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너드의 유럽 코리빙 대장정 TMI 기록 2
스페인 카나리아 제도에는 여러 섬이 있다. 디지털노마드를 비롯해 다양한 여행객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곳으로 대표적인 곳으로 그란 카나리아와 테네리페 두 곳이 꼽힌다. 코리빙개더링 참석차 멀리 그란 카나리아까지 갔으니, 바로 옆 테네리페에 안 가볼 수 없었다. (그란 카나리아에서 테네리페까지는 페리로 2시간이면 갈 수 있다.) 내 주변 노마드 친구들 중에는 테네리페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는 이들이 더러 있었던 터다. 그들이 그렇게 극찬하던 테네리페의 무엇이 그렇게 특별한 걸까 궁금증을 풀 기회였다.
테네리페로 가기로 결정하면서 언제 가보려나 했던 Cactus Coliving에서 지내보기로 했다. 테네리페엔 다수의 코리빙 스페이스가 있다. 그중 가장 원조는 Nine Coliving으로, 카나리뿐만 아니라 유럽 노마드 코리빙 생태계 내에서도 큰 영향을 끼친 원조 중 하나다. 하지만 개인적으론 Nine을 알기 전에 Cactus Coliving을 먼저 알게 됐다. 언젠가 내 피드에 떠서 좋아요 했더니, 종종 소식이 뜨기 시작했다. 공간의 시그니처 황토색깔 벽 페인트 색과 초록 선인장의 합이 주는 이국적인 미감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노마드가 운영하는 타 코리빙들보다 스페인 사람이 운영하는 Cactus 쪽이 좀 더 로컬향 경험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가지게 됐다. 태양광 발전시설을 설치하는 등 환경에 대한 임팩트 역시 조금 더 신경 쓰는 듯 보였고. 결정타로는 코리빙 스페이스를 많이 다닌 친구 Theo가 다녀간 곳이란 점이었다. 마치 최자로드처럼, 그가 다녀간 코리빙이라면 기대를 해도 좋았다.
뭐 이리저리 overthinking의 결과 테네리페에서 8박 9일의 체류 일정을 정했다. 하지만 섬에 이동하는 페리 안에서도, 코리빙으로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도, 코리빙에 도착하는 순간까지도 나는 아무런 계획이 없었다. 테네리페에 대해서 여전히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인터넷 검색을 하긴 했지만 성실하게 하지 않았다. 그냥 커뮤니티 일정을 따르고, 다른 사람들이 제안하는 것이 있다면 따르고, 뭣도 없다면 그냥 열심히 일하면서 지내도 충분할 것이었다.
그 이상을 준비할 여력이 도무지 없었다. 무엇보다 우선은 테네리페에, Cactus에 무사히 도착하는 것만 신경 쓰기에도 벅찼다. 아, 구구절절 말할 수 없지만 이번 유럽 일정은 전반적으로 상당히 피곤하다. 내가 가는 곳 전부가 다 산골짜기, 메인 동네가 아닌 서브 동네에 있다 보니 환승을 여러 번 해야 했고, 환승을 할수록 다름 교통편의 운행 빈도 역시 뚝뚝 떨어졌다. 고로 나는 다음 버스를 놓치지 않고 잘 타고, 내려야 할 곳에 잘 내리는 것, 내 짐을 잘 간수하는 것 등에 집중해야 했다.
영차영차 짐을 끌고 Cactus에 도착했을 때는 마침 패밀리 디너가 시작하고 있었다. 커뮤니티 전체 인원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체류 기간도 짧기 때문에 가능한 한 이 타이밍을 놓치지 않으려 일정을 조율해 일부러 월요일 저녁 전에 도착하도록 움직였다. (Cactus를 비롯해 커뮤니티에 신경을 쓴다 하는 destination coliving - 도시가 아닌 여행지에 만들어진 코리빙 - 에서는 주 1회 패밀리디너와 바로 뒤이은 패밀리미팅을 하는 곳들이 많다. 하여, 일요일 또는 적어도 월요일 저녁 전에 코리빙에 도착하면 좋다.)
