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거면 하지 마!”
결국 또 감정을 참지 못하고 아이에게 소리를 질렀다. 아직 방학의 절반도 지나지 않았다. 실제로는 긴 여름휴가 이후 일상이 겨우 시작된 참이었다. 3학년부터 시작한 한자시험은 아이의 의지로 시작되었다. 아이에게 의사를 물었고, 도전하고 싶다고 해서 문제집을 구입헀다. 8급과 7급을 학기 중에 공부하며 방학마다 시험을 치렀다. 기저귀를 떼는 것도, 한글을 익히는 것도 느렸던 아이에게 처음 받아본 자격증과 우수상은 큰 자부심을 안겨주었고, 그 성취감은 아이의 자신감을 높여주었다.
4학년이 되면서부터는 더 바빠졌다. 방과 후 수업도 늘었고, 수영과 피아노 학원까지 하루 일과가 예체능으로 꽉 차 있었다. 그 속에서도 아이는 6급 한자 공부를 조금씩 이어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공부는 점점 밀렸다. '아직 4개월이나 남았다'는 마음에 우리 모두 느슨해졌다.
7월 중순, 한자 시험 접수를 앞두고 아이에게 물었다. "예정대로 8월에 시험 볼까? 아니면 11월로 미룰까?
2학기도 지금처럼 바쁜 일정 속에 공부하기 어려울 텐데, 방학에 집중해서 해보는 게 어떨까?" 내 말을 듣던 아이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엄마, 그럼 8월 23일에 볼게요.” 그렇게 다시 한자 공부가 시작되었다.
6급부터는 쓰기 문제가 있었다. 150자를 외워서 쓸 수 있어야 했다. 쓰기 암기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는 자꾸 잊어버렸다. 반복이 지겨웠는지 점점 힘들어했다. 나는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아이보다 내 마음이 더 급해졌다. ‘한 번에 합격하길’ 바라는 내 욕심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다 결국, 터지고 말았다.
“그렇게 하기 싫으면 하지 마!”
그 말에 놀란 아이는 졸던 눈을 왕사탕처럼 크게 떴다.
“넌 왜 한자 시험을 치는 거야?”
내 질문에 아이는 조용히 말했다.
“한자를 배우면 책도 더 잘 이해되고, 자격증 따면 기뻐요.”
아이의 말은 분명했다. 아이는 자신이 왜 공부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고, 스스로 그 이유를 말할 수 있었다. 그 사실이 오히려 더 미안하고 아프게 다가왔다. 밤이 되어 잠을 청하려 했을 때, 낮에 했던 말들이 자꾸 떠올랐다. 정말 그렇게까지 말해야 했을까?
문득,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나 역시 시험을 앞두고 공부가 싫었다. 이유도 모른 채, 그냥 해야 하니까 했고, 억지로 나를 달래며 버텼다. 그런데 지금 내 아이는 공부의 이유를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왜 행동으로는 이어지지 않았을까?
그건 아마도, 너무 바쁜 일정 속에 몸도 마음도 지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는 1학기 동안 바쁘게 달려왔다. 자신이 하고 싶은 예체능을 배우기 위해 노는 것도 포기하며 쳇바퀴에 올라탄 다람쥐가 되어 하루를 보냈다. 그 모습이 안쓰러워 그만두자고 말하면, 오히려 엄마의 말에 서운해했다. 그랬기에 방학 동안은 엄마와 데이트도 하고, 책도 실컷 읽으며 쉬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한자 시험이 그 시간을 막아버린 것이다. 기계적인 암기 속에서 아이는 점점 지쳐갔다. 나는 그런 아이의 감정보다 나의 조급함을 먼저 들여다보았다.
결국 나는, 자격증을 받고 기뻐하던 아이의 웃는 얼굴을 다시 보고 싶었던 것이다. 스스로 노력한 만큼 결과가 따르는 경험을 해보길 바랐고, 그것이 아이에게 큰 힘이 되리라 믿었다. 하지만 그 믿음은, 아이의 감정을 충분히 이해한 후에 전달되어야 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엄마의 마음과 아이의 마음 사이에서 무엇이 정답일지는 모른다. 다만 분명한 것은, 지금 아이에게는 휴식과 놀이도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남은 방학 3주 동안은 아이의 쉼을 존중해 주고, 동시에 자신이 선택한 일에 대한 책임감도 함께 배워가도록 돕고 싶다. 아이에게 내 감정을 넘기지 않도록 나 자신부터 감정 조절하는 연습을 해야겠다.
나의 감정은 나의 것이니까.
아이의 마음은 아이의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