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눈으로 보는 바다를 좋아한다. 드넓고 푸른 바다는 언제나 나를 멈춰 세운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탁 트이고, 어딘지 모르게 위로받는 기분이 든다. 어릴 적 부모님과 함께 간 바다는 그야말로 꿈같았다. 내리쬐는 태양도, 따가운 햇살도 물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바다만 보면 신이 나서 뛰어나가던 아이였다. 아무 생각 없이 오직 놀기 위해 태어난 아이처럼 바다를 향해 전진하곤 했다.
올해, 집 근처 바닷가에 축제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마침 남편의 휴가 기간과도 겹쳤다. 물놀이와 모래놀이를 좋아하는 아이에겐 그야말로 반가운 소식이었다. 아이는 가기 전부터 들떠 있었다. 그런데 왜 나는 주저하게 되는 걸까?
그토록 좋아하던 바다는 이제 나에게 고민거리가 되었다. 바다에 다녀오면 집은 모래로 가득하고, 빨래는 산처럼 쌓인다. 옷가지와 먹거리를 미리 챙기는 일도 생각보다 번거롭다. 같은 바다를 두고 바라보는 나의 시선은 아이일 때와, 엄마가 된 지금 이렇게 다르다. 어릴 땐 자유로움이었지만, 지금은 책임이 먼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환한 얼굴을 떠올리며 우리는 바다로 향했다. 분수 쇼 공간에서는 ‘분수 해적단’이라는 이름의 물총놀이가 한창이었다. 남편은 주차를 하러 갔다. 아이와 나는 먼저 행사장으로 향했다. 뜨거운 태양 아래 부모들의 눈썹은 찌푸려졌지만,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파도처럼 넘실거렸다.
1차 물총놀이를 마친 후, 아이는 해적단 종이모자 만들기에 참여했다. 정성스럽게 그림을 그리고 색칠하는 아이를 뒤에서 바라보며, 더위에 말라가는 목을 느꼈다. 하지만 완성된 모자를 들고 웃는 아이를 보니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어 해적 타투를 하고 싶다는 아이의 손을 잡고 다시 줄을 섰다. 손등에 그려진 작은 해적 문양을 들여다보며 웃는 아이는 그 순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해 보였다. 나도 그 행복 바이러스에 감염된 듯 웃고 있었다.
래시가드 위로 햇살이 모이고, 몸은 점점 뜨거워졌지만 분수 물놀이는 그 열기를 단번에 식혀줬다. 남편을 기다리며 아이와 두 손을 꼭 잡고 시원한 물줄기를 향해 함께 달렸다. 그 순간, 나도 아이가 되었다. 물을 피해 뛰고, 또 웃고, 아이는 그런 나의 손을 이끌며 물속을 자유롭게 헤집었다. 남편까지 합류한 후엔 셋이서 한바탕 시원한 물놀이를 즐겼다.
분수광장에서의 물놀이가 끝난 후, 아이는 바닷가에서 모래놀이를 하고 싶다고 했다. 예상되는 뒷수습이 머릿속을 스치며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이런 나와 다르게 남편과 아이는 벌써 앞서가고 있었다. 어느새 해변에 도착했다. 남편과 아이는 모래놀이 도구를 챙겨 신나게 놀기 시작했다. 얼마 전 깁스를 푼 남편이 걱정돼 조심하라고 했더니, “이 정도쯤은 괜찮다”며 아이와 모래를 파기 시작했다. 아빠와 함께하는 놀이에 아이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나는 그런 아이를 보며 또 해야 할 집안일을 먼저 떠올렸다. 웃음이 나왔다. 어릴 땐 보이지 않던 현실이, 이제는 그 어느 것보다 선명하다. 아이는 한 시간 넘게 만든 모래성 안에서 아빠와 사진을 찍고 싶다고 말했다. 카메라 속 아이의 얼굴은 바다를 전부 가진 듯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남편은 내가 좋아하는 돼지갈비를 먹으러 가자고 했다.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주차장 입구부터 풍겨오던 고기 냄새에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물놀이 후 허기진 우리는 남편이 구워주는 고기를 정신없이 먹었다. 남편은 그런 우리를 바라보며 말없이 웃고 있었다. 특별할 것 없는 올해 여름휴가에도 나에게 가족이 있었다. 아이처럼 온전히 그 순간을 즐기지는 못했지만, 아이의 웃음 속에서 나는 행복을 발견했다. 어쩌면 부모의 행복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내려주고, 채워주고, 대신 웃게 되는 것.
내리사랑이라는 말이 그제야 마음 깊이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