대충 내 방에 짐을 풀고 바로 패밀리디너에 합류했다. 누군가 만든 맛있는 수프를 대접받으면서 시작했다. 수프는 비건, 논비건용이 따로 있었다. 나는 실수(?)로 비건 수프를 먼저 먹고, 그다음 논비건용 수프를 한번 더 떠먹었다. 수프를 먹고 나선 누군가 할머니 레시피로 만든 브라우니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황홀한 일이었다. 반나절 이상 이동의 수고를 들여온 뒤 먹는 디저트는 더욱 달고 맛있었다.
식사 시작 전에 새로 온 멤버들의 자기소개 시간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나 역시 간단히 자기소개를 했다. 대략 20여 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이렇게 큰 그룹의 코리빙은 처음이라 조금 쑥스럽기도 했다. 내가 앉은자리 맞은편에는 마침 또 다른 코리빙 스페이스, Cloud Citadel 창업자 Joe가 앉아 있었다. 내 전체 유럽 일정과 그 목적, 반스코 노마드 페스티벌 발표 주제를 소개하다 보니 텐션 & 갈등에 대한 코리빙 운영자의 역할에 대한 토론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저녁 식사 끝에는 간단히 한주 동안의 계획을 수립하는 가족회의가 진행됐다. 일주일간 요일별 일정을 논의했다. 화요일에는 이미 예정되어 있는 지역 농가 방문이 있었고, 수요일엔 정기 비치 발리볼이 예정되어 있었다. 목요일 스킬 쉐어 시간에 나누고 싶은 지식이나 스킬이 있는지 진행자가 물었지만 당장에 올라가는 손은 없었다. 함께 노래를 부르는 시간을 가지고 싶어 했던 Doug이 그 시간을 이용하기로 했다. 우리 커뮤니티에서라면 엄청나게 호응이 많았을 제안이었지만, 흥미롭게도 이곳의, 그때 모인 사람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지는 못했다. 맛보기로 몇 곡을 치고 함께 노래를 불렀다. 토요일엔 매주 미니 트립을 진행하는데 아마 하이킹이 될 것이라는 예고를 받았고, 구체적인 내용은 슬랙으로 공지가 올라올 것이라 했다. 거의 10분도 안 걸렸던 것 같다.
신속한 패밀리 미팅이 끝나고 운영자 마리아가 와서 인사를 건네왔다. “너의 한국에 있는 코리빙에 대해서도 너무 알고 싶어!” 마침 코리빙 운영자가 세 명이나 있으니 우리만의 미니 밋업을 가지기로 했다.
그렇게 무계획으로 온 내 일주일은 금방 가득 찼고 실제로 아주 알찬 일주일을 보냈다.
패밀리 디너의 뒷정리를 간단히 도와준 후 내 방에 돌아와 짐을 풀기 시작했다. 옷장에는 먼저 들어와 지내고 있던 룸메이트의 옷으로 가득했다. 대신 커다란 수납장이 1인당 하나씩 주어져 있었고, 내 옷들을 넣고도 충분히 남을 만한 사이즈여서 문제는 없었다.
일주일 간의 룸메이트는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영어가 거의 안 되는 사람이었다. 아르헨티나에 2개월 지냈던 경험이 있어 무지 반가웠으나 내 부족한 스페인어로 인해 많이 소통하진 못했다. 나이는 나보다 한 20살은 더 많아 보였다. 한 50대 정도 될 것 같았다. 해변에서 휴양지 스타일의 드레스들을 판매했다. 일주일간 커뮤니티 이벤트에선 딱 한두 번 만났고 그 외에는 밤에 잠깐 얼굴 보는 정도. 커뮤니티에는 크게 뜻이 없어 보였다.
내가 운영하는 코리빙에서는 기본 개인 방이다. 건강한 커뮤니티 라이프를 위해서는 각자 자기만의 방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공유 공간에서는 다양한 인터랙션이 일어나고, 이에 따른 다양한 감흥들이 따라온다. 그 감흥에 대해서 스스로 소화하는 개인의 시간과 공간이 충분히 주어져야 한다고 믿었다. 게다가 2인실을 허용하는 순간, 그 안에서 일어나는 텐션 & 갈등 역시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이와 함께 따라오는 드라마를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한편 코리빙에 대한 경제적 접근성을 더 높이기 위해서는 셰어룸 타입에 대해 고려해봄직 하다 생각했다. 내가 너무 지레 걱정을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나 역시 예산의 문제로 비용을 최소화해야 할 필요가 있었고, 코리빙 내 셰어룸 생활을 함으로써 이에 대한 내 관점을 재정립할 수 있는 기회로 삼기로 했다. 과연, 전혀 모르는 사람과, 또한 어떠한 코디네이션 없이 배치되는 조건 속에서 같이 잘 지낼 수 있을까? 불편하다면 어떤 것이 불편할까?
