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적으로 그런 말을 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내 언어에는 늘 부정적인 표현이 가득했다. 특히 남편 앞에서는 그 정도가 심했다. 남편은 언제나 내 편이라는 믿음 속에서 나는 하소연을 넘어, 마치 ‘부정 말하기의 챔피언’처럼 행동했다. 나만 힘들고, 나만 억울하고, 나만 견디고 있다는 듯 이야기의 중심에 서고 싶어 했다.
수업 이후 머릿속에 수많은 질문이 줄지어 섰다. 나는 왜 그렇게 이야기했을까? 단순히 위로받고 싶어서였을까? 아니면 너의 고통은 별거 아니라는 걸 은근히 드러내고 싶었던 걸까? 정확히 무엇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내 말이 나를 가두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나의 언어는 "어차피 안 돼", "내가 해봤자 뭐 해" 같은 말들로 가득했다. 미래를 불안하게 바라보며 도전조차 망설이게 했다. 결국 그 불안은 내 안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었다. 모두가 불안을 느끼지만, 끝내 해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나는 늘 시도조차 하지 않은 채 물러서곤 했다. 심지어 남편의 긍정적인 말마저 내 부정적인 말투에 덮여버렸다. 마치 긍정을 꺾어버리는 부정의 마법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 수업은 내 말하기 습관뿐 아니라, 내 생각과 태도까지 바꾸는 전환점이 되었다. 그 배움이 없었다면, 나는 여전히 세상에서 가장 힘든 사람인 척 말하며, 위로받기를 바라고, 대화의 중심에 서기 위해 애썼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배움’의 가치를 실감하게 되었다. 배우고 알게 되면, 바꾸고 개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화법을 바꾸기 위해 구체적인 실천을 시작했다. 과거 아이에게 쏟아냈던 부정적인 말들을 다시 담을 수는 없지만, 앞으로 다른 언어를 쓰기로 결심했다. 그 첫걸음으로 윤지영 작가님의『엄마의 말연습』이라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문장을 필사하며 몸에 익혔다. 말이 곧 태도이고 삶이라는 걸 알게 된 이상,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필사를 하며, 독서 모임을 통해 이야기 나누고 실천을 공유했다. 나의 언어는 서서히 변화해 갔다.
그 변화는 생각보다 깊고 넓은 곳까지 확장되었다. 독서와 교육을 통해 '나는 할 수 있다'는 내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어느새 자존감이 단단하게 자리 잡았다. 자존감은 자연스럽게 자신감으로 이어졌다. 나는 필사 모임을 직접 만들어 리더로 활동하기에 이르렀다. 매일 팀원들에게 응원과 용기의 피드백을 전하며, 함께 성장하고 있다는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친구들과의 대화에서도 나는 달라졌다. 부정적인 말을 줄이고, 듣는 쪽을 선택하게 되었다. 그러자 친구들은 마음을 열고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는 경청을 통해 관계의 깊이를 더할 수 있었다. 특히 육아로 지친 엄마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전 같았으면 “나도 힘들어”라고 부정 자랑으로 맞받아쳤겠지만, 이제는 그들의 고충에 공감하면서도 "엄마도 육아를 통해 성장할 수 있어"라고 말해주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그 말은 나를 위한 말이기도 했다.
지금 나는 말하기를 통해 생각을 바꾸고, 관계를 바꾸고, 나를 바꾸는 중이다. 부정 자랑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단순한 말투 교정이 아니다. 그것은 내면의 불안과 마주하고, 긍정적인 가능성을 선택하는 용기 있는 훈련이다. 그리고 그 변화는, 배움과 독서에서 시작되었다. 그러기에 우리는 삶이 다하는 그날까지 배워야 하나보다. 오늘도 더 나은 언어, 더 건강한 생각, 더 따뜻한 나를 향한 한 걸음을 힘차게 내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