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컬 코리빙 스페이스 Seoul Nooks의 커뮤니티빌딩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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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9월 15일이면 우리가 후암동으로 이사 온 지 1주년이 될 예정이었다. 한 달 전인 8월, 다가올 1주년을 축하할 수 있을지 미지수인 상황이 되었다. 집안은 냉랭했고, 미움과 분노, 억울함의 에너지가 곳곳에 느껴졌다. 문제는 키보드로 시작되었고 코비드-19의 확산이 심화시켰다.
그 해 여름 합류한 S는 기계식 키보드를 사용했다. 그전에 살던 집에서부터 애용해오던 물건이었다. 기계식 키보드의 소리가 집중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고 했다. C는 완전히 반대였다. 타운홀에서 한번 기계식 키보드 소리가 자신에게 스트레스가 된다고 문제제기를 했다. 이후 C가 거실에서 코워킹하러 내려올 때마다 S는 다이닝룸으로 가서 일을 했다. 충분히 멀리 떨어져 있어서 소리가 그만큼 신경 쓰이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S는 나름대로 배려하고 신경 썼다고 생각했지만 C에겐 충분하지 않았다. 참을 수 있는 임계점을 넘어서자 C는 공용으로 비치되어 있던 다른 유선 키보드를 가지고 가서 S에게 건넸다. 이걸로 좀 바꿔서 써줘. C는 나름대로 배려하는 제스처였으나 S는 이를 폭력적으로 느꼈다. 그는 C가 키보드를 '신경질적으로' 들이밀었다, 고 전했다. '기계식이 아닌 새로운 키보드를 자기가 사줄 것인가?' 당황스럽고 불공평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요청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문제는 일단락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기계식 키보드를 좋아하는 것은 S 뿐만이 아니었다.
S보다 한 달 정도 전에 서울눅스 커뮤니티에 합류한 M는 예비창업가였다. 한국이 좋아서 몇 년 만에 다시 돌아온 그는 국내의 한 창업지원 프로그램에 들어갔다. 프로그램은 업무 공간을 지원했고 필수적으로 출석해서 참여해야 하는 교육이나 코칭 세션이 연이어 있었다. 때문에 거실에서 코워킹하던 것은 나, S, C 정도였다. 그러다 코로나가 급속도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M가 참여하고 있던 창업 인큐베이팅 프로그램도 풀 재택으로 전환되었다. 언제 상황이 호전될 거라 예상할 수 없었다. M는 거실 코워킹존에 자신만의 홈오피스 환경을 구축해가기 시작했다. 굉장히 거대한 사무용 의자 하나가 들어오더니 마지막으로 배달된 것은 기계식 키보드였다. 기계식 키보드에 관심이 있던 나도 눈여겨보던 모델이었다. M는 도착한 키보드를 보고 한껏 기뻐했다. "가성비도 좋을 뿐만 아니라 소리도 큰 편이 아니라서 골랐어! 이쁘지 않아?" 기계식 키보드 소음에 대해 이미 지난 타운홀에서 C가 문제제기를 한 바가 있었기 때문에 나는 축하해줄 수만은 없었다. 하지만 사용하는 소리를 들어보니 확실히 S의 키보드에 비해서 소음이 나지 않았다. 기분 좋게 느낄 수준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M와 C는 상대적으로 더 친해 보였다. M는 C의 소개로 우리 커뮤니티에 합류했고, 연령대나 출신 지역도 상대적으로 유사해서 혹시라도 키보드로 문제가 생기더라도 서로 간에 알아서 잘 커뮤니케이션하겠거니 생각했다.
그런 기대는 '쾅'하는 문 닫는 소리와 함께 와장창 깨졌다. B는 좌절감을 느꼈다. 이미 기계식 키보드 소리가 좀 그렇다고 이야기했는데도 또 한 명이 기계식 키보드를 샀으니 무시당했다고 생각했다. B는 다시금 기계식 키보드를 쓰지 말라고 했다. 필요하면 그냥 일반 키보드를 사주겠다고 했다. C는 우선 키보드 사용을 중지했지만 막 새로 산 키보드를 이렇게 바로 포기하기엔 억울한 일이었다. 기계식 키보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그 소리에 예민한 것이 그 혼자라면 다른 모든 이들이 바꾸길 종용하는 게 아니라 B가 이어폰을 끼거나 정 집중해야 한다면 자기 방에서 일하면 되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 그렇게 며칠 지나고 B에게 그런 의견을 제시하자 B는 화가 끝까지 치밀어 언성을 높였다.
"It's just FUCKING keyboard!(아니 키보드가 무슨 대수라고!!!! )"
자신의 불편감이 다시금 무시당한다고 생각했는지 그는 그렇게 화를 내고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가 자신의 방문을 쾅! 하고 세게 닫았다. 문 닫는 소리에 연이어 들리는 M의 울음소리에 놀라 그때서야 나는 방에서 나와 상황을 파악하게 되었다. 자신의 문화에서는 문을 꽝 닫고 언성을 높이는 일이 잘 없는 데다 자신의 개인적인 트라우마가 겹쳐져서 M의 울음은 쉬이 잦아들지 않았다. C는 곧 아예 밖으로 나갔다. 그 이후로 거실은 C가 독점하거나 C가 아예 바깥으로 나갔을 때만 M와 S가 내려와서 일을 하거나 했다. 각자 서로에게 유언이든 무언이든 이런 메시지를 내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다 같이 이야기하는 기회를 한번 가졌지만 모두 감정이 고조되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M와 S는 C의 요구가 일방적이다고 생각했다. C는 M와 S가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했다. M은 C가 화를 낸 방식이 모욕적으로 느꼈다. '내가 온 문화에서는 그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내가 온 문화에선 이렇게 솔직하게 감정과 욕구를 표현하면서 살아!' 이야기는 어떤 진전도 이루지 못했다. 그래도 하나의 수확은 있었다. B는 이번에 좀 더 구체적으로 자신의 고통을 이야기했다. 기계식 키보드가 그냥 단순히 시끄러운 게 아니라 자신에게 칠판 긁는 소리에 가깝다고 했다. 냉전이 시작되었다.
평화주의자인 나는 괴로웠다. 상대적으로 직설적이며 감정적인 M, S, C 세 사람을 중재하는 것이 어려웠다. 집이 집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이러려고 내가 이런 고생을 해온 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갈등은 피로한 일이지만 어떻게 서든 나서서 이 문제를 타개해야 했다. 모든 정보와 요구, 문제들은 마인드맵에 써놓고 가장 공정하고 합리적인 해결점이 어딜지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To Be Continued
Cover Photo by Stefen Tan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