일주일이란 짧은 시간으로 무엇을 말할 수 있겠냐만은, 큰 문제는 없었다. 조금 불편했던 점은 아무래도 룸메이트가 일찍 잠들거나 내가 그보다 일찍 일어난 경우, 아무리 그가 편하게 하라고 할지라도 방 안에서의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한 거다. 욕실에 최소한의 개인용품을 둘 수 있도록 세팅한다면 훨씬 편했을 것 같다. 그나마 욕실이 방 바깥에 있었던 건 정말 좋았다.
우리 두 사람의 수면 시각이 정확히 일치하지 않았지만, (내가 더 늦게 자고 더 일찍 일어남,,) 엄청나게 큰 갭이 있진 않았다. 주변에 큰 엔터테인먼트가 없는 환경에, 30-40분 소요되는 시내 방향 버스는 30분 또는 한 시간에 한 번씩 다니니까, 차가 있는 게 아니라면 대체로 11시 정도 되면 집도, 동네도 전체적으로 조용해졌다.
이런 환경에서라면 룸 셰어란 옵션을 열어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방 한 두 곳 정도에 한해서.
다음 날, 리더 스탭 Bartoz로부터 하우스 투어를 받고 난 다음 본격적인 테네리페 일주살기가 시작됐다. 그리고 그 일주일은 정말 순식간에 지나갔다. 계획 없이 갔는데 알차게 보내고 올 수 있었다. 왜 다들 테네리페, 테네리페 하는지, 테네리페의 매혹적인 micro-climate이 어떤 의미인지, 어떤 모양인지 알 수 있었다. 매일 완벽하게 휴가 모드가 아닌 이상, 일하면서도 섬을 경험하기에 일주일은 턱 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그런 테네리페를 더 잘 알게 해 준 데에는 Cactus Community 역할이 크다. 한편으론 Cactus 덕분? 때문? 에 게을러지는 면도 아이러니하게 발생했다. 대부분의 필요들이 그 코리빙 스페이스 내에서 충족되었기 때문이다.
Cactus의 부지가 상당히 컸다. 그리고 개방된 오픈에어 공간이 많았다. 비가 많이 오지 않는 지역의 플렉스랄까. 20여 명의 사람들이 있어도 붐빈다는 느낌이 전혀 없었다. 두 곳의 코워킹 스페이스뿐만 아니라 여기저기 흩어져 일을 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코워킹 스페이스는 조용하게 하는 집중 코워킹 공간과 대화를 해도 되는 캐주얼 코워킹 공간으로 나뉘어 있었다. 나는 캐주얼 코워킹을 보자마자 한눈에 반해 주로 그곳의 한 자리에 붙박이처럼 일했다. 높은 층고에 날씨가 특히나 좋으면 천장 천막을 개방해 하늘도 바로 볼 수도 있고, 자연 바람이 들어왔다. 갇혀 있는 듯한 느낌을 싫어하는 나에게 최적의 업무 환경이었다. 때로 질리면 야외 다이닝 공간에서 정원을 바라보고 앉아 일했다. 갑갑한 느낌이 전혀 없으니 다른 카페를 가고 싶단 생각도 들지 않았다.
넓은 루프탑에서 이틀에 한 번은 무료 요가 세션이 있었다. 산 뒤로 올라오는 태양을 바라보며, 반대편으로 지는 석양을 바라보며 요가 수업이 진행됐다. 매번 출석하는 사람은 3명 내외로 거의 정해져 있었다. 주말엔 조금 더 많아졌다. 매일 아침엔 고퀄 아침 식사가 제공이 되었다. 인근 로컬 농가에서 제공받은 파파야, 배, 바나나 등의 과일과 달걀, 매일 베이커리에서 공급 받는 신선한 빵, 홈메이드 그래놀라, 때로는 팬케이크나 츄로스가 나왔다. 때론 정원에서 수확된 신선한 아보카도가 나오기도 했다. 평소 간헐적 단식을 이유로 먹지 않던 아침식사를 먹을 수 밖에!^^; 거하게 아침 식사를 하고 점심을 가볍게, 또는 아예 건너뛰었다.
