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말라가 산골마을 Benarraba에서 시골 코리빙 이주살기 2
"예지는 카멜레온 같아." 어렸을 때 학교 선생님께 들었던 이 평은 오랫동안 내 뇌리에 박혔다. 나의 무드는 꽤나 격하게 바뀌었다. 내 정체성 자체가 바뀌는 것처럼. 친구들이 내게 해주는 선물은 안타깝게도 늘 내 취향을 빗나갔다. 그들이 내가 그것을 좋아한다고 생각했을 때 내가 좋아하는 것은 이미 바뀌어 있었다. 나의 취향은 변화 그 자체였다. 정도는 나이가 들면서 줄어들었지만 새로운 자극과 영감을 쫓으며 살아왔던 내게 스페인의 아주 작고 다른 큰 도시로부터 한참 한참 떨어져 있는 산속 시골에서의 삶은 조금 두려웠다. 가끔은 편의점에서 새로운 맥주를 하나 사서 마셔보는 것이 낙이고, 편의점 김밥에 의존해 살았던 내가 간편식 없이 2주를 살아낼 수 있을까, 그런 막연한 걱정이 베나라바(Benarraba)로 향하는 차 안에서 뒤늦게 들었다.
그런데 그 우려는 정말로 쓸데없는 것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2주 동안 정말 잘 지냈다. 몸과 마음 모두 건강하게. 볕에 쫙쫙 마른 빨래처럼. 너무 잘 지낸 나머지, 도대체 그 원인은 무엇이었을까를 떠나오는 길에 두고두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 끝에 내가 내린 원인은 크게 네 가지였다.
베나라바는 겉보기에 확실히 선택의 자유가 적은 곳이다. 슈퍼는 단 두 곳. 한 곳은 아침에 잠깐 열고, 메인 슈퍼는 구멍가게 크기이다. 도착해서 아침 식사용 그래놀라를 사려고 갔는데 찾을 수 없어 적잖이 실망했다. 살 수 있는 맥주 종류는 세 종류. 매일 여는 바 한 곳. 매일 여는 레스토랑 한 군데. 정유점 한 군데. 약국 한 군데. 대부분 여는 시간이 한시적으로 정해져있다. 슈퍼는 10시 - 2시 정도 오전 타임에 한 차례 운영한 다음, 오후 5시반부터 8시반에 열릴 때까지 닫힌다. 극적인 운영시간은 우체국. 오전 8시 30분부터 9시까지 딱 30분까지만 운영된다. 운영 시간이 고작 30분이라는 충격적 사실을 쉬이 받아들이지 못했던 나는 우체국 이용에 세네번 실패한 후에 겨우 택배를 하나 보낼 수 있었다. 마을에서 운영하는 무료 체육관이 있는데 산을 바라보는 뷰가 엄청나게 좋은 곳이지만 오전 8시반부터 한시간만 연다.
해산물은 2주에 한번씩 방문하는 생선 봉고차를 통해 구매할 수 있다. 화요일과 목요일 점심시간 쯤에 빵빵 거리는 소리가 들리면 우리는 귀를 기울여 차가 어디쯤 있는지를 가늠했고, 우리가 있는 곳에 가장 가까워졌을 때 나가 오늘 있는 물건을 확인하고 구매했다.
운동시간, 우체국 갈 시간, 어떤 식당을 갈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선택지가 줄어드는 것으로 삶이 자연스럽게 심플해졌다. 물론 조금 더 오래 지냈다면, 불편감이 쌓여갔을 수도 있겠지만, 2주간의 의도치 않았던 심플라이프는 평소 무한한 선택과 자유로 인해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아왔는지, 사실은 역설적으로 부자유로워졌는지를 크게 깨달을 수 있었다.
<관련 유튜브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_GyO2fjWhB8
게다가 시골에서의 삶은 많은 소비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숙소에 도착했을 때 다이닝 테이블 위에 바구니는 이미 먹을 거리들로 가득 채워져있었다. 이웃들에게 받은 아보카도, 토마토, 오렌지, 레몬, 계란 등이 가득했다. 그리고 2주 내내 이 바구니는 바닥을 보일 일이 잘 없었다. 비워지는 순간 다시 채워졌다. 마을 사람들과의 관계가 무르익어갈 수록 우리의 바구니는 넘쳐갔다. 도저히 우리끼리는 먹을 수 없을 만큼의 오렌지를 어느날 받았고 이윽고 오렌지 케이크를 만들어서 대접했다. 그렇게 나눔의 선순환 속에 우리는 풍요롭게 지냈다.
