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 모든 곳을 다녀보진 못했지만 해외에 이곳 저곳 다닌 편이라 어디가 가장 좋았는냐고 질문을 종종 듣는다. 그럴 때마다 곰곰히 생각해보지만,아직까진 나한테 베스트는 제주이다. 지금 실제 그리 꿈에도 그리던 제주에서 생활을 하게 되었고 한 프로그램을 기획해서 준비 중이다. 실제로 '생활'을 일궈가야 하는 입장이 되니, 관점이 달라지고 마냥 좋지만은 않지만. 처음엔 오토바이 옆싸대기를 쳐대는 강풍에 화들짝, 예고없이 안부이사하는 지네에 화들짝, 제주시내의 교통체증에 욕을 내뱉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왜 제주, 제주 하게 되었는지 기억을 더듬게 되었다.
2014년 봄, 그 때 일하고 있던 스타트업 팀은 허니문 시기를 지나 고통스런 갈등의 국면을 맞고 있었다. 나는 갈등 중재자 역할을 맡게 되었다. 애썼지만 그 갈등은 어쩌면 필연적이었던 것이라 해결은 쉽지 않았고, 갈등이 가지는 에너지와 감정의 충돌 속에서 나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지쳤다. 누군가는 남아서 애써 꽃피운 커뮤니티의 문화를 이어가야 한다고 생각해 대부분의 기존 팀원들이 빠져나간 공간에 나는 남았다. 지쳐있었던 나는, 새롭게 시작하여 의욕이 넘치는 팀 멤버들의 에너지를 감당하지 못했다. 그렇게 번아웃이 슬슬 오고 있었다.
나한테 친언니와 같았던 혜림언니가 세상을 떠난 것이었다.
늘 언니나 오빠 같은 내 윗 형제자매를 원했던 내 소원은 서울살이를 본격 시작하면서 이루어졌었다. 온라인 상으로 하우스 메이트를 구하는 글을 몇을 보고 처음 방문했던 집에서 나는 혜림 언니를 만났고, 대화를 나눴고, 다른 곳을 볼 필요도 없이 하메로 들어가기로 했다. 언니는 너무나도 따스한 사람이었고, 우리는 주파수가 잘 맞았다. 언니는 나한테 친 언니 같은 존재가 되어주었다. 10개월을 같이 지내면서 우리는 마음 깊숙이 가지고 있는 상처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털어놓기도 했다. 우울하던 시기, 나는 언니 앞에서 많이 울었다. 동생이 제대하고 서울에 돌아왔을 때 따로 방을 얻어 나가게 되었어도 나는 연희동에 머물기로 했다. 언니 덕분에 그 동네가 서울에서 내 고향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언니네와 우리집은 2-3분거리였다.
'연희교차로'에서 내리면 집에 가는 길에 언니집을 지나게 되고, '연희삼거리'에서 내리면 경사는 가파르지만 빠른길을 가게 되었다. 피곤함을 핑계로 나는 한정거장 더 가서 연희삼거리에서 내려 조금이라도 빠른길을 선택했다. 늦은 밤 귀가가 허다했기에 연희교차로에 내리더라도 언니집을 지나면서도 문 두들기거나 연락하지 않았다.
'나중에', '덜 피곤할 때', '여유 있을 때'를 기약하고는.
'나중에'는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 시간이라는 것을, 비보를 듣고서 절감해야했다.
언니가 세상을 갑작스럽게 떠났다는 소식은, 만우절 거짓말 같았다. 심장마비였다고 했다. 나와 가까운 사람의 죽음은 처음이었다. 장례식 가서 우는 건 예의가 아닌데도 그렇게 울고 또 울었다. 나에게 들려주었던 당신의 아름다운 꿈을 펼쳐보이길 기회를 가지기도 전에 나비가 되어 날아가 버리다니.
바쁘다는 핑계로 묻지 않았던 그 때 언니의 안부는 어떠했는지 언니의 페이스북 담벼락을 뒤늦게 훑었다. 떠나기전 뭔가 우울한 일이 있어보였다. 너무 늦어버렸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물어보기엔. 대체 무엇이 그렇게 바빴단 말인가. 무슨 그렇게 대단한 일을 한답시고. 나의 잘난 열정과 책임감들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어디 좀 갔다와.
나는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멍하니 며칠을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생일이 되었다. 무안하기 짝이 없는 그 생일이 견디기 힘들었다. 그대로 못 보겠다 싶었던 동료들의 배려로 나는 생일날 배낭을 메고 떠났다.
그 어디가 제주가 된 것은 길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디를 갈까를 고민할 힘이 없었다. 그저 한 없이 걸을 수 있는 길이 놓여 있다는 것 하나만 믿고 제주로 떠났다. 그렇게 처음 올레길을 걷게 되었다. 숙소는 BBQ파티 같은 것은 피하고 최대한 조용한 게스트하우스만 찾아다니며 2주동안 올레길을 걸어다니는 것에 집중했다. 하루에 짧게는 5시간에서 길게는 9시간동안 걸었다. 매우 천천히, 누구의 속도도 아닌 내 속도의 걷기를 했다. 쉬고 싶을 때 쉬었고, 보고 싶은 것이 있을 때 하염없이 앉아 보았다. 가끔 어둑한 숲속 길에서는 혼자 걷게 되면 무섭고 외로울 때도 있긴 햇지만, 오롯이 내 속도로 걸어갈 수 있어서 좋았다. 용눈이 오름을 올라갔을 때는 내 마음이 너무 평화로워져 게스트하우스의 일행들을 다 보내고 나 혼자서 여러번 아주 천천히 걷고, 한번은 반대로 걷고, 뒷걸음 치면서 걷고 가로질러서도 걸어보았다. 일행이 있었다면 할 수 없는 시간의 씀씀이었다. 그런 과정에서 나의 마음은 조금씩 치유되었다.