공유 음식들을 위한 전용 냉장고 칸이 있었는데, 패밀리디너 후 상당히 남은 음식이 거의 4-5일은 누군가 먹어주길 기다리고 있었고, 사람들의 드나듦이 많은 만큼 매번 새로 떠나는 멤버들이 남기고 가는 식자재나 음식들이 떨어지지 않았다. 냉장고 파먹기로만 여러 주 살아남을 수 있을 자신이 있었다. 실제로 나는 거의 장을 보지 않았다. 이래선 안되겠다 싶어서 일부러 금요일 인근 파머스 마켓에 산책을 핑계 삼아 다녀왔고, 빈손으로 오기 그러니까 딱 2유로 정도 장을 봐왔다. 커뮤니티에서 오거나이징해준 트립이나 한 멤버가 제안해 준 활동이 아니었다면 코리빙 안에만 있을 뻔 한 셈이다.
Cactus 대표 마리아가 어릴 적부터 알았던 동네 이모님이 가꾸시는 밭에 방문할 수 있었다. 혼자서 꽤나 큰 규모의 텃밭을 가꾸고 있는 탓에 무지 바쁘신 편이었고, 3개월에 한 번 정도만 방문한다는데 내가 있는 기간에 마침 방문이 잡혔다. 전부 유기농으로 키워지고 있는 텃밭을 그의 설명을 들으며 둘러보고 허브를 만져서 향기를 맡아보기도 했다. 끝에는 주방으로 돌아와 카나리 제도 스페셜 소스, 모호를 만드는 레시피와 과정을 보여주셨다. 이후 카나리 특산 미니 감자를 소스에 찍어 먹으면서 유기농 와인을 곁들여 마셨는데 정말 최고였다. 같이 참가한 친구들 말로는 시중에 파는 어떤 모호 소스와도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한 병에 5유로씩 직접 구매도 가능하다. 빨간색 한 병, 초록색 한병 총두병을 사 와서 일주일 내내 요리조리 잘 믹스매치해서 먹었다. 우리가 Cactus에서 먹는 아침 식사의 많은 것들이 그녀의 농장에서 온다는 사실을 듣고, 또 실제로 방문하고 나니, 이후 아침 식사를 먹을 때마다 좀 더 감사하고 소중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지난주에 카이트 서핑하고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테이데 산에서 석양을 봤는데 너무 좋아서 다시 가려고. 내 차에 4명 더 태울 수 있어. 같이 갈 사람?” 프랑스 알프스 지역 코리빙 운영자 Joe가 슬랙에 올린 게시물에 거의 모든 사람들이 반응했고 곧 9명의 파티원이 구성되었다. 다행히 다른 멤버가 그날부터 차를 렌트하기로 하면서 차 2대로 나누어 모두가 갈 수 있게 됐다. 수요일에 정기적으로 이루어지는 비치발리볼은 따라서 각하되었다. 해가 길어서 석양을 보러 가는데도 수요일 오후 7시 반쯤 출발해도 충분한 시각이었다.
알고 보니 테이데 산은 스페인에서 최고로 높은 산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화산지형이라고. 꼬불꼬불한 길을 한참 올라가는데 고도가 바뀔 때마다 바뀌는 식생과 풍경, 암벽, 산을 감상하며 나는 와우하고 감탄사를 연신 내뱉었다. 운해 위로 해가 가라앉는 것을 잠시 조용히 지켜보았다. 늘 놀라지만 해 지는 건 정말 찰나다. 해가 지고 운해 주변으로 하늘색이 바뀌어가는 것을 바라보며 다 같이 조금씩 준비해 간 간식들& 와인을 나눠먹었다. 다른 팀은 먼저 가고, 우리 차 팀은 남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커뮤니티의 희로애락, 갈등에 대한 생각을 많이 나누었다. “와, 달이다!” 해가 질 때 반대편 하늘로 달이 동시에 떠있었다. 곧이어 쏟아질 듯 많은 별들이 머리 위로 떠 있었다. 오랜만의 낭만이었다.
