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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센짱 Jan 17. 2022

선택을 당한 것은 나였다.

따로 또 같이 사는 글로컬 코리빙 하우스 서울눅스 프리퀄 11

현실과 이상 사이의 그네를 타다가 나는 결국 그 중간에서 내리기로 했다. 완전히 현실적이지도, 완전히 이상적이지도 않은 중간 어딘가의 선택. 


내게 더 맞는 곳은 벽난로 집 201호였다. 따로 또 같이 살기에 더 적합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으며, 개방적인 플랫폼으로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도 있었다. 어렸을 때 살았던 선구동 집과 유사한 점들이 많았다. 나는 따뜻한 커뮤니티를 바랐고 이를 위해서는 벽난로라던지 원목 바닥과 계단이 따뜻한 느낌을 주는 201호가 더 적합할 것이었다.

하지만 그 외에 201호를 선택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소들도 있었다. 빌라의 반장이 히스테리적이라는 정보를 입수했고, 원래 201호에 살던 아주머니가 이사 간 이유가 반장으로부터의 시달림 때문이라는 소문까지 있었다. 그런 어마무시한 분이 대놓고 만만한 인간인 나한테 갑자기 잘해줄리가. 피하는 게 상책이다. 게다가 4층 집보다 월세가 조금 더 높은 점도 영향을 크게 미쳤다. 

고민으로 며칠 밤잠을 설친 후에 드디어 결정을 내렸다. 전망 좋은 4층 집으로. 

결정을 내리고도 떨리는 내 마음 속에서는 합리화가 착착 진행됐다. 벽난로 집의 부정적인 요소들을 끌어모으고 4층 집의 긍정적인 면들을 모아 스스로에게 암시를 걸었다. 

'그래, 4층 집이야말로 딱이야. 그렇고 말고. 조금이라도 월세가 적은 쪽을 선택해야지. 그리고 화이트톤의 인테리어가 무난하게 좋을거야. ' 

한편 이 집에 관심을 보인 다른 친구가 있었다. 내가 먼저 집을 봤기 때문에 친구는 내게 결정 우선권을 주고 기다렸다. 마침내 결정을 내린 날 친구에게 연락했다. 헌데 예상하지 못했던 전화를 받은 듯, 놀라 했다.


“아직도 생각하고 있었어? 집을 본 지 일주일이 됐는데 말이 없길래 의사가 없다고 생각했어. 미안해… 어쩌지, 오늘 내 친구가 계약을 해버렸어…!”

 

계약을 번복할 수 없는 단계라는 정보를 덧붙였다. 하...! 고민을 좀 길게 하긴 했다. 결정을 하는 데 오래 걸린 만큼 마음도 4층 집에 쏠려있었다. 이미 이곳에서 펼칠 커뮤니티 라이프를 생생하게 그리며 기대감으로 부푼 상태였다. 그랬기에 상심은 컸다. 친구에게 서운했고, 스스로를 자책하기도 했다. ‘함부로 일 벌이지 말라는 하늘의 뜻인가.’ 이사 자체를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201호 전 세입자가 이사를 나가서 집이 비었는데, 다시 한번 보시겠어요?”

 

전 세입자가 살고 있을 때 (왼) / 세입자가 나간 후 (우)


힘이 빠져 아무런 기대가 없었다. 텅 빈 마음으로 텅 빈 201호를 다시 만났다. 양 쪽 다 텅 비어서일까. 이전에 방문했을 때와 또 다른 느낌이었다. 어라, 이 집이 이렇게 넓었나? 기억보다 밝네? 4층 집으로 결정하는 것에 대해 합리화하느라 묻어둔 이 집의 매력들이 하나씩 다시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어느새 집을 어떻게 바꿀지 상상하고 있었다. '이 블라인드랑 붙박이장을 철거하면 좋겠다. ' '이 구린 벽지 들어오자마자 바꿔야지.'  

그래, 내가 언제 벽난로가 있는 집에 살아보랴. 


계약하겠습니다.

계약 의사는 전달되었고 이제 조건들을 담판 지을 차례였다. 계약시작일은 최대한 미루길 바랐다. 현정 언니도 합류할 의사가 있었기 때문에 언니의 이사일에 최대한 가깝게 만들어야 했다. 보증금을 준비하는 시간도 필요했다. 보증금 댈 돈으로 천만원이 모자라 협상이란 걸 시도했다. 아니, 조마조마하며 부탁했다. 집주인은 망설였지만 빈집으로 놀리는 것보다 낫다고 판단했는지 천만원을 깎아주었다. 101호를 먼저 계약했던 오빠가 수완을 발휘하여 월세를 조정한 덕분에 나도 같은 기준을 적용 받았다. 포기와 절망과 놓침의 순간들이 있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니었으면 이런 조건을 만들어 낼 수 없었을 것이다. 


후에 부동산 사장님께 듣기론 내가 계약한 직후에 원래의 조건으로 계약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다고 한다. 간발의 차이로 내게 필요한 조건으로 집을 계약하게 된 것이다. 처음 이사갈 집을 물색하면서 아랫집 101호를 본 게 6월 15일. 201호 임대 계약서에 사인을 한 날이 8월 14일. 계약개시일은 9월 15일로 확정했다. 이 정도면 어쩌면 내가 집을 선택한 게 아니라 내가 선택당한 거 아닌가? 


'잘 버틸 수 있을까. 2년 너무 긴 거 아닐까?' 걱정 한 스푼. 

'뭐, 월세보다 월급을 더 받기만 하면 월급 다 부으면 돼. 빚만 안 지면 성공이지 뭐.' 낙관 한 스푼. 


교차하는 마음을 품고 제주도 셀프 워크숍을 떠나기로 했다. 생각을 정리하고 마음을 준비해야 했다. 힘들다고, 이건 아닌 것 같다고 중간에 도망칠 수 없는 2년짜리 마라톤의 시작을 앞두고 있었다. 이제 가설을 시험해볼 차례였다. 거실과 다이닝룸이 분리가 되어있으면 과연 갈등은 얼마나 줄어들까. 공용공간과 개인방의 층 분리는 정말로 거실의 개방적인 운영을 가능하게 할까. 가설을 비웃는 난관과 갈등들, 예기치 못한 상황 그리고 기대를 뛰어넘는 회복과 성장의 기회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현재 살고 있는 Seoul Nooks로 이사하고 2주일 후 열었던 집들이





그간 많이 부족한 글 읽어주시고 응원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계속 쓸 수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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