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걷던 날, 처음 울던 날, 처음 속상했던 기억까지도 모두에게는 처음이라는 이름의 순간이 있다. 하지만 시간은 그 처음들을 조용히, 자연스럽게 잊히게 만든다. 부모교육을 들을 때면 늘 마음속에 피어오르던 질문이 있었다. 우리도 그 시절을 다 지나왔는데, 왜 엄마가 되고 나면 그 시절, 그 마음을 모두 잊어버리는 걸까? 우리가 지나온 사춘기라는 시간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분명 우리에게도 사춘기가 있었다.
감정은 매일 출렁였고, 이해받지 못해 외롭기도 했으며, 부모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크면서도 표현은 어설펐다. 그런데 지금은 그 사춘기를 ‘중2병’이라며 농담처럼 말하거나, 유난스러운 시기로 치부하곤 한다. 우리 역시 그 시절, 부모의 말이 벽처럼 느껴졌고,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어른들이 야속했는데, 왜 엄마가 되고 나면 그 시절의 감정을 그렇게도 쉽게 잊어버리는 걸까?
어쩌면 우리는 어른이 되면서, 자신이 지나온 성장의 시간을 하나둘씩 망각하는지도 모른다.
마치 기억을 지우는 약이라도 먹은 것처럼,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된 나는 어느새 그때의 나를 잊은 채 살아가고 있다.
나는 공감능력 없는 엄마다.
친정엄마에게는 내 마음을 이해해 주길 바라면서도, 정작 내 아이에게는 공감보다 해결책을 먼저 내미는 엄마다. 나의 방식은 늘 빠른 이해와 실질적인 조언이지만,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아이는 그보다 마음을 먼저 어루만져주기를 바란다. 그런 성향 차이는 매번 우리 사이를 갈라놓고, 아이의 눈물과 나의 짜증 사이에는 쉽게 넘을 수 없는 감정의 강이 흐른다.
육아는 어렵다.
그 어려움은 지식이나 정보의 부족이 아니라, 내 안에서 올라오는 감정과 기대, 조급함 때문이다. 머리로는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줘야 한다'라고 알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아이가 내 뜻대로 움직여주기를 바라는 이기적인 마음이 고개를 든다. 좋은 강의도, 감동적인 교육도 결국은 내 안에서 소화되어 행동으로 이어져야 의미가 있다. 수업을 들을 땐 온 마음이 공감으로 동요되지만, 막상 현실의 아이 앞에 서면 나는 또 평범하고 부족한 엄마가 된다. 아이가 원하는 건 공감인데, 나는 해결만을 말한다. 그 사이에서 우리는 늘 부딪히고, 엇갈리고, 지친다.
육아는 언제나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나의 뱃속에서 태어났건만, 감정의 기복이나 표현 방식, 생각의 흐름까지도 정반대다. 아이의 눈물은 억울함의 표현인데, 나는 그것마저도 묵살해 버릴 때가 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가 원하는 방식으로 이해받지 못한 채, 감정의 늪에 빠지곤 한다.
자식을 향한 엄마의 욕심은 전 세계 공통 언어 같다.
놓아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놓을 수 없고, 내려놔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결국 다시 들게 되는 마음.
엄마와 아이는 마치 같은 극의 자석처럼 밀어내며, 각자의 입장에서만 생각할 때가 많다. 어른인 내가, 엄마인 내가 조금 더 물러서면 되지 않을까 싶은데, 현실은 그리 쉽지 않다. 초등학교 4학년인 아이와 하루에도 몇 번씩 다툰다. 말다툼의 끝에는 승자도 패자도 없는 허무함만이 남는다. 그리고 늘 나 혼자 싸우고, 나 혼자 끝낸다.
아이의 사춘기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벌써부터 두렵다. 지금도 아이의 감정을 온전히 받아주지 못하고 있는 내가, 앞으로 다가올 더 깊고 복잡한 사춘기를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아이가 이유 없이 화를 내고, 문을 쾅 닫고 들어가 버릴 그날이 오면 나는 어떤 엄마가 되어 있을까?
가끔은 나 자신에게 묻게 된다.
나는 사춘기가 있었을까? 친정엄마는 그 시절의 나를 ‘그냥 내버려 두었다’고 했다. 말이 통하지 않던 나를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그저 시간을 주었다고 했다. 그 방식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나는 아이에게 그 시간조차도 쉽게 허락하지 못하고 있다. 사춘기였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지나온 그 시절이, 지금은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엄마가 되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사춘기가 겁이 난다. 아이가 아니라, 그 아이를 마주할 ‘내 모습’이 두렵다.
어쩌면 지금 내가 겪는 이 모든 감정도, 그 시절의 내가 아직 끝나지 않은 사춘기를 살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사춘기를 겪을 아이의 시간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내 안의 욕심과 조급함을 내려놓으려 애쓴다. 아직은 서툴지만, 조금씩 나아지는 나를 기대하며 오늘도 애써 다정한 엄마가 되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