삶은 전에 없이 가벼워졌다. 생선도 야채도 대량 포장된 게 아니라 딱 필요한 만큼만 살 수 있어서 경제적이일 뿐더러 집안의 공간도 덜 차지했고, 그만큼 머리 속 공간도 생겼다. 많은 재료를 축적하고 있으면 유통기간이 지나기 전에, 상하기 전에 제때 제때 소비하기 위해 계획을 세워야 한다. 그런 계획이나 고민의 필요가 줄면서 가뿐해진 것이다. 선택지가 줄어들면서 나의 기대는 내려갔는데 퀄리티는 평소보다 더 좋아졌다. 생선 봉고차는 주 2회 오지만, 바로 2시간 정도 거리의 어촌에서 바로 직송하기 때문에 신선하고 맛이 좋았다. 이웃들이 수확한 농산물들은 때깔만큼이나 맛도 좋았다. 이때까지 살면서 먹어본 계란 중에 가장 맛있는 계란, 가장 맛있는 아보카도를 먹을 수 있었다. 그러니 나는 늘 만족스러운 상태가 되었다.
(물론 내가 그곳에서 온라인 주문이 어렵고 운전할 차가 없는 외국인이었다는 것도 한몫하는 것 같다. 전국 어디서나 편하게 쿠팡 배달을 받을 수 있는 한국에서는 엄청 시골에 가더라도 이만큼의 less is more 효과를 깊숙하게 느끼기는 어려울 듯하다)
고령화가 진행되는 소멸 위기의 산골마을 Benarraba의 평균 연령대는 확실히 내가 갔던 어느 곳보다 높았다. 하지만 또 어린이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초등학교가 있었고, 거기를 다니는 아이들이 있었다. 아침에 동네 체육관에 가면 오전 그룹 수업을 받는 대여섯의 할머니, 이모들과 같이 운동을 하며 친해졌고, 저녁에는 때때로 골목에서 축구하던 아이들에게 끼여 놀았다. 또래로는 코리빙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운영자 친구들과 이에 참여하는 다른 친구, 그리고 이주한지 6개월차에 들어가던 다른 스페인 출신 노마드 커플과 어울렸다. 늘 내 나이대 청년 그룹에서 크게 벗어난 환경이 내게 큰 환기가 되었던 것 같다. 20~4,50대 사이의 사람들이 대다수였을 때 아무래도 우리 모두는 많은 사람들 중 한 명이 된다. 비슷비슷해서 아무래도 비교가 되기도 하고 마치 우리 인생이 한 직선에 있을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쉽다. 다양한 세대가 함께 하는 작고 다정한 마을에서 내가 삶과 생에 대한 포커스가 조금 더 확장되는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 나의 존재는 애써 증명하지 않아도 독특하고 대체될 수 없으며 의미가 있었다. 할머니들은 나의 동행을 아주 좋아라 했다. 나를 귀여워하시는 그 잔정의 손길에 나는 행복했고, 아시아에서 온 축구를 좋아하는 내 존재 자체로 아이들의 세계관이 아마도 조금은 확장되지 않았을까.
함께 코리빙을 했던 리스와 내게 동네 투어를 해주려던 Juan에게 소요시간을 물었을 때 그가 대답했다. "음 그건 길에서 몇 사람을 만나냐에 따라 달렸어." 나는 그가 과장한다고 속으로 조금 비웃었던 것 같다. 그치만 이내 그의 말이 과장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특히나 마을 사람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온 Juan이라 더 그랬지만 길에서 사람을 마주치기는 너무나 쉬웠고, 마주치면 그냥 간단한 인사로 넘어가는 일이 없었다. 오랜만에 본 사이도 아닐 텐데, 마을에서 뭐 그렇게 다이나믹한 일들이 펼쳐지는 것도 아닐텐데, 뭘 할 이야기가 그렇게도 많은지 모든 사람들이 대화를 한동간 이어갔다. 신기한 광경이었다. 그리고 이내 정겨운 풍경이 되었다. 골목에는 반드시 반가운 얼굴이 있고, 안부인사가, 미소가, 대화가, 먹을거리가 오고간다.
여기엔 베나라바의 골목이 가지는 특수한 매력이 한 몫한다고 본다. 가장 가까운 차로 3-40분 거리의 다른 유사한 산골마을에도 가보았지만 베나라바만큼 다정한 인상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른 마을 역시 비슷한 규모와 구조를 갖추었지만, 골목에서 베나라바만큼 사람들을 마주치거나, 사람들의 유대를 목격하기 어려웠다. 그 마을은 좀 더 산을 향하는 전경이 좋아서 많은 건물들이 산을 향해 있었는데, 그래서 건물과 건물간의 시선 교차가 적고, 사람들간의 연결감도 덜 한 게 아닐까. 베나라바 쪽 건물들의 높이가 낮은 것도 한 몫 하는 것 같고.
