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와 함께 한 모토싸이클 여행기 두번째 이야기
작년 10월말쯤에 이미 다녀온 같은 루트를 반년만에 다시 오게 만들 만큼 메홍손 루프가 그렇게 아름다운 비경을 가지고 있단 말인가?
마이크의 오토바이 뒷자석에 앉아서 설레는 마음으로 앞으로의 여행을 기대했다. 첫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메홍손으로 가기 위해서는 태국에서 가장 높은 산인 도이 인타논 산을 넘어가야만 했다. 도시를 벗어나 산으로 들어서자 나무들이 만들어낸 풍성한 산소들이 노곤한 몸을 깨우기 시작했다. 이왕 도이 인타논에 들어왔으니까 바치라탄 폭포와 나빠마이따니돌탑을 들리기로 했다.
폭포에 도착한 것은 아침 7시, 우리가 첫 방문자인 듯했다. 폭포 자체도 멋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아무도 없는 산의 고요함, 평화로운 아침 시간 자체가 참 좋았다. 고요해서 자연의 소리를 더 크게 들을 수 있었다. 우리는 건기에 가서 물이 그리 많지는 않았는데, 우기 때 가면 더 장관이라고 한다.
계곡 다음으로 나빠마이따니돌 탑 공원을 들렸다. 국왕과 여왕의 환갑을 기념해서 조성한 곳이라고 한다. 정원에는 가지각색의 꽃들의 색을 자랑하고 있었다. 처음보는 꽃들도 있고, 내가 좋아하지만 자주 보지 못하던 꽃들도 있었다. 할미꽃과 수국을 보니 참 반가웠다. 이렇게 수많은 꽃들이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있자면 '꽃은 다른 꽃을 질투하거나 시기하지 않는다'라는 표현이 절로 떠올랐다. 모두가 그저 다를 뿐.
우리가 꽤나 고도 높은 곳에 있는 모양인지 구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도이 인타논은 최고 높이가 해발 2565m에 달한다) 별안간 차가운 물기를 머금은 구름이 몰려왔다. 마침 너무 잘 정돈되어있는 정원에 조금 지루해지던 참이었다. 습기 먹은 구름이 나무와 꽃들을 반쯤 가리자 풍경은 미스터리해졌다. 풍경이 스토리를 입는 순간이었다. 마이크는 흥분해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나도 덩달아 사진을 찍었다.
이때의 풍경은 앞으로의 우리의 여정과도 더욱 닮아 있었다.
"같은 길을 간다해도 매번 갈 때마다 상황은 달라져. 어느 타이밍에, 누구와 가느냐에 따라서 전혀 다른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지. 갔었던 곳인데도 예상치 못한 당혹스러운 순간이 도사릴 수도 있고.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려움에 시도조차 안하려고 하곤 하지. 실제로 가보지 않으면 모르니까. 그러나 가볼 가치가 분명 있어. "
마이크는 참으로 모험가였다. 심플하게 생각했고, 심플하게 결정을 했다. 발리에서도 그는 종종 주말을 이용해 모험을 떠났다. 그는 발리 해안도로를 따라서 바이크 & 캠핑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서는 "우와, 나도 다음에는 텐트를 가져와서 가봐야겠다!"하고 다짐했다. 그런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듯이 마이크는 말했다. "텐트는 커뮤니티에서 빌리면 되지. 분명 안쓰고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을거야." 방법은 있는데 왜 핑계를 만들어 알지 못하는 다음으로 미루냐는 뉘앙스였다. 그는 알기 때문에 반문했을 것이다. 그 '다음'은 기약이 없다는 것을.
메홍손 루프에는 마이크가 흥분해서 말했듯이 총 1864개의 커브가 있고, 총 600km에 달하는 길이다. 메홍손 루프에서 루프(Loop)는 고리형태, 환형을 뜻하는 단어로 이 여행은 치앙마이에서 출발해서 다시 치앙마이로 돌아오게 된다. 고로, 시계방향으로 가거나 반대방향으로 가거나 원하는 대로 선택할 수 있다. 우리는 먼저 메홍손 시를 향해서 달리고, 마지막에 빠이를 들려서 오기로 했다. 보통 4일이 걸리는 거리이지만 우리는 3일 밖에 시간을 쓸 수 없었고, 그 와중에 빠이에서 더 느긋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기 때문에 몇 곳은 건너 뛰고, 첫날 전체 코스의 반 300km를 쭉 내빼기로 했다.
