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치유의 힘이 있습니다.”
글을 써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렇게 말한다. 하지만 예전의 나는 이 말을 쉽게 믿을 수 없었다.
의사도 고치지 못하는 마음의 상처를 글이 어떻게 치료할 수 있다는 걸까?
그런 의문 속에서, 나는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치유의 글쓰기’ 수업에 등록했다. 글을 잘 쓰고 싶다는 단순한 마음이었다. 글쓰기를 배운 적도, 써본 적도 없던 나에게 글은 그저 막막한 것이었다.
첫 수업 날, 강사님은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픔으로 가득 찬 삶이 어떻게 글쓰기로 바뀌었는지 말해 주었다.
“우리는 앞으로 10회 동안, 내 안에 들어 있는 ‘똥덩어리’를 빼는 작업을 할 겁니다.”
순간 고개가 갸웃해졌다. 글쓰기 수업에서 ‘똥덩어리’를 뺀다고? 처음엔 낯설고 어색했다. 그러나 그 말이 내 마음 어딘가를 건드렸다.
그날 밤, 조용한 거실에서 노트북을 켜고 처음으로 ‘치유 글쓰기’를 시작했다.
억울했던 기억들이 스멀스멀 되살아났다. 오래 눌러왔던 감정들이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손끝을 통해 쏟아져 나왔다. 스크린 위에는 욕과 비난, 분노와 눈물이 뒤섞인 글이 채워졌다. 문법도, 맞춤법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쏟아내는 일이 전부였다. 반쯤 글을 썼을 무렵,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욕설로 가득한 문장을 바라보며 어린 시절의 내가 불쌍하게 느껴졌다. 정말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을까? 그게 최선이었을까?
스스로에게 수없이 물으며 원망과 슬픔을 쏟아냈다. 글은 이어지지 않아도 괜찮았다. 선생님은 "생각하지 말고, 손이 이끄는 대로 써라"라고 했고, 나는 그대로 했다. 하나의 감정이 다 풀리기도 전에 다른 감정들이 밀려들었다. 내 안에 이렇게 많은 원망이 쌓여 있었던 게 놀라웠다. 끝없이 터져 나오는 감정에 버거울 때도 있었지만, 그 사소한 일들까지 기억하고 있는 나의 기억력에 문득 박수를 치고 싶기도 했다. 잊지 못하는 병이라도 걸린 것처럼, 나는 그렇게 글을 통해 나 자신을 파고들고 있었다. 수업이 거듭될수록, 수강자들은 점점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기 시작했다.
누구 하나 사연 없는 사람이 없었다. 용기 내어 자기 이야기를 말하는 사람들 앞에서 나는 박수를 보냈다.
나는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 내 이야기를 말하는 것이 부끄러웠다. 겉으로 멀쩡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다.
그게 나를 지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타인의 이야기에 함께 울고, 내 마음에도 따뜻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때 알았다. 이것이 바로 ‘치유의 글쓰기’ 구나.
글을 쓰며 울었던 그 시간들 속에서 나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한때 너무나 미워했던 사람을 다시 마주했을 때, 문득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는 아마 모를 것이다.
그의 무심한 말과 행동이 누군가의 인생을 얼마나 검게 물들였는지 말이다. 하지만 예전만큼 원망의 마음이 들지 않았다. 나는 이미 글을 통해 조금씩 원망의 감정을 흘려보냈다.
‘이제 됐다’는 감정이 비로소 찾아왔을 때, 나는 글을 잠시 멈추었다.
그 글들은 지금도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나만의 비밀 창고에 깊이 묻혀 있다.
시간이 흐른 뒤, 전자책을 쓰기 위해 다시 글쓰기가 시작됐다.
하지만 이번엔 조금 달랐다.
치유가 아니라 ‘과제’가 되어버린 글쓰기는 나에게 또 다른 부담이 되었다. 매일 A4 용지 2~3장을 채우는 일이 버거웠다., 하루 이틀 미루는 날이 계속됐다. 6개월 끝에 전자책 15개 목차를 완성했지만, 정작 출간은 하지 못했다. 내 글에 자신이 없었다. ‘이 글을 정말 누군가가 읽고 감동을 받을 수 있을까?’라는 불안만 남았다.
그러다 ‘백백챌린지’를 만나 다시 글쓰기를 시작했다. 처음엔 습관을 만드는 일이 스트레스로 다가왔지만,
어느 순간부터 ‘내가 정말 쓰고 싶었던 글’을 쓰게 되었다. 더 이상 숙제가 아닌, 설레는 일상이 되었다.
지금 나는 매일 글을 쓴다. 글쓰기를 통해 내 꿈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그리고 이제야, 많은 이들이 말하던 그 말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게 되었다.
“글쓰기는 정말 치유의 힘이 있다.”
그 치유는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에서 시작되지 않았다. 오직 나 자신과 마주하고, 감정을 꺼내어 흘려보내는 그 과정에 있었다. 상처를 바라보는 연습, 아픔을 이해하는 용기, 그리고 다시 나를 사랑하는 힘.
글쓰기는 이제 나에게 삶의 일부가 되었다.
그리고 글쓰기를 통해 스스로를 치유해 가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