나는 베나라바의 골목을 사랑할 수 밖에 없었다. 이웃들이 가꿔놓은 화분의 꽃들을 보며 기분이 좋았고, 분명히 만나게 될 누군가를 기대했다. 그리고 슈퍼 앞에는 늘 같은 할아버지가 천사 같은 미소를 하며 반기며 Hola라고 인사해주었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걸 뻔히 알면서도 무언가 말을 건네면서.
산 속에 폭삭 안겨져 있는 마을에 산다는 것은 언덕이 생활의 일부라는 뜻이기도 하다. 길에 이어지는 평지가 잘 없다. 집 밖을 나선다는 것은 언덕을 어느 정도 오르 내리는 일이었다. 언덕은 보통 사람들이 기피하는 불편한 요소 중 하나이다. 언덕 외에도 어찌보면 불편하게 생각하면 상당히 불편했을 요소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불편이 이 마을을 특별하게 만들었다. 불편은 기회였다. 더 중요한 가치나 관계에 재 연결할 수 있는 전환의 기회를 제공했다.
많은 코리빙 스페이스들이 코리빙 안에 모든 요소를 포함하는 것이 추세인 반면, 베나라바에서 진행 중인 Rooral Coliving 프로젝트는 코리빙 공간과 코워킹 공간이 분리되어 있었다. 마을이 가지고 있는 기존 리소스를 잘 활용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기 때문이었다. 거리는 멀지 않았다. 1-2분 정도. 하지만 완전한 언덕길! 오전에 일하러 올라갔다가 점심 먹으러 잠깐 내려오고 또 오후에 올라갔다가 간식 먹으러 내려가고, 내려가는 길에 장을 보기도 했는데, 그 모든 과정이 언덕길 덕분에 운동이 되었다. 언덕의 효과는 세계적으로 유난히 건강한 장수 인구가 많은 5대 마을을 조사한 연구에서도 언급된 주요 요인 중 하나라고. (링크) 짧은 기간 장수까지는 아니지만 몸과 마음에 활력이 생겼던 게 아닐까, 추측해본다.
이외에도 지내던 집에는 와이파이가 설치 되어 있지 않았다. 예상치 못했던 환경이었다. "여기 휴대폰 데이터 잘 터져~" 라고 Juan이 안심시켰지만 마침 마을에 도착한 날 유심 데이터 플랜이 종료되었다. 새로 구매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그냥 없이 살기로 했다. 코워킹 스페이스에서만 인터넷 이용하는 것으로. 어차피 이 마을 내에서 휴대폰 연락을 해서 약속 잡아야할 사람은 없었다. 정 필요하면 집 앞에 가면 된다 :)
코워킹 공간과 집 사이 1-2분의 언덕길은 아주 가깝지만 정서적으로 거리감을 제공했다. 평소 같으면 저녁을 대충 먹고 일하러 다시 돌아갔을 일이지만, 언덕길은 자연스럽게 나를 일 중독에서 벗어나게 했다. 게다가 오전 8시반에서 9시반 사이에만 여는 체육관을 이용하려면, 같이 운동하는 할머니들한테 귀여운 잔소리 안 들으려면 더 뭔가를 해서 그날 밤에 덜 불안한 것보다 일찍 자는 게 상책이었다. 그렇게 덕분에 일과 삶의 균형을 평소보다 맞출 수 있었다. 간혹 코워킹 스페이스에서 아주 늦게 집에 들어오는 일이 없진 않았지만, 집에서 편히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을 때보다 소셜미디어와의 관계 개선에 도움이 되었고, 정신적으로도 좀 더 여유롭고 건강한 시간을 보냈다.
집과 코워킹이 분리가 되어 있다는 것 역시 누군가에겐 불편한 점이 될 수도 있지만, 그것이 나에게 좋았던 이유 중 하나는 일이 삶의 다가 아니라는 것을 언덕을 걸으며, 나와는 아주 다른 세계에서 살아가는 동네 사람들을 만나 인사를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점이다. 때로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지금의 상황이 다 인 것 같고, 심각해지기도 한다. 단순한 삶을 사는 동네 사람들과 중간 중간 교감하며 나의 과장된 에고에서 한소끔 김이 빠져나갔다. 그리고 내 발은 조금 더 땅 위에 붙었고, 내 영혼은 숲 속에 가까워졌다.
Rooral Coliving을 통한 베나라바의 생활은 내가 실험하고자 하는 시골 팝업 코리빙의 방향에 크게 영향을 주었다. 다소 불편하고, 골목이 있으며, 산골에 있는, 그런 정다운 곳에서 하고 싶다. 한국에 그런 곳이라고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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