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시민들의 코리빙 커뮤니티

글로컬 코리빙 스페이스 Seoul Nooks의 커뮤니티빌딩 1

by 센짱

망원동 쓰리룸의 <커뮤니티 섬> 보다 후암동 집은 운용해야 하는 방과 오고 가는 사람이 더 많아질 예정이었다. 그래서 명확한 기준점을 세우는 일이 더욱 중요했다. 판단이나 오해에 대한 두려움 없이 내가 더 나다울 수 있는 곳이길. 그 이상으로 내가 추구하는 가치를 이미 내재하고 있거나 함께 추구하고 싶은 사람들을 곁에 두고 싶었다. 기존 코리빙 스페이스나 셰어하우스에 들어갈 수 없었던 또 하나의 이유였다. 부동산 계약서에 사인하고 이사할 때까지 어떤 커뮤니티를 지향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들을 가졌다. 구체적으로 던져야 하는 첫 질문은 '어떤 사람들이 모이도록 할 것인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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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까이하고 싶고, 더 만나고 싶고, 연결하고 싶은 사람들은 어떤 사람인가를 들여다보는 것으로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모든 여행자들과의 교류가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모든 디지털노마드들을 쿨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특히 좋아했던 친구들과의 경험을 구체적으로 떠올려 보기로 했다. 그중 하나는 Brian & Inda 커플이었다. 광화문 인근에서 여행한 날 집에 와서 나에게 광화문의 집회에 대해 물었다. 나는 세월호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더 놀라운 것은 그들은 나한테 들은 것에 그치지 않았다. 며칠 후엔 인터넷으로 추가적으로 참사에 대해 알아보고 더 궁금한 것을 나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애도와 유감인 마음을 나눴다. 그들은 심지어 같은 광화문에서 태극기 집회에 대해서도 물었다. 시끄럽다고 섣불리 판단하지 않았다. 없는 체 넘어가지도 않았다. 호기심과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았다. 그리고 열린 태도로 이해하려고 했다.

일 년 후에 그들의 초대로 내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갔다. 가기 전까지 그곳의 역사나 문화에 대해서 아는 것이 정말 빈약했다. 탱고의 나라라는 것과 스페인어를 쓴다는 것 그리고 한국 땅을 계속 뚫으면 아르헨티나가 나올 정도로 지구 정반대에 있는 나라라는 것 정도만 알았다. 그렇게 정반대에 있는데도 비슷하게도 독재 정권을 겼었다는 사실을 워킹 투어에 참여해 알게 되었다. 투어 중 하얀 두건을 쓴 어머니가 그려진 벽화 앞에서 한참 서 있었다. 이후 40년 이상 지속되고 있는 하얀 두건을 쓴 어머니들의 집회에 함께 하기 위해 5월 광장을 찾았다. 작은 집회 속에 들어가 그들과 함께 광장을 돌았다. 할 수 있는 건 그뿐이었다. 같이 있어 주는 것. 같이 걷는 것. 같이 목소리를 내어주는 것.

벽화_하얀두건.jpeg 워킹 투어에서 가장 나를 사로잡았던 건 하얀 두건의 어머니회가 그려진 벽화였다

가네코 후미코는 그 이상으로 같이 싸운 사람이다. 박열의 아내로 더 잘 알려져 있는 그녀는 일본인이었지만 허상 같았던 국익에 자신의 이해관계를 제한하지 않았다. 9살의 나이에 조선 청주에 살던 친척 가족에게 맡겨졌고 오랜 기간 학대받았다. 오히려 우연히 찾아가게 된 조선인 마을의 사람들은 굶주리고 있던 그녀를 차별 없이 대하고 먹을거리를 내어주었다. 박문자라는 이름도 있는 그녀는 3.1 운동을 보고 '남의 일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감격이 가슴에 솟아올랐다.'라고 한다.

박문자와 같은 동시대에 태어났다면 나도 그런 삶을 살 수 있었을까? 전쟁을 당하는 쪽이 아니라 일으키는 나라에서 태어났더라도 나는 국가에 저항할 수 있었을까? 아마도 대다수처럼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서 조용히 따르는 삶을 살지 않았을까? 박문자뿐만 아니라 일본의 식민주의 반대 목소리를 냈던 일본인들이 있었다. 이런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세상은 갈등이 아니라 평화에 더 가까워지지 않을까.

그런 공감의 영역을 확장하는 데 도움을 주는 효과적인 방법으로 여행을 좋아한다. 한번 여행을 다녀온 곳은 그렇지 않은 곳은 우리에게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그곳에서 행복한 추억이 있다면, 그곳을 좋아하게 되었다면, 좋아하는 친구가 생겼다면, 우리는 그곳에서 발생하는 일이 완전히 남일이 되지는 않는다. 인도네시아에서 발생한 지진이, 독일에서 일어난 크리스마스 마켓 테러가, 과테말라의 기후변화로 인해 막막해진 농부들의 생계가.

반면 공감과 넓은 소속감을 가지며 살기 위해 여행이 필수 조건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더 많은 나라에 가보거나 더 오래 해외 생활을 한다고 자동적으로 그런 태도가 발생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행의 빈도나 기간보다 마음, 태도, 관계의 퀄리티가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여행을 통해 되려 녀서널리스트가 되거나 자기 자신만을 더 생각하는 사람도 만났고, 여행을 하지 않지만 세계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만났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들 끝에 드디어 이 커뮤니티의 정체성과 방향을 정의하게 되었다. '세계시민의 코리빙 커뮤니티'로. 디지털 노마드, 여행가, 코스모폴리탄이 아니라 다소 투박하지만 세계시민(Global Citizen)으로. 자신의 관심, 취향, 공감, 우정, 관계, 소속감을 자신이 태어난 곳에 한정시키지 않는 사람. 반대로 끊임없이 그 울타리를 넓혀가고자 하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고, 이 가치를 공유하는 사람들과 함께 산다면 그렇게 될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그렇다면 이런 사람은 어떻게 찾고 어떻게 선발할 것인가. 쉽지 않은 질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To Be Continued






참고자료 1. 아르헨티나의 독재 청산 역사 관련 기사


참고자료 2. 트랜스휴먼에 대한 설명

EDE63A74-4EB6-4CBA-9578-132606C971F3.jpeg 세계시민과 비슷한 개념으로 트랜스휴먼이 있다. 개인적으로 더 좋아하지만 범용성이 떨어져 활용을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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