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유상종

글로컬 코리빙 스페이스 Seoul Nooks의 커뮤니티빌딩 2

by 센짱
이전 글에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sen/51


2019년 9월 16일에 이사 후 2년 4개월간 많은 사람들이 함께 했다. 코로나 이전, 운영 초기에는 문을 열어두었던 단기 체류 여행자들까지 포함하면 총 50여 명에 달한다. 코리빙 멤버들만 쳐도 약 30여 명의 사람들이 서울눅스와 함께 해왔다. 다들 어떻게 눅스를 알고 왔는지에 대한 질문들 많이 받았다. 지금 쭉 돌아보니 이벤트, 타 커뮤니티 플랫폼,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연결된 건 30퍼센트였고, 그 외의 70퍼센트는 유유상종의 법칙(?)에 의존해왔다. 이 70퍼센트 안에서도 30퍼센트는 나와 알고 지내던 친구들이었고, 나머지 40퍼센트는 친구의 친구들이었다. 내 친구의 친구 뿐만 아니라 다른 두 명의 주축 멤버* 두 명이 소개한 친구들도 많았다.

*주축 멤버라 함은 계약 종료 때까지 쭉 같이 지낼 멤버를 뜻했다. 나를 포함해 세 명이 주축이 되어 방 세 곳을 나눠 쓰고, 나머지 두 방에 3개월 내외 기간으로 방문하는 이들을 호스트하는 것이 기본 계획이었다. 흥미로운 카우치서퍼라면 며칠 정도의 단기여도 특별 호스팅하는 것까지가 이상적인 그림었다.


부동산 계약을 저지를 때까지만 해도 주축 멤버에 대해서 확정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 주축멤버들은 커뮤니티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칠 사람들이었다. 어떠한 커뮤니티이든 초기 멤버들의 구성이 정말 중요하다고 믿었다. 초기 멤버들이 자연스럽게 공유하고 형성하는 문화, 그 바이브에서 점차적으로 굳어지는 레거시가 어떠한 커뮤니티 약속이나 헌장보다도 더 강력하다고 생각했다. 주축멤버들을 누구로 할 것인지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신중해야 했지만 또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천만다행으로 부동산 계약이 이루어지고 난 다음 이 문제는 마치 물 흐르듯이 해결되었다. 고민이 시작될 때부터 나의 푸념과 새로운 상상에 함께 했던 현정 언니 (a.k.a. 네이버)가 합류를 결정했다. 언니가 살고 있던 집 계약 종료일과 후암동 집의 계약시작일 사이에는 한 달 정도의 차이가 있었지만 언니는 어떻게든 이 문제를 해결하고 같이 이사하기로 했다.


나와는 다르게 결정이 시원시원한 네이버야말로 세계시민의 표상 같은 사람이었다. 해외여행이 이만큼 대중화되기 전에 어떤 지원 없이 홀로 인도와 마다가스카르 등지로 떠났다. 다양한 인종과 문화의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일하고 살았던 게 10년 이상. 한국에 돌아와서도 여전히 그곳과 사람들을 그리고 사랑했다. 한국에서도 외국인 친구들이 많은 그녀에게 기대는 친구들이 많았다. 나날이 국제화되고 있는 서울과 한국이지만 외국인으로서 살아가기에 여전히 많은 장벽들이 존재한다. 그런 장벽들이 나타날 때 단순히 정서적으로 서포트하는 게 아니라 언니는 해결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서 나섰다. 병원에 같이 가주기도 하고, 일 기회를 연결해주기도 했다. 크리스도 언니가 그렇게 도움을 준 친구 중에 하나였다.


"크리스도 이사 갈 집이 필요한 것 같던데 한번 물어보는 게 어때?"


우리가 망원동에 살고 있을 때 크리스도 한 정거장 거리의 합정에 살고 있었다. 네이버를 중심으로 동네 친구 모임을 가지면서 크리스를 만났다. 다 같이 한강공원에 밤마실을 가기도 하고, 망원동 이곳저곳을 다녔다. 누구보다 부지런하게 여행을 다니며, 여행 콘텐츠 인플루언서이기도 한 크리스는 국내 여행은 물론 일본 여행도 좋아했다. 지난 일본 여행에 동행했던 불가리아 친구가 자꾸 햄버거만 먹어서 아쉬웠다는 얘기에 내 홋카이도 여행에 함께 하겠냐고 제안했다. 나는 일본과 일본어를 비교적 잘 알며 마침 홋카이도에서 통역 출장 일정이 잡혀있었다. 일이 끝나면 며칠 더 머무르며 여행할 계획이었다. 크리스가 덥석 받으며 우리의 여행은 곧 현실화되었다. 공항에 도착한 크리스를 내가 렌트한 차로 픽업하면서 시작된 여행은 이틀간 꽤 인텐시브했다. 운전 시간만 하루에 6시간~ 8시간이었다.

