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노마드와 외로움
2030세대의 싱글 여성에 지방러인 제가 혼자서 디지털노마드로서 일하고 여행하면서 든 매우 주관적인 저의 경험과 생각입니다.
어느 곳에 정박하지 않고, 떠돌아다니는 삶. 외롭지 않나요?
어쩌다보니 디지털노마드를 주제로 한 모임이나 강연회 같은 곳에 몇번 초대되어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그때마다 이 질문을 자주 듣게 되었다.
거창하고 새로운 대답을 기대했다면 미안하지만, 아쉽게도 나도 당연히 외롭다!
그렇지만 그 외로움이 이 라이프스타일 때문이라고 생각친 않는다. 외롭지 않냐고 묻는 질문자는 지금 외롭지 않으시냐고 여쭙고 싶다. 정호승 시인이 그러지 않았나. 외로우니까 사람이라고.
내가 처음 외로움을 기억하는 순간은 고등학교 1학년 2학기때였다. 처음으로 자취를 시작했던 시점이었다. 친구들과 선배들을 초대해서 떡볶이와 라면으로 집들이를 몇차례 치루고 난 다음, 방에 혼자 덩그러니 있으니 외로움이 썰물처럼 훅 밀려왔다. 그 때 나의 노안을 백분활용하여 매점에서 소주를 사와서 몰래 한잔했던 것이 나의 최초의 외로운 사람으로서의 기억이다.
따라서 가장 많은 친구들이 살고 있는 서울이라는 도시에 있는 지금도 내 외로움은 해소되지 않는다. 오히려 기대치가 커지니 소외감은 더 커졌다. 점점 결혼과 출산을 통해 가정을 이룬 친구들이 많아짐에 따라 만날 수 있는 사람도 적어지고 있다. 그나마도 연애 중이신데...솔직히 짝이 있다고 해서 늘 외롭지 않은 것은 아니란 걸 알고 있다(..라고 주장해봅니다.) 때론 함께 있어도, 혹은 함께 있어서 더 외롭기도 하다. 연애 중이 아닌 친구들도 다들 각자의 이유로 매우매우매우 바쁘다. 평일은 다들 기본야근이고, 아니면 더 나은 미래를 열심히 준비하는라 부지런히들 움직인다. 아니어도 만나는 위치와 시간을 조정하다가 서로의 활동반경이 너무 떨어져 있어서 제풀에 지쳐서 다음으로 미루고, 그 다음은 결국 세탁기 들어간 양말 한 짝처럼 소멸된다. 치앙마이에서 만났던 독일 쾰른 출신의 Daniel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런 건 서울만의 상황은 아닌 듯했다. 가정을 중시하기 때문에 가볍게 만날 친구들이 점점 줄어든다고 했었다.
거기다가 나는 원래부터 서울이 집이 아니다. 치앙마이에서든, 도쿄에서든, 서울에서든 나는 이방인.
그렇다고 나의 고향에 가면 나아지는가. 무조건적으로 사랑해주시는 부모님과 쫓겨날 걱정, 눈치 안봐도 되는 집에 있으면 세상 마음 편하고 외로움이 덜해지긴 한다. 하지만 지방 소도시에서 관심사를 공유하고, 같이 으쌰으쌰할 수 있는 ‘동지’를 만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고, 내 내적 가치를 나눌 ‘커뮤니티’가 없는 것은 참 심심한 일이다. 초중딩 때 친구들은 대부분 이미 주변 중심도시로 빠져나가고 연락할 사람이 남아있지 않다.
발리에서 만난 디지털노마드 기업가 Guy에게 우붓이 왜 좋으냐고 물어보았다. 빼어난 자연이나 독특한 문화보다 먼저 나온 대답은 적정한 사이즈의 마을이었다. 기본 이동수단인 오토바이만 있으면 10분이면 왠만한 곳들 다 다닐 수 있고, "오늘 맥주 한잔 어때?"하고 제안했을 때 서로 쉽게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원래 오랫동안 살아왔던 호주에서는 살아왔던 기간만큼이나 이런저런 애매한 관계와 기대와 의무들이 생겨나있고, 다들 멀리 떨어져있어서 쉽게 만나지지 않았단다. 그의 대답에 나는 깊이 동의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그런 적정 규모의 마을환경에서 살 때에 오히려 덜 외롭고, 마음의 평화를 느낀다. 내가 여기 제대로 존재하고 있다는 존재감을 가지게 된다. 서울이라는 대도시에서 나는 아무래도 하나의 모래 같이 느껴진다. 어디까지나 개인 취향이다.
덜 외롭다고 표현한 것은 다시 한번 더 강조하자면, 외로움으로부터 영원히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발리에서도 덜 외로웠던 시기도 있고, 아주 외로웠던 시기도 있었다. 정호승 시인의 시를 다시 한번 인용하자면,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 고로 여행이든, 디지털노마드로서의 삶의 선택할 때,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이 그대를 막지 않길 바란다. 지금 당장 외로움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존재 또한 영원하지 않기에, 고독을 정면에서 마주하는 과정에서 그 존재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달아 당신의 삶이 더 풍요로워질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