길을 걷는 사람은 자기 시간의 유일한 주인이다
다비드 르 브르통은 <걷기 예찬>에서 이렇게 말했다. 느리게 걷기 자체가 치유의 힘이 있었다. 나는 조금씩 자신을 용서해감과 동시에 나의 시간을 찾아가고 있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시간이었나. 사랑하는 사람의 안부도 묻지 못하게 스스로 바쁘게 만든 것은.' 그리 허무하게 느껴졌던 나의 시간들이 내 몸과 마음과 다시 조화되어 갔다. 매 분 매 초 나는 한 걸음 한 걸음에 생의 무게를 실어 땅과 마찰을 일으켰다. 그렇게 한 보씩 나아가는 순간 순간 내 시간에 내가 존재함을 느꼈다.
2주란 시간은 올레를 다 돌 수 없는 시간이긴 하지만 적지 않은 시간이었다. 나는 최대한 미디어를 찾지 않고 가끔 쉬어가는 카페나 숙소에서 책만 조금씩 읽었다. 그렇게 걸어다닌 많은 시간들 동안 충분히 언니와의 시간을 곱씹고, 죽음을 애도할 시간을 가졌다. 마찰을 만들어내며 '앞'을 향해 걸어간다는 방향성 때문인지, 언니의 죽음보다도 나는 언니의 짧았던 '생(生)'에 대해서 더 깊이 생각케 되었다.
Your life is your message to the world.
(당신의 삶은 세상에 대한 당신의 메세지입니다)
내가 일하던 스타트업의 모토대로라면, 역으로 그녀의 메세지가 계속 이어진다면 언니는 살아있는 것과도 같지 않을까 생각하고, 언니의 상냥함과 상처받은 아이들에 대한 연민을 최대한 생생히 기억하고 마음에 새기려고 했다.
그렇게 내 속도에 맞게 온전히 걷는 것을 다른 어디도 아닌 제주 특유의 자연 속에서 했다는 것은 엄청난 힘을 주었다. 길 위에서 발견한 제주에 뿌리내린 생명들은 모두가 어마어마한 생명력을 자랑했다. 내 눈을 사로잡은 것들은 척박한 제주의 환경 속에서도 기어코 뿌리 내린 강인한 생명들이었다. 어디선가에서 날아와 하필 어마무시한 바람과 돌들 사이에 툭 하니 떨어진 씨는 땅을 탓하는 법 없이 약간의 먼지 흙 가지고도 잘도 싹을 틔워내었다. 나뭇가지는 바람이 쳐대는 방향으로 고개를 꺽되 포기하는 일없이 그 다음 가지를 뻗혀 내었다. 해녀들이 물질 후 물 밖에서 뱉는 숨비소리가 제주의 모든 생명들에게서 들리는 것 같았다.
호이호-
나 아직 살아있다네. 나는 또 갈 것이라네.
나는 길을 걷다가 그런 생명의 찬란함에 제자리에 서서 탄성을 내뱉기도 하고, 느닷없이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생명력에 대해, 그리고 삶에 주어진 시간들에 대해 생각하고 음미할 자연의 가르침이 참으로 풍부한 곳이 제주라고 생각했다.
세상엔 참 아름다운 곳들이 많다. 파라다이스라고 불리는 발리는 정말 울창한 열대우림이 나의 모험심을 자극하고 열대기후가 키워낸 왕성한 생명력은 나의 피조차 뜨겁게 만드는 힘이 있다. 하지만 뭐랄까. 나는 발리에 있으면서도 이따금씩 제주의 짠한 감동이 그리웠다.
제주는 척박하다. 절대 파라다이스가 될 수 없다. 바람은 제주에 살아가려고 하는 모든 생명들의 생에 대한 의지를 매번 묻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낼 것이냐고.
내가 살아가는 세상은 제주와 더 많이 닮아서인지 제주는 참 현실적인 장소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제주의 생명력이 가지는 스토리들이 더 공감이 가는 것이었다. 그런 제주에서의 걷고 또 걸었던 2주간의 시간은 지치고 깊은 슬픔에 빠진 나를 일으켜 세웠고, 안쪽 깊숙이에서부터 생명의 힘을 길어올렸다. 이 생명의 힘으로 제주에서 평화와 화해, 조화의 메세지를 남길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단 다짐을 했다.
그렇게 여기까지 왔고, 이렇게 오는 길의 시작엔 혜림 언니가 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거대한 제주바람은 나를 낙심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왜 제주를 오게 되었는지 생각하다보니, 바람에서 그리움이 느껴졌다. 수 천개의 바람 중 하나, 언니의 메세지가 흩날리고 있을테이니.
그래 바람아. 함께 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