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컬 코리빙 스페이스 Seoul Nooks의 커뮤니티빌딩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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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은 같은 무리끼리 따르고, 같은 사람은 서로를 찾아 모인다.
유유상종(類類相從)의 사전적 정의이다. 초록동색, 가재는 게편, 똥은 똥끼리 뭉친다 외 외국에도 'Birds of a feather flock together(같은 깃털을 가진 새들은 함께 난다)', 고대 그리스어로는 ἀεὶ κολοιὸς παρὰ κολοιῷ ἱζάνει(갈까마귀는 갈까마귀 옆에 있기 마련이다) 같은 표현이 있는 걸 보면 '끼리끼리'는 인간의 오래된 자연적인 습성에 가까워보인다.
그런데 무엇이 같단 말일까? 이 세상에 나와 완전히 같을 수 없은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 같은 일시와 환경에 태어난 쌍둥이들도 100퍼센트 일치하지 않는다. 그러니 같은 사람이라는 것은 어떤 '부분'이 같은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사람에게는 여러 면이 있다. 일치하는 면이 일부 있으면 - 특히 자신의 정체성에 가까운 부분이거나, 희소성이 있는 활동을 취미로 삼고 있다든지 하면- 우리는 급속하게 친해진다. 그리고 친밀감이 강하면 강할수록 종종 우리의 다른 점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한다. 마치 본능적으로 그 다른 점에 대해 눈을 감는 듯하다.
그래, 너는 내 친구니까. 그래 걔는 네 친구니까.
뭐 별일 있겠어. 그래도 내 기대에서 아주 벗어나진 않겠지.
현실에서 일어나는 유유상종은 편향적이다. 우리는 좋아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콩깍지를 쓴다. Positivity Bias(긍정성 편향)나 Negativity Bias(부정성 편향)라는 심리학 이론을 간단히 말하자면 사람들은 긍정성 또는 부정성에 편향하여 천착하고 강화해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일종의 상대에 대한 이상화가 일어난다. 그 다른 점이 얼마나 다르던지 간에. 그 다른 특성을 원래 내가 얼마나 싫어하는지에 상관없이. 그 특성을 온전히 이해하기 전에 내가 보고 싶은 대로 해석해버린다.
죽고 못살던 연인 관계도 부부가 되어 한 집에서 살기 시작하면 어느정도의 싸움을 피할 수 없다. 집 밖에서는 깔끔하게 옷을 잘 입는 사람이었지만 집 안에서는 양말을 여기저기 벗어놓고 정리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 함께 하면 너무 즐거운 유머러스한 사람이지만 요리하고 나면 꼭 칼을 그 자리에 두고 다니는 사람이기도 하다는 것. 시니컬한 이상주의자라는 점이 같은 친구이지만 그릇을 꺼낸 후 찬장 문을 꼭 열어두고 다니기도 하는 사람이기도 하다는 것. 우리는 집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그제서야 한 사람의 다양한 면을 발견한다. 이것은 비단 상대에 대한 것 뿐만은 아니다. 나 자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2012년 12월, 스페이스노아라는 코워킹스페이스의 창립 멤버로 함께 했었다. 한국에서 두번째로 생겼던 코워킹 스페이스였다. 그만큼 다른 대안도 없었기 때문에 저 멀리 천안 등에서 시청역 인근 북창동까지 사람들이 찾아왔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만들어낸 에너지가 대단했다. 많은 시간이 지나지 않아 13년에 이미 여러 미디어의 주목을 받았다. 어떻게 이런 커뮤니티를 만들었는가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다. 나는 그 때 우리 커뮤니티를 사랑하고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우리가 커뮤니티를 '만들었던가?'. 이 질문에 대해서는 자신있게 대답할 수 없었다. 오픈살롱, 네트워킹 파티 등 다양한 이벤트와 실험들이 이루어졌지만 어떤 정교한 전략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때 내가 내렸던 결론은 온 우주가 나서서 도와준 유유상종이었다.
개성과 에너지, 그리고 할 말이 각각 강한 멤버들이 오프닝 멤버로 모였고, 이 다음 사람들은 첫 멤버들의 무리를 보고 자신이 이 커뮤니티에 함께 해도 좋을지를 판단했다. 사회혁신가들을 위한 베이스캠프라는 슬로건이 있었지만 이 카테고리에 속하지 않는다고 해서 누군가의 멤버십 가입을 반려하는 경우는 없었다. 혹시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있어도 가까이 앉지만 않으면 되었다. 또는 한 커뮤니티 안에는 다양한 서브 커뮤니티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자신에게 좀 더 맞는 서브 커뮤니티 멤버들과 더 어울리면 된다. 자신한테 맞는 서브 커뮤니티도 없다면? 그냥 업무 공간으로서의 기능적인 효용만 얻어도 되고, 그러기엔 커뮤니티에 흐르는 메시지와 공간을 채우는 대화들이 지내보니 생각보다 너무 안맞다면 한 달 후 멤버십을 갱신 안하면 된다. 아니, 멤버십 종료일을 기다리지 않고 지금 당장 자신의 두 발로 걸어나가면 끝이었다.
나는 코리빙 또한 코워킹의 연장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코리빙이 코워킹과 가장 다른 점은 이 '두 발의 법칙'을 적용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업무 공간보다도 주거 공간은 삶의 근본적인 영역에 해당한다. 알다시피 사는 곳을 단숨에 바꾸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코리빙의 커뮤니티빌딩을 자연의 순리로서의 유유상종에만 기댔을 경우 파탄이 나기 쉽상이다. 나와 비슷한 친구 A와 B는 생각보다 나와 다르고, 나의 기대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A와 B의 각각의 친구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반대로 더 좋을 때도 있고 아주 안 좋을 때가 있다. 그리고 그 환경에서 당장 벗어날 방도는 없다는 것은 생각보다 스트레스가 된다. 이런 스트레스가 고도화되면 특정 멤버과 부닥치지 않도록 피해서 다니는 패턴이 발생한다. 아무리 거실이나 다른 공용공간이 잘 되어 있어도 공동화되기 시작한다. 특정 인물이 독차지 하거나 모두가 서로를 피하기도 한다. 점점 집이 집이 아니게 된다. 곧 이 말이 튀어나올 것이다. 아, 이놈의 집구석!!!!
우리 커뮤니티도 그런 지점을 통과했다. '이럴려고 이렇게 산 게 아닌데...' 가장 큰 현타가 온 것은 20년도 8월이었다. 우리 커뮤니티의 1주년을 한달 앞둔 시점이었다. 이런 상태라면 1주년은 기념하고 축하할 일이 아니라 재앙의 시작이라고 정의해야할 판이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