앞서 언급했지만 내가 지내는 동안 마침 프랑스 알프스 지역에서 Cloud-Citadel이라는 코리빙의 운영자 Joe 역시 방문 중이었다. Cloud Citadel은 유럽에서도 원조 코리빙 중 하나로 정말 많이 들었는데 이렇게 만나다니. 지내는 기간 동안 오가며 대화를 많이 나눴지만, 한 오후에는 Maria, Joe, 나 이렇게 세 사람끼리 따로 경험 공유하는 코리빙 밋업을 가지게 됐다. 과거 와인 셀러로 이용되던 지하 다목적 공간에서 만난 우리 셋은 거의 두 시간 반 정도의 시간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아무래도 각자의 난처하고 어려웠던 상황을 둘러싼 에피소드들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급증하는 디지털노매드들을 바라보는 카나리 로컬들의 시선은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자꾸만 올라가는 집 값과 집 구하기 어려워지는 것이 노마드들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마리아는 그것은 사실과는 다르다고 어처구니없어했다. 해변에 지어지고 있는 코리빙들은 심지어 진짜 코리빙도 아닌데 코리빙의 이름을 쓰고 있으며, 실제 노매드들은 오히려 지역에 긍정적 영향을 더 끼친다고 미쳤다. 게다가 노매드들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시위하고 벽에 ‘노마드들, 돌아가라!’ 이런 낙서를 하는 사람들은 정말 로컬인가 반문했다. 경제 사정 때문에 카나리에서 미 대륙으로 많은 이민이 이루어진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이민 가정 3세대들이 이제 역으로 다시 돌아오는 추세인데, 반감 가지고 항의하는 이들은 이런 이들이라는 것이다. 팬데믹 동안 관광업이 전면 중단되자 섬의 경제사정도 급격히 나빠졌고, 마리아네 코리빙에 음식을 구걸하러 오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했다. 이렇듯 무작정 사람들 보고 오지 말라고 할 수는 없을 정도로 이 섬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소비에 지극히 의존하고 있는 카나리의 경제 사정을 생각했을 때 단순한 반감과 반대는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참 어려운 주제였다. 노마드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앞으로 계속 논의될 주제이기도 했다.
Cactus는 반려동물 친화 코리빙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마리아부터 강아지를 키우고 있었다. 대부분의 바닥들이 나무 바닥이 아닌 데다가 넓은 정원을 가지고 있어서 반려동물을 데려오기에 정말 좋은 환경이었다. 일반 멤버들 중 40퍼센트는 반려동물을 데려온 커플이었던 것 같다. Pet-friendly 코리빙은 잘하면 반려동물 가정에도, 반려동물을 좋아하지만 키우지 못하는 나 같은 이모들한테도 좋은 시너지 관계가 생길 수 있다. 지내는 동안 진짜 너무 이쁜 강아지들이 만났다. 주인이 감당하지 못하는 강아지들의 놀이 욕구를 나 같은 이모, 삼촌들이 돌아가면서 조금씩 채워줬다. 놀아주면서 덕분에 운동되어서 좋았다. 게다가 그냥 너무 귀여워서 미소 짓게 됨…
