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narraba에서 시골 코리빙 이주살기 1.
"이제 어디로 가?"
"Benarraba"
"어디? 혹시 여기 말하는 거 아니야?"
"아니, 정말 Benarraba야. 지도로 보여줄게."
"흠… 거기에 뭐가 있는데?"
"음… 커뮤니티가 있어. 나도 몰라 나머지는 ㅠ"
말라가 인근에 위치한 산골마을 Benarraba에 잠깐 2주간 살다가 왔다. 팬데믹을 기점으로 유럽에서는 코리빙이 급성장 중인데 그 중에서도 스페인 안에서의 흐름은 주목할 만하다. 처음에 가장 가고 싶었던 Sende라는 코리빙에의 합류가 어렵게 되어 (올핸 5월에 문을 안 연다고 ㅜㅜ) 대안책을 찾는 리서치를 하다 보니 스페인 안에서만 끝도 없이 코리빙 스페이스를 발견하게 됐다. (그러고도 자꾸 추가 되는 중) 그 과정에서 Rooral이라는 팀을 발견하게 됐다. 이 팀은 지난 4년간 스페인 여기저기 시골에서 팝업 코리빙을 수차례 열었고, 그 끝에 드디어 처음으로 정착된 형태의 코리빙을 열기로 했는데, 어쩌다보니 내가 그 1기 멤버가 되었다.
Rooral은 코리빙 팀들 중에서 가장 나와 키워드가 겹치는 팀이었다. ‘비폭력대화’, ‘공감‘ 이런 공동의 키워드를 발견하고 얼마나 반가웠던지. 비폭력대화를 매월 타운홀에서 학습하고 훈련하는 우리 커뮤니티는 코리빙 생태계에서 좀 별난 축이었는데, 이제 동지가 생기는 것인가 하고 들떴다. 나는 코리빙이 단순히 노마드를 비롯 장기 거주지 계약이 애매한 사람들을 위한 유연한 주거 환경을 제공하는 것에 그치지 것이 아니라 다른 존재에 익숙해지고, 존중하고, 나아가서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얻게 되는 다양성 역량을 키우는 성장 플랫폼이길 바랐다. 그런 나의 이상주의를 공유하고 뜻을 함께 할 동지를 찾고 싶었다. 적어도 건설적인 견해를 공유할 수 있는 동지를 원했다. 어려울 거라 생각했는데 Rooral을 발견한 것이다.
다른 키워드로서 ‘자신/타인과의 더 깊은 연결’이란 가치를 내세우는데, 내가 다음 실험을 통해서 서포트 하고 싶은 가치였기에 이 팀은 그걸 어떻게 실현시키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다만 그들의 코리빙 오픈 소식을 뒤늦게 접하게 되면서 나는 예정에 있던 다른 일정을 포기하면서까지 가야 했다. 그래서 과연 정말 가치가 있을까. 선언하는 가치들이 말로만 그치지 않고 정말 배울 만한 것이 있을까? 그렇게까지 유명세나 인지도가 높은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긴가민가 했다. 게다가 주요 일정은 북서쪽에서 있는데 다시 남쪽 지방의 일정이 추가 되면 이동 동선 또한 복잡해지고 이동 비용 또한 증가하는 것을 의미했다. 고민 고민 또 고민하다가 어렵게 합류를 결정했다. 모로코 왕복 티켓을 날리고 나는 안달루시아로 향했다.
아, 베나라바. 정말 오고 가는 거 쉽지 않다. 후, 가는 방편 조사하고 결정하는 데에도 시간이 많이 걸렸다. 결국 선택한 것은 그라나다로 BlaBla Car를 타고 가서 한박 하고 다음날 기차를 타고 가장 가까운 기차역으로 이동하여 거기서 픽업을 받기로 했다. 가장 가까운 기차역이라고 해도 차로 30분 거리에 있었다. 원래 기본 서비스 사항은 아닌데 단촐하게 나 포함 2명 규모의 1기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기차 안에서 풍경이 점점 바뀌며 내가 정말 시골로 가고 있다는 실감이 들었다. 직전에 있었던 Granada가 너무 좋았기 때문에 도대체 나는 왜 굳이 이 고생을 하면서 시골로 가는가 하는 회의가 찾아오기도 했다. 그냥 그라나다 같은 곳에 2주 있으면 좋겠다. 굳이 코리빙을 또 간다고, 가기도 드럽게 어려운 산골로 찾아가는 스스로가 답답했다. 도대체 뭐 그렇게 대단한 걸 찾는데, 뭐 그렇게 대단한 걸 만들려고 하는 건데. 2주간 너무 무료하진 않을까? 기차 바깥 풍경을 보며 피로감과 함께 한숨을 쉬었다.
스페인답게 대략 15분 정도 연착되어 도착한 기차역엔 이미 Rooral 파운더 Juan이 마중 나와 있었다. “Hola!”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확정하기 전에 컨퍼런스 콜을 한 탓에 서로 바로 알아보았다. “혹시 배고파?” 시간은 오후 5시였지만 하루 종일 뭘 제대로 먹은 게 없었다. 마을 주민이 만들었다는 올레빵 같은 것을 받아 출출한 배를 채우며 차에 올라탔다. 구불구불한 산길 도로를 달리며 어떻게 많은 마을 중에서 이 마을을 발견하고 선택하게 된 건지 등등 대화를 나누다 보니 드디어 Benarraba를 만나게 됐다.
마을은 산 속에 포근하게 안겨 있는 듯 했다. 하얀 집들이 오밀조밀하게 형성되어 있는데,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형태의 동네였다. 바깥 세상에서 어떤 난리가 벌어져도 모르고 지나갈 수도 있을 것 같은 영화 <웰컴투 동막골> 속 마을의 느낌이 나기도 했다. 주차를 하고 앞으로 2주간의 집으로 이동하는 데 말 두마리가 무심하게 지나갔다. 지켜보는 주인은 없다. 아름답고 기묘한 느낌. 나는 도대체 어떤 곳에 온 것인가.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내 우려들이 정말로 쓸데 없는 것이었다는 것을. 2주라는 짧은 시간이 무색하게도, 멀고 험난한 길에도 불구하고 굳이 다시 돌아올 다짐을 할 제2의 고향이 될 곳이란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