크리스를 안지 오래되지 않았지만, 함께 한 여행의 경험이 좋은 리트머스지 테스트가 되어주었다. 짧으면 짧을 이틀이었지만 갈등이 생기려면 충분히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하루 종일 같이 다니는 동안 특기할 만한 트러블은 없었다. 내가 운전하는 동안 DJ를 맡았던 크리스가 주야장천 튼 그의 최애 곡들이 죄다 나도 잘 안 듣는 한국 발라드인 점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가사의 뜻을 다 알지 못해도 저렇게 좋아할 수 있다는 것에 감명을 받기도 했다. 아직은 알아갈 것이 더 많지만 그 여행의 경험들을 하나씩 되짚으면서 같이 살아도 나쁘지 않으리라 짐작했다.

"크리스, 곧 이사해야 한다고 들었어. 혹시 같이 살지 않을래?"


홋카이도 여행에 반사적으로 Yes라고 대답했던 크리스는 이번에 바로 결정 내리지 못했다. 혼자 지낸 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같이 사는 삶에 대해 걱정이 된다고 했다. 우리는 날을 잡아 다 같이 집을 보기로 했다.


“우와, 생각했던 것보다 집이 훨씬 크고 좋은데?!”

벽난로논의.jpeg

집을 방문하고 나서야 크리스 또한 합류를 결정했다. 1층부터 3층까지 다 같이 집을 둘러본 뒤 계단 주위에 모였다. 누가 어떤 방을 쓸지 결정해야 했다. 최종적으로 맥시멀리스트 크리스는 붙박이장이 있는 방으로, 네이버는 나와 함께 서로 붙어 있는 두 개의 방에 각각 지내기로 결정했다. 이후 다시 흩어져서 인테리어를 위해 각 방과 공용공간의 높낮이 및 너비를 측정하기 시작했다. 당시 망원동 쓰리룸 '커뮤니티 섬'에서 함께 지내고 있었던 반야와 야스민도 지원군으로 합류했다. 낡고 헤져 여기저기 구멍이 나있었던 방충망의 교체를 위해 각 창문들도 측정했다. 벽난로 옆의 격자무늬의 벽지도 교체 대상에 올랐다.

어떤 벽지가 나을지 어떤 색 또는 패턴이 나을지에 대한 고민을 반야와 야스민과 하면서 다 함께 해방촌의 루프탑 카페로 이동했다. 네이버와 크리스 그리고 나. 2년간 같이 살 주축 멤버들이 이렇게 확정이 되었다. 기가 막힌 타이밍과 흐름이었다. 주축 멤버가 확정되고 나니 조금 한 숨 돌릴 수 있었을 것 같았다. 이제 남은 두 방에 반야와 야스민 같은 친구들이 함께 해주면 딱 좋겠다고 간절히 바라면서 건배를 나누었다.

네이버와 크리스는 각기 다른 스타트업을 공동창업하여 운영하고 있었고 나 또한 사회생활 내내 스타트업 프로젝트를 하거나 스타트업 초기팀의 멤버로 일해왔다. 네이버와 나는 한국에 완전한 소속감을 느끼지 못했고, 불가리아 사람인 크리스는 한국이 좋아 4년째 한국에 살고 있었다. 우리 모두 노마딕(Nomadic)해서 이사 직후에 바톤 터치하며 집을 비우고 줄줄이 여행을 떠났다. 여자 두 명에 남성 한 명. 한국인 두 명에 외국인 한 명. 두 명의 스트레이트와 한 명의 LGBTQ. 비슷하면서 적당한 다양성을 갖춰 밸런스가 좋았다. 사람은 마그넷 같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존재 하는 인력과 장력, 즉 유유상종의 힘으로 우리 셋과 비슷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끌어당겨와지겠거니 낙관하며 이 큰 집을 빨리 채우고 꾸꾸밀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허나 돌이켜보니 잘못된 고민의 순서였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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