라리사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눴다만 가장 인상 깊었으며 아마도 지속될 인연으로는 코리빙 운영자 그룹을 제외하곤 라리사일 듯하다. 러시아 출신 미국 시민권자이기도 한 라리사는 스타트업들의 글로벌 시장 진출 시 로컬라이제이션 과정을 컨설팅하는 일을 했다. 하지만 그 일로만 그를 설명하기엔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여러 나라, 여러 문화권의 커뮤니티 경험을 해보기도 했으며, 동서양 어딘가 중간에 끼어있는 사람으로서 우리는 이야기가 잘 통했다. 커뮤니티 내 에피소드들, 배움들에 대해 큰 관심을 가져주고 서로 나눌 이야기도 많았다. 여기에 오기 전 있었던 조지아의 코리빙과 비교했을 때 훨씬 더 조직된 활동이 많이 제공되는 Cactus에서 그는 조금 놀라 했다. ‘무엇이 진짜 커뮤니티를 만드는가?’로 산에서, 해변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전반적으로 너무 좋은 경험을 했던 Cactus. 단 일주일만 지내다가 가는 사람으로선 더 바랄 것도 없었다. 매일 아침 혜자스러운 아침 식사로 하루를 시작하고, 때때로 요가하며 몸을 돌보고, 하루 종일 일할 수 있을 것 같은 좋은 업무 공간에서 꽤 집중해서 일하고,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좋은 친구를 만났고, 뚜벅이로서 가기 힘들었을 장소, 내가 검색했다면 가려고 생각해보지 못했을 장소를 발견해보기도 하고, 로컬 이모님 텃밭과 주방에도 가보고 다채롭고 좋았다. 다만, 커뮤니티는 상대적으로 더 느슨한 편이란 인상을 받았다. 내가 오고 나서 마침 떠나는 친구들이 꽤 많았는데 인원도 많고, 최소 체류 기간이 일주일 밖에 되지 않으니 턴오버(Turnover)가 많아서인지, 누군가 떠나는 것은 별 일이 아니었다. 한 달을 지낸 사람도 송별 모임을 가지기보다는 떠날 때 보이는 사람에게 인사하고 나중에 슬랙에 자신과 연결 방법과 더불러 작별 인사를 하는 것이 이곳의 일종의 관습(?)이 되어 있었다. 나 역시 그 관습을 따랐고.
단 일주일이지만 뭔가 기여하고 싶단 생각이 들어서 호박전을 부치고 한국 비롯 일본 등지에 대해 소개하는 세션을 열면 관심 있을 사람? 하고 물었을 때 응답은 두 명에 그쳤다. 다른 친구 역시 다른 날에 ‘나 이 영화 오늘 볼 건데 같이 볼 사람, 편하게 합류해!’라고 메시지를 올렸으나, 아무도 호응하지 않았다. 나만 뒤늦게 보고 이모지를 남겼던가. 관심사가 안 겹칠 수 있지만 우리 커뮤니티에서는 그래도 그 사람에 대한 관심으로 엄청 보고 싶진 않아도 관심을 표하기도 하고, 재밌게 보라고 할 수도 있고, 여러 방식으로 호응을 할 수가 있는데 그런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왜일까. 무엇을 바꾸면 좋을까 생각해 보았다. 커뮤니티 운영 방식을 크게 바꾸지 않는 상태에서 시도해 볼 수 있는 것은 공간의 변화라고 생각했다.
어느 저녁에도 역시 나는 누군가 남긴 음식들을 재조합해서 대충 저녁식사를 만들어 먹었다. 역시 다른 누군가가 남기고 간 싸구려 와인을 곁들여서. 보통은 더 큰 테이블이 있는 야외공간으로 가져가 먹지만, 그날은 뭐 귀찮기도 하고 그냥 때우는 모드라 주방 한편에 별 거 없는 4인용 식탁에 걸터앉아 먹고 있었다. 주방을 향해 앉아 먹고 있었더니 좀 더 연결을 바라는 비슷한 류의 친구들이 하나둘씩 붙었다. 영화 모임에 실패하고 홀로 팝콘을 먹으며 영화 감상했던 친구도 와인을 가지고 합류했고, 그랬더니 라리사도, 곧 자기 방에 들어갈 것처럼 하던 다른 친구 역시 결국 끝까지 함께 했다. 점점 주섬주섬 자기 냉장고 칸에 있는 음식들을 가지고 나와 나눠먹었더니 배가 터질 것 같았다. 끝판에는 마데이라에서 살고 있는 Doug 커플도 합류해 작은 4인용 테이블 수용 가능 인원을 넘어선 6명의 모임이 되어버렸다. 거기서 꽤나 이런저런 흥미롭고 서로의 삶을 알 수 있는 대화가 오갔던 것 같다.
