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말에 순간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혼란스러웠다. 비몽사몽 한 상태로 되뇌었다.
“또?”
그 한 마디에 담긴 의미는 명확했다. 한 달 전, 7월 초 교통사고로 차를 고치고 남편이 퇴원한 지 이제 막 한 달이 지났을 뿐인데, 또 사고라니.
이번엔 앞차의 급정지로 인한 추돌이었다. 앞차는 경미한 부상에 그쳤고, 우리 차는 앞 범퍼가 들릴 정도로 충격이 컸다고 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잠이 확 달아났다.
“차가 그 정도면 몸은 괜찮아?”
“난 괜찮아.”
태연하게 대답하는 남편의 말에 오히려 내가 더 미안해졌다.
그러나 안심도 잠시, 남편이 조용히 덧붙였다.
“이번엔 자기 차야.”
그 순간, 짧은 정적이 흘렀다.
‘내 차라고?’
아이의 등하교며 학원 스케줄은 어쩌지? 감정보다 이성이 먼저 움직였다. 갑자기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양쪽 모두 크게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나도 모르게 속에 있던 화가 터져 나왔다.
“내가 항상 주행거리 유지하라고 했어? 안 했어?
매번 자기가 베스트 드라이버라고 할 때 내가 뭐라고 했어? 운전은 혼자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고 했잖아.
항상 방어운전, 안전 운전하라고 그렇게 말했잖아!”
마치 랩처럼 쏟아내는 내 말에 남편은 얼어붙었다.
게다가 오늘은 아이의 여름방학 특강이 시작되는 날이었다. 2년 동안 차로 등하교했던 아이와 이 더운 여름날 걸어가야 한다는 현실이 앞을 막았다. 학원도 마찬가지였다. 하루의 모든 일정이 꼬이기 시작했다.
차 한 대가 없어진 것뿐인데, 일상의 모든 것이 멈춰버린 느낌이었다.
결혼 후 10년 동안 사고 한 번 없던 남편이, 한 달 사이 두 번의 사고를 겪었다. 처음엔 피해자였지만, 이번에는 가해자가 되었다. 마음을 추스르기도 전에 또다시 사고 소식을 들으니, 나조차도 점점 감정이 무뎌지는 걸 느꼈다. 남편의 차를 따라 내 차를 정비소에 맡기고, 아이를 등교시킨 뒤 겨우 집으로 돌아왔다.
감정보다 이성이 필요한 시간이었다. 우선 당장 예정된 스케줄을 조정하고, 필요한 연락을 돌리며 일상을 정리해 나갔다.
그날 아침, 습관처럼 하던 필사를 단톡방에 올린 , 다른 사람의 필사 글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생각하는 사람은 화를 내지 않는다.”
그 문장 앞에서 발걸음이 멈췄다.
나는 생각하지 않아서 화가 났던 걸까?
다시 아침으로 돌아가 생각해 보았다.
남편이 고의로 낸 사고가 아니었다. 앞차가 급정지했고, 반응할 시간적 여유가 부족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다행인 건, 두 사람 모두 다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수리비는 들겠지만 자차 보험이 있다. 그동안 너무 차에 의존했던 생활을 조금 내려놓고 다시 ‘걷는 삶’으로 돌아가보라는 메시지처럼 느껴졌다. 차가 없는 며칠 동안, 걷기를 통해 건강을 되돌아보라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남편이 다치지 않은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날 오후, 오랜만에 아이와 함께 학교에서 집으로 걸어왔다. 땡볕 아래서 걷는 길은 쉽지 않았지만, 차가 없던 친정에서 늘 걸었던 시절이 떠오르며 금세 익숙해졌다. 아이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핫도그 하나씩을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오히려 행복한 시간이었다.
이번 사고로 값비싼 수업료를 냈지만, 남편은 그만큼 안전운전에 대해 많은 것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너무 당연하게 여겼던 차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그리고 기꺼이 차를 내어준 친구에게도 또 한 번 감사함을 느꼈다. 비록 내 차는 현재 정비소에 있지만, 수리와 안전점검을 마치고 새 차처럼 돌아올 날이 머지않았다.
불편함 속에서 오히려 우리가 놓치고 있던 소중한 것들을 하나씩 되찾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사고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느림의 시간.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찾은 작지만 단단한 평온함.
이제는 화보다 생각을, 두통보다 여유를 선택하며
다시 걸어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