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자연 속에서 지내고 일하면서 회복할 수 있었던 생태적 감수성
디지털노마드로서 살아가는 것이 좋을 수 만은 없습니다. 세상 모든 것이 그렇듯.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라이프스타일의 장점들 중 하나는, 원한다면, 자연과 가까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디지털노마드가 된다는 것이 꼭 자연으로 간다는 것과 동의어는 아닙니다. 어디로 갈지는 온전히 개인의 선택입니다. 저도 지나온 2년 동안에 북경, 상해, 방콕, 샌프란시스코, 싱가폴 등 도시에서 지내온 시간들도 꽤 됩니다. 오히려 도시에서의 시간이 더 길었던 것도 같습니다. 그리고 도시만이 줄 수 있는 신선한 자극과 영감들, 흥분도 저는 좋아합니다.
하지만 여러 환경에서 지내보면서 제 영혼이 가장 기뻐하는 환경은 어떠한 곳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자연과 가까이 지낼 수 있으며, 교통 정체를 겪을 필요 없는 작은 마을이면서, 마음이 통하는 맛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지음의 커뮤니티가 가까이 있는 환경이었습니다. 특히나 지난 5개월간의 제주의 귀덕살이를 통해서 자연이 제 삶과 일상에 너무나도 중요함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6월 20일에 제주 한림읍 귀덕 2리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최근에 저희 동네를 방문한 친구가 물었습니다. "너무 아름답긴 하지만, 오래 지내면 심심하지 않아?"
솔직히 첫 달은 심심했습니다. 혼자였고, 인터넷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제 일상은 지루함이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5분 거리에 있는 바닷가로 한바퀴 산책을 갔다오는 것이 제 일상의 큰 낙이고, 제일 큰 여가생활이 되었습니다. 아침시간에 나가서 현무암 바위들 사이를 총총 거리고 다니기도 하고, 간단한 요가를 해보기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몸이 가는 대로 춤을 추기도 하고, 앉아서 바다의 반짝임을 보고 있거나, 바다 생물들의 꼼지락 거리는 움직임을 보기도 하자면 1-2시간이 금방 갑니다. 일을 해야하니까 어렵사리 발을 옮기지만, 항상 같은 곳을 가도 물 때에 따라 빛의 양에 따라 매일 매일, 시시각각 다른 영감과 감동을 받게 되어 지루하지 않습니다.
사실 저는 20대 초중반에는 아주 열성적인 환경주의자였습니다. 4대강 사업 막으려고 휴학도 했었고, 공사 현장인 낙동강을 따라 걸으며 친구들과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때 제가 생태적 감수성이 뛰어나서 그런 것은 아니었어요. 낙동강 현장 답사에서 한 참가자가 ‘강의 울음소리가 들려요’라고 했을 때, 저는 오글거린다고 생각했어요. '이러니까 환경운동과 일반 시민들 사이에 괴리가 생기지.’ 감성적인 그 사람을 책망했어요.
그러면서 한편으론 궁금증이 일었어요. ‘정말 들리나?’ 제주 해군 기지 공사를 할 때에도 강정 마을을 들린 적이 있어요. 그 때도 '미안해 구럼비야'라는 슬로건은 저한테 너무 생소했습니다. 내게는 그렇게 특별하게 보이지 않는 바위를 따로 호명하고 의인화한다는 것이.
이럴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저는 자연과 관계를 맺을 기회가 없었습니다. 집 - 학교 - 학원 사이를 오고 가며 공부만 하느라 자연에서 뛰어논 경험이 없어요. 안타까운 일이죠.
하지만 이제는 그게 어떤 것인지 알 것도 같아요. 귀덕 2리 앞바다의 이 곳은 이제 그냥 바위가 아니거든요. 제게 무대이고, 놀이터이고, 운동장이고, 명상하는 곳이고, 생각을 정리하는 곳이고, 해녀 할머니를 만나서 사소한 이야기를 나누는 곳이에요. 처음부터 이렇진 않았지만, 함께 보내는 시간이 축적이 되면서 저와 이 곳 사이에 관계가 생긴 것이지요. 하도 자주가서 시간을 보내다가 오니까 바위랑 말도 나눌 것 같고, 정서적 애착이 생겨버렸어요.
그냥 관광으로 와서 바쁜 일정 중에 욱여넣은 방문지로서 만났다면 이 정도까지 나와 제주의 자연 사이에 관계가 생겼을까 의문이 듭니다. 많은 사람들이 제주의 경이로운 자연을 보러 제주를 방문합니다. 요즘은 특히나 단체관광시즌이지요. 우와- 하고 감탄을 내뱉고, 사진을 찍습니다. 아주 많이요. 그리고 빠르게 다음 장소로 이동합니다. 이렇게 스쳐가듯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제주 자연이 파괴되어 가는 소식은 어떤 의미가 가질까요?
스스로 변화는 어디에서 오는가, 사람들은 어떻게 더 행동할 수 있는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었습니다. 여러 대안들이 복합적으로 함께 일해 선을 이루어야하겠지만, 저는 결국은 공감능력의 회복에 이르더군요. 환경문제의 경우엔 이 공감능력을 인간 이상의 자연물로 확장시킨 생태적 감수성의 회복이 함께 이루어져야 하구요.
공감에는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관계가 먼저 형성되어야 합니다. 그러니 생태적 감수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자연과의 관계를 회복해야 합니다. 도시에서의 도시 농업이 될 수도 있겠고, 지난 5개월 간의 저처럼 아예 자연과 가까이 살 수도 있겠지요. 후자를 위한 방법으로서 기존엔 귀촌, 귀농만 있었다면 이제는 디지털노마디즘이 새로운 방법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자연과의 관계 회복은 앞으로의 환경 문제 해결에도, 그리고 사람들 본인들에게도 긍정적인 효과가 있습니다.
저의 경험은요, 일단 자연 속에서 있으면서 정서적으로 매우 안정을 찾게 되었습니다. 일에서 막 스트레스가 오기 시작하고 몸이 경직되다가 고개를 문득 들어서 자연을 들여다보면 내 앞의 곤란들이 순식간에 감당할 만한것으로 느껴집니다.
제주가 해외 디지털노마드를 유치하는 것 뿐만 아니라, 제주 사람들이 그런 라이프스타일을 누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커리어를 포기할 필요 없이, 자신이 원한다면, 자연 가까이에서 살면서 자연과의 관계를 회복해나갈 수 있도록, 좀 더 많은 회사가 다양한 일과 삶의 방식을 허용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제주시내를 벗어나서 제주도의 다양한 동네로 인구가 퍼지면, 일단 요즘 너무 심각한 제주시내의 교통정체부터 조금이라도 해소되지 않을까요? 제주시내의 건물에 가려져 체감하지 못하고 있었던 제주 환경 파괴 문제가 좀 더 내 문제로 다가오지 않을까요? 저에게 귀덕 앞바다의 쓰레기 문제가 남의 문제가 아니게 되었듯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