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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센짱 Jan 15. 2022

자, 키치죠지는 그만둘까?

따로 또 같이 사는 글로컬 코리빙 하우스 서울눅스 프리퀄 10

벽난로 집 201호는 내 유년시절을 상징하는 선구동 집과 많은 부분 닮아있었다. 


선구동 집은 아빠가 야심차게 직접 설계하고 지은 집이었다. 빚쟁이에 쫓겨 겨우 찾을 수 있는 은신처가 공동묘지였던 소년은 사업가가 되어 처음으로 3층짜리 건물을 지어올렸다. 단단한 그의 자부심만큼 튼튼한 이 집에서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 2학년 때까지 살았다. (이후 고모네 집, 기숙사, 자취 등의 민달팽이의 삶이 시작되었다...)


3층에 자리했던 이 집에 부모님, 나, 동생, 할머니 그리고 미혼의 막내고모와 막내삼촌까지 7인 대가족이 살았다. 1층에는 세 개의 방이 있었고, 옥상으로 나갈 수 있는 다락방이 하나 있었다. 다락방은 우리 집안의 한 때 기대주였다가 트러블메이커가 되어버린 삼촌이 지냈다. 삼촌은 자주 방을 비웠고, 그러면 이 방은 사촌들과 우리 남매의 아지트가 되었다. 선구동 집은 숨을 곳이 많았다. 숨바꼭질을 하다가 장독대를 깨트려 사촌동생 한 명이 크게 다치는 일도 있었다. 거실이 넓은 편임에도 불구하고 명절이나 제사가 되면 모든 사람들이 앉을 수 없을 정도로 집 안이 바글바글했다. 아빠도 엄마도 육남매였고, 양가 친척 모두 삼천포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앞뒤로 산이 있었다. 앞에는 야트막한 동네 언덕 같은 망산이, 뒤로는 각산이라는 산이 있었다. 망산 옆으로는 저 멀리서 바다도 조금 보였다. 산에 가까워서인지, 정원에는 새들이 많이 찾았다. 지금도 새소리를 들으며 행복해하는 건 그때 기억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새들은 우리 대문 위에 종종 새집을 지었다. 새집이 없을 때는 벌이 집을 짓기도 했다. 크지 않은 정원에는 동백꽃과 철쭉 등이 알차게 심어져 있었다. 

나는 굉장히 수줍음이 많은 아이였지만 사람을 좋아했다. 1층과 2층에는 서울우유 대리점, 태권도 도장 등 몇몇 다른 가게들이 있었다. 자연스럽게 우리는 서울우유를 마셨고, 나와 동생들 모두 태권도장을 다녔다. 5분 거리에는 사촌동생들이 살고 있었다. 서로의 집을 오가기도 하고 집 앞 한전 연수원 공터에서 공놀이를 하기도 했다. 드물게 눈이 내려 쌓인 날에는 쌀포대를 가지고 망산에 올라 눈썰매를 탔다. 오며가며 서로 아는 체 할 수 있는 이웃들이 곁에 있고 놀러갈 친구집이 가까이 있음에 행복했다. 이때는 많이 내향적인 성격이었기에 많은 사람들을 사귀진 못했지만 늘 이웃들을 궁금해했다. 할머니의 친구 할머니를 궁금해하고 말 걸고 싶은데 부끄러워서 티는 못내던 내면의 갈등을 기억한다. 


더 나은 교육 환경을 위해 중2 겨울, 같은 동네에 살았던 그 사촌동생네 가족과 함께 진주로 이사했다. 엘리베이터가 있는 아파트에서 살게 된다는 것이 신나고 흥분되어서 선구동 집은 자연스럽게 기억 속에서 잊혀졌다. 그러다가 넷플연가 모임을 하면서 선구동 그 집이 내게 얼마나 중요했는지 상기할 수 있었다. 그때의 기억을 복원하면서 살고 싶은 집과 동네의 조건은 더 명확해졌다. 


벽난로집 201호는 그 선구동 집과 공통점이 많았다. 원목 계단, 다락방, 전형적이지 않은 집의 구조, 벽돌벽, 정원, 가까운 산의 유무 등. 누구나 좋아할 만한 집이고 안전한 선택이었던 4층집을 뒤로 하고 201호에 애정이 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일드 <키치죠지만이 살고 싶은 동네입니까?>에서 일본인들이 가장 살고 싶어하는 동네 키치죠지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는 자매는 집을 보러 온 손님들에게 사연을 묻는다. 그런 다음 황당하게도 '응, 잘 들었고 그렇다면 키치죠지는 그만두자!'라고 외친다. 어벙벙해하는 사연자의 손을 잡고 그의 상황, 필요, 마음의 상태에 더 적합한 동네와 집을 추천해준다.

어쩌면 
4층집은 나한테 키치죠지 같은 선택이었다. 그리고 나의 필요를 돌아볼수록 내게 맞는 건 벽난로 201호였다. 하지만 재밌게도 집을 선택한 건 내가 아니었다. 집이 나를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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