
개더링 중간에 함께 야외활동을 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이를 통해 아가에테의 자연을 느끼고, 문화 역사를 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등산은 상당히 쉽고 평탄할 거라고 했던 안내와는 달리 상당히 가파르고 예상시간을 2시간 정도 초과했습니다만, 쉽지 않았던 만큼 함께 그 여정을 잘 마친 친구들과 더 끈끈해지기도 했지요. 안 그래도 가장 대화를 많이 나누어보고 싶었던 팀 Moom 멤버들과 등산 페이스가 비슷해서 숨을 헥헥 거리는 가운데 서로의 인생 이야기를 나누면서 함께 산을 올랐습니다.
Moom은 함부르크 외곽 자연 속에 위치한 마인드풀 코리빙 스페이스입니다. 파운더들 포함해서 5명으로 규모가 딱 저희가 시작했을 때와 비슷해요. 이 친구들이 바로 앞서 listening circle을 추천했던 친구들인데요, 지속가능성 관련 백그라운드가 있는 운영진 친구들과 제가 참 결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들의 코리빙에서는 매주 수요일 청소파티를 연다고 해요. 다 함께 모여서 같이 집 청소를 하고 뒤이어 축하하고 기념하는 자리입니다. 이 시간을 유독 멤버들이 좋아한다고 해서 놀랐습니다. 청소를 통해서 더 집에 대해 잘 이해하고 주인의식을 느낄 수 있어 좋아한다고 해요. 바쁘게 돌아가는 서울과 같이 대도시에 자리한 저희 커뮤니티에서는 아무래도 실행이 어려울 것 같지만, 언젠가 시골에서 하게 된다면 으레 모두들 청소는 싫어할 거야라고 짐작하지 않고 시도해 보자고 생각했습니다.
등산의 끝에는 커피와 와인을 테이스팅 하고, 카나리 제도 특유의 소스, 모호를 만들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모호를 만들면서, 이후 물가 옆에서, 식사를 하면서, 또 행사가 공식 종료하고 난 뒤 밤 시간, 그다음 아침 식사 시간에도 대화는 끊이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날 아침 식사 시간에 만난 Etti는 자기 커뮤니티에서 시도해 보면 좋을 만한 게 있으면 추천 좀 해달라며 물었고, 커뮤니티 내 갈등에 관심이 많은 저는 각 커뮤니티에서의 갈등 상황, 어려웠던 사람, 상식에서 벗어난 행동으로 당황스러웠던 경험들을 자주 물었습니다.
벌써 구체적 내용들은 이제 기억이 가물가물한 가운데 느꼈던 점은 세상에 정말 가지각색의 사람이 있다는 겁니다. 아시아에서 서양 친구들이 과반을 차지하는 커뮤니티를 운영하면서 겪는 어려운 상황들에 대해 누구도 공감할 수 없을 거란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예컨대 세상에서 가장 세밀하게 분리수거를 하는 한국에 불시착한 외국인 친구들을 대상으로 분리수거 교육을 얼마나 하는지 모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일반 플라스틱과 분리한 비닐이라는 개념을 3개월을 지낸 시점에도 어떤 이들은 전혀 이해를 못 하기도 해요. 노력을 안 하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마치 문과생한테 미적분 가리치는 수준입니다.
하지만 서양에서 서양인들을 대상으로 운영되는 코리빙에도 마찬가지로 예상 범위를 뛰어넘는 사람과 상황, 관계들이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으며, 제 처지에 대해 좀 더 초연한 자세를 가지게 되었어요. 예컨대 한 멤버가 와서 건조기가 성능이 약한 것 같다, 옷이 너무 천천히 마른다고 불평을 했대요. 그런데 알고 보니 급했던 그 친구가 세탁 전체 시간을 줄이려고 세탁기에 돌아가고 있던 옷을 탈수 기능 시작하기 전에 그냥 꺼내서 건조기에 던져 넣었던 겁니다. 도무지 그 사고방식이 참 가늠이 안되어 입이 떡 벌어졌습니다. 그 이야기를 하는 친구는 배꼽이 빠져라 웃었고요.
정말 어디에도 쉬운 길은 없구나 생각하며, 그냥 내가 가는 길에 집중하자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다녀오길 참 잘했다고 생각하는 코리빙 개더링이었지만, 그래도 이것만을 위해서 스페인 카나리 섬까지 올 결단을 하기는 여전히 쉽지 않았을 겁니다. 네, 그렇습니다. 여정은 개더링이 시작일 뿐입니다!
앞으로 스페인에서 두세 군데의 코리빙 스페이스를 경험할 예정입니다. 접근성이 떨어지는 시골에 자리 잡은 곳에서요. 시골에서의 코리빙 실험이 가장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곳이 바로 스페인이랍니다. 지방 인구 소멸 문제가 유럽에서 가장 심각한 곳이면서도 또 노마드들을 유혹하는 아름다운 자연을 갖춘 마을들이 많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어느 하나만을 가지고 유럽행을 결단하긴 어려웠기에, 코리빙 개더링이 있을 때 겸사겸사 넘어오기로 결정한 것이었답니다.
앞으로 코리빙 스페이스들을 다니면서 제가 답을 찾고 싶은 질문은 "도시의 분주함에서 벗어나 자연에서 가까운 환경이 자신과의 연결, 이를 바탕으로 타인과 사회와의 더 깊은 연결과 이해에 이르는데 도움이 될까?"입니다. 처음에 이곳이다, 이 사람들이다! 하고 꽂혔던 Sende라는 코리빙에는 가지 못하게 되었지만 근처 Anceu를 비롯해 몇 군데 경험할 예정입니다. 무엇보다 제가 이를 즐길 수 있는지 살펴보고 싶고, 어떤 방식으로 도시 밖 코리빙 실험을 디자인할 수 있지 구상해 볼 예정입니다.
6월 말에는 감사하게도 불가리아 반스코에서 열리는 최대 노마드 페스티벌, Bansko Nomad Fest에서 연사로 서게 되었습니다. 제가 다문화 환경에서 빚어진 갈등으로 배운 것을 나누고 귀국 예정이랍니다. (페스티벌에 오신다면 다음 코드를 활용하면 10% 할인을 받을 수 있답니다! seoulnooks_bnf24)
마지막 행사가 첫 일정이었던 개더링과 많이 떨어져 있다 보니 거의 3개월 간 떠돌게 되었는데요, 좋은 배움 얻고 중간중간 이렇게 나누다 돌아가겠습니다. 코리빙 여정 많이 응원해 주시고요. 그럼 아디오스(Adi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