"졸리거나 하면 꼭 알려줘야해. 졸다가 바이크에서 떨어지거나 하면 안되니까."
수면 부족으로 인해 꽃정원에서도 눈을 감고 잠깐이나마 앉아 졸던 나를 그는 걱정했다.
"응 그럴게. 나는 죽는 걸 매우 무서워하는 인간이라 바이크에서 졸진 않을거야"
그렇게 호언장담했건만...
그리 머지 않아, 빠른 속도로 쌩쌩 달리는 바이크 위에서도 졸 수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구름에 가리워진 이 여행의 미지수들이 정체를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시간은 이제 정오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태국에서 4,5,6월은 가장 더운 시즌이다. 4월 말의 더위는 가히 죽음이었다. 곧 공사 중인 길이 나타났고, 우리를 가려줄 만한 나무가 없는 황량한 구간이 이어졌다. 우리는 안전을 위해 가지고 있는 옷 중에서 가장 우리를 보호해줄 만한 옷들을 입고 있었다. 자켓 안에서 나는 베이킹 되어가고 있었다.
헬멧은 물론 오프로드용으로 머리 전체를 보호하고, 혹시 사고가 나더라도 내 머리에서 도망안가도록 내 머리 사이즈에 딱 맞는 헬멧을 착용하고 있었다. 점점 시간이 지나자 더위에 머리부피가 커지는것인지, 점점 헬멧이 내 머리를 압박해왔다. 헬멧을 오래 끼고 있으니 그 무게가 장난이 아니었다. 두통이 심했다. 거기다가 최근에 탈색에 염색까지 해서 스트레스를 꽤나 받으신 두피가 공기 통할 곳이 없으니 굉장히 괴로웠다.
꼭 칭찬하면 실수하게 된다. 지도도 안보고 길을 잘찾는다고 마이크에게 칭찬을 하자마자, 우리는 기어코 길을 잘못 들었다. 잘못된 길을 오는데 1시간 허비하고, 돌아가는데에 1시간을 허비했다. 보통 이동하는데만 4일이 걸리는 루프를 우리는 3일만에 완주하기로 했고, 첫째날에 절반에 해당하는 300km를 달려서 메홍손에 도착해야만 했는데, 2시간이나 잘못된 길에서 시간을 허비했으므로 중간에 쉴 시간이 더욱 없어졌다. 아, 300km가 아니라 헤맨 길을 합하면 총 400km가 되었다.
잘못 들어선 지점으로 다시 돌아가는데 심지어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아직 건기이긴 하지만 고도가 워낙 높은 산악지역이다보니 비를 어느정도 예상은 했다. 허나, 비에 젖은 공사장 내리막길은 상당히 미끄러웠다. 결국 나는 따로 오토바이에서 내려서 천천히 걸어내려와야했고, 마이크는 길 가장자리를 따라 아주 조심스럽게 오토바이를 움직였다. 몸체가 가벼운 보통의 스쿠터를 탄 현지인들은 둘이서도 잘 타고 내려오는데, 그 옆에 고급의 거대한 오토바이가 내리막길을 내려오는데 쩔쩔 매는 모습은 진풍경이었다. 다행히 비는 곧 그쳤다.
거기다가 2월부터 4월까지 태국 북부는 Burning Season이라고 해서 이 곳 저 곳에서 화전이 이루어져서 매우 흐리고 공기가 좋지 않았다. PM 2.5니 하는 미세먼지 관련된 용어를 이 곳에 와서도 듣게 되고 신경써야하게 될지 몰랐었다. 그래도 치앙마이에 있을 때는 이 곳에 아예 살 것도 아니다보니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러나 산에 올라와보니 풍경 감상은 무슨-, 환경파괴 현장을 답사하러 온 환경주의자의 여행이 되었다. 이 곳 저 곳에서 피워오르고 있는 화전으로 인한 연기. 태워진 숲에서 나는 탄 냄새. 태워져서 황폐화된 산의 모습을 가까이서 목격하면서 이게 실제로 얼마나 큰 문제인지를 실감하게 되었다.
