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돌아 너에게 닿다

by 고니비니SN

너를 처음 만난 날을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내가 서울이라는 낯선 도시에 처음 발을 디딘 건 첫 직장과의 만남 덕분이었다. 부모님의 품을 떠나 자취를 시작했다. 면접을 본 그날 고시원을 알아보며 허겁지겁 새 삶을 준비했다. 서울엔 아무 연고도 없었다. 낯선 말투와 차가운 분위기 속에서 나는 회사와 고시원을 오가는 무미건조한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었다.


그 와중에, 노량진에서 공부 중이던 대학 선배는 내게 유일한 위안이었다. 주말이면 선배를 찾아가 사투리로 웃고 떠들며 밥을 먹던 시간은 말 그대로 ‘가뭄에 단비’ 같은 위로였다. 그러던 어느 날, 선배가 “같이 공부하게 된 후배”라며 너를 소개해주었다. 같은 학교라는 말에 괜스레 반가웠지만, 너는 고개만 살짝 까딱인 채 자리에 앉았다. 우리 사이의 첫 만남은 그렇게 어색하게 시작됐다.


시간이 지나며 우리는 몇 번의 식사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조금씩 가까워졌다. 무심한 듯 다정하고, 조용한 배려가 느껴지는 너의 모습에 내 마음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로 다른 환경 속에 살고 있었지만, 함께 있는 순간만큼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따뜻함이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연인이 되었고,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가며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주었다.


1년이 조금 넘었을 무렵, 회사를 그만두고 너와 함께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로 결심했다. 뒤늦게 시작한 공부는 생각보다 훨씬 고되고 벅찼다. 심리적인 부담은 점점 커졌다. 밤낮이 바뀐 생활에 건강도 무너져갔다. 그렇게 1년을 버텼지만,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마음은 바닥까지 내려앉았다. 설상가상으로 너의 이별 통보가 뒤따랐다. 감당할 수 없는 슬픔 속에 휩싸인 채 부산으로 돌아와 눈물 속에 하루하루를 보냈다.


머리로는 이해하려 했지만, 마음은 도무지 받아들이지 못했다. 너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나의 감정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시간이 흘러도 너를 향한 그리움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매일 너를 떠올리며 ‘이지성’ 작가의 『꿈꾸는 다락방』을 읽었다.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두 번째 '불합격'을 확인한 그날, 부모님의 권유로 다시 회사에 취직했다. 같은 일상의 반복 속에서 나이는 어느새 결혼을 논할 시점에 다다랐다. 여전히 누구도 만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결혼을 생각하면 막연하게 떠오르는 사람은 너뿐이었다. 스스로 "우리는 인연이 아니었어"라며 애써 마음을 추슬렀다.


그런 나를 움직인 건, 어느 날 불쑥 찾아온 술기운과 그 속에 있던 마지막 용기였다. 머릿속에 저장된 너의 번호를 눌렀고, 그렇게 우리는 다시 만났다. 꿈에서만 가능하던 너와의 재회가 현실이 되었다. 생생하게 꿈꾸면 이루어진다는 말처럼, 너는 다시 내 앞에 있었다.


지금 너는 나의 남편이 되었고, 우리는 사랑스러운 아이의 부모가 되었다. 한때는 끝이라고 믿었던 시간들, 이별의 아픔과 눈물로 가득했던 그 순간들이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우리를 이 자리까지 데려다준 길이었다. 내가 견뎌냈던 외로움과 절망은 결국 너와 우리 아이를 만나기 위한 과정이었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선물이 되어 돌아온 그 시간 속에서 나는 깨달았다. 인생에서 정말로 이루지 못할 것은 없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수많은 감정과 선택, 돌고 돌아 다시 마주한 지금의 이 순간이 말해주고 있다. 결국, 나의 전부였고, 나의 미래였던 사람은 바로 너였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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