이때의 시간이 참 좋았다. 커뮤니티가 몽글몽글 만들어지는 순간이었다. 왜 이런 비이벤트성 유기적 모임이 많이 일어나지 않을까 고찰해 보았는데, 주방의 디자인에서 내 나름 문제(?)를 찾았다. 잘 정돈되어 있는 주방 공간이었지만 커뮤니티 빌딩 측면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시선이 교차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들 한쪽 벽면을 바라보고 서서 조리를 하게 되는 공간에서는 아무래도 따로 또 함께 프로세스를 공유하는 감각을 형성하기 어려웠다. 공간이 충분하다면 바 테이블이 있으면 좋겠지만 아니라면, 적어도 그 조그마한 다이닝 테이블 공간 주변을 조금 더 머무르고 싶게 더 편하게 만들면 좋을 것 같았다. 현재의 뭐랄까 스태프가 주로 앉는 듯한 분위기의 작은 식탁에선 잠깐 차나 커피를 마시러 왔다가 자연스럽게 잠깐의 대화로 이어지는 인터랙션을 기대하기 어렵다.
커뮤니티 빌딩을 주요시 생각한다면, 넓은 공간과 많은 공간의 선택지가 반드시 가장 좋은 것은 아니다. 실내 주방과 실외 다이닝 공간으로 나뉜 구조에서는 조리한 사람과 식사하는 사람 사이의 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TV를 볼 수 있는 소파 거실 공간은 각각 코워킹 공간 한편에 있었는데, 너무 넓기도 하고, 한 곳은 통로에 위치한 느낌이라 마음 편하게 뭔가를 보고 싶다는 느낌이 일지 않았다. 너무 넓은 공간은 되려 아늑한 분위기를 조성하지 못한다. 나라면 소파 공간을 분리하는 구조물을 간이형태로라도 만들 것 같다. 꼭 영화를 보고 싶은 게 아니더라도 시간을 보내고 싶은, 끌어당기는 힘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조금 더 유기적인 방식으로 친근한 관계 형성을 가능하게 할 수 있지 않나 생각했다.
마지막 날 부랴부랴 가장 친해진 휘트니와 라리사와 인사를 나누고 정들었던 공간을 나서, 테네리페 북쪽 마을로 향했다. 테네리페 섬은 크게 남쪽과 북쪽 동네를 나눠서 생각해야 한다. 섬 가운데 위치한 테이데 산을 기점으로 기후가 상당히 바뀐다.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서 풍경과 마을의 형태가 바뀌는 게 실시간으로 느껴져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북쪽으로 갈수록 점점 싱그러운 초록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차로 단 15분 거리에도 어딘가는 쨍쨍하고 어딘가는 비가 오는 게 테네리페였고 그래서 맛볼 수 있는 이 다양성에 많은 이들이 매료되는 듯했다.
이런 연유로 테네리페를 갈 때는 남쪽과 북쪽 다 경험해 보는 걸 권한다. 나는 짧은 일정 상, 7박 8일을 남쪽에서, 단 1박 2일을 북쪽 마을에서 보냈는데 다음에 간다면 북쪽에서 같은 시간을 보내거나 북쪽에서 더 시간을 보내고 싶을 만큼, 나는 북쪽에 마음이 더 빼앗겼다. 관광지역에 가까운 곳은 남쪽이고 북쪽은 좀 더 로컬들의 생활 지역에 들어가는 느낌이 강했다. 산악 지역에 오밀조밀 형성된 마을에는 좀 더 그 마을 주민들의 자부심이나 동네와 문화에 대한 애정-을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친구가 운영하는 커뮤니티 게스트하우스는 역시 여러 번 환승해야만 갈 수 있는 곳이었다. 마침 그 동네만의 지역 축제가 진행되고 있었다. 방문한 주의 주말에는 불꽃놀이가 성대하게 펼쳐지는데, 두 동네가 서로 그 불꽃의 화려함을 겨누는 경쟁 방식으로 이루어진다고. 못 보고 떠나는 것이 아쉬웠다. 카나리 사람들은 지역 축제에 진심인 듯했다. 친구를 통해 알게 된 것은 테네리페에서의 카니발이 브라질 다음으로 가장 규모가 크다고! 알면 알수록 매력적인 테네리페..! 언젠가 테네리페에 축제 기간에 와서 진하게 로컬의 문화에 참여해 볼 날을 고대하며, 작별 인사를 고했다. Adi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