"300km를 주행하게 될꺼야, 괜찮아?"라고 마이크가 말했을 때 내가 가볍게 오케이,하고 대답할 수 있었던 것은 정말 몰라서였다. 내가 운전하는 게 아니니까 더 쉽게 생각했는데, 왠걸, 뒷 자리에 탑승해서 가는 것이 더 피곤하다는 것을 이 여행을 통해 깊이 깨달았다. 라이더에게 커브길이야말로 바이크여행의 묘미이다. 탑승자로서 수많은 커브길은 그저 지치기만 할 뿐이다. 탑승자도 균형 잡고 놀 줄 알아야 하는데, 초반에는 빠른 속도로 산악의 수많은 커브길을 요리조리 달릴 때 긴장되고 해서 뻐근하고 힘들었다. 특히 허벅지, 엉덩이, 허리 부분이 얼마나 아프던지. (앞으로는 친구들을 뒤에 태울 때 잘 배려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너무 피곤해서 쉬어가는 커피집에서 5분만 잘게, 라고 하고는 한시간을 잤다. 이 때쯤 나는 엄청난 후회에 휩싸여있었다.
'할일도 많은데, 이 무슨 시간, 돈 낭비이며 고문인가. 지루하고, 괴롭고, 배고프고, 잠오고, 온몸이 쑤시다. 이 친구가 추천해준 음식점이나 카페들이 다 맛이 없었을 때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이 여행도 같은 결론일 것이라는 것을. 최소, 나도 바이크를 하나 따로 빌려 왔어야 했는데. 아, 좀 더 인터넷에서 사전조사를 하고 결정을 할 것을. 너무 무작정 따라왔네. '

부정적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슬슬 쉴 새도 없이 가는 마이크가 원망스러워졌다. 그럴수록 이 타고난 모험가이자 기업가인 마이크의 태도는 확연히 다르게 느껴졌다.
Part of the journey! (이것도 여정의 일부이지!)
한참 길을 잘못 들어섰다가 다시 잘못 들어선 지점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는 불평이나 짜증 한번 없이 이 말한마디를 어깨를 으쓱 한 번 올리더니 내뱉었을 뿐이었다.
Part of the journey. Part of the journey. Part of the journey. Part of the journey. Part of the journey. Part of the journey. Part of the journey. Part of the journey. Part of the journey. Part of the journey. Part of the journey. Part of the journey. Part of the journey.
지금 이미 후회를 시작해보자 바뀌는 것은 없었다. 돌아갈 길은 없다. 만트라처럼 스스로에게 되뇌이며 메홍손에 도착할 때까지를 버텨내는 수 밖에 없었다. 메홍손에 도착하기 직전 휴게 카페를 들렸다. 힘들 때 스스로를 달랠 줄도 알아야한다.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먹었다. 커뮤니케이션 착오로 마침 그 날은 한 끼도 못먹었어서 기운도 없는 상태였다. 마침 비가 오기 시작했다. 잠깐 후두두둑 떨어지고 비구름은 또 금새 지나갔다. 덕분에 우리는 다시 여정을 이어갈 수 있었다.
여행의 끝에 나는 후회하고 있을까. 아니면 이것도 Part of Journey였다고 말하고 있을까.
비가 온 직후의 공기는 훨씬 상쾌했고, 곧 도착지에 도착한다는 생각에 기운이 났다. 하루 종일 바이크와 빡세게 시간을 보내서 12시간만에 조금이나마 유유하게 바이크에 타는 법을 터득했다. 두 팔을 벌리고 한결 산뜻해진 공기와 바람을 느꼈다. 파랗고 맑아진 하늘이 고생은 이제 끝났다고 이야기해주는 것 같았다. 앞으로 남은 구름에 가리워진 나머지 여행의 수수께끼들을 기대하고 있자니 어느새 우리는 메홍손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