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유산을 끊기 위해 싸우는 중입니다

by 고니비니SN

부모님의 말에 여전히 가슴 한편이 뜨겁게 반응한다.

어른의 말이라 해도, 자신의 방식이 옳다고 고집하는 모습 앞에서 여전히 나 자신이 작아지고, 동시에 속에서 불이 치밀어 오른다. 나는 부모님의 교육 방식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이 반복되는 지금의 내 모습이 괴롭다.


감정이 앞서고, 그것이 교육의 언어가 되는 집은 어릴 적부터 익숙했던 풍경이다. 어른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배려는 종종 뒤로 밀렸다. 말보다 감정이 먼저였다. 그래서 나는 "그런 모습은 닮고 싶지 않다"라고 다짐했다. 하지만 지금, 엄마가 된 나는 그 다짐을 매번 지키지 못하고 있다.


나는 감정적인 엄마다. 어떤 날은 같은 상황에 웃고, 또 어떤 날은 소리친다. 알쏭달쏭 수수께끼 같은 하루에 아이는 매번 엄마의 기분을 살핀다. 어린 시절 내 모습과 같다. 나 역시 부모의 일관되지 못한 태도에 혼란스러워했다. 자연스레 ‘눈치’를 배웠다. 눈칫밥은 어느새 일상이 되었다. 불안한 하루 속에서 타인의 감정부터 먼저 읽는 사람이 되었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수많은 육아 강의를 들었다. 내 감정을 조절하는 방법을 배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좋아지고 있다고 믿었다. 나아지고 있다고도 느꼈다. 그런데 최근, 다시금 느낀다. 아직 멀었다는 것을 말이다.


주말, 친정 식구들과 중국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조용한 식당에 우리 가족만 있었다. 주문을 마치자마자 아빠가 말했다.


“탕수육 대자는 양이 많지 않니?”

성인 다섯에 초등학생 아이 하나, 여섯 명이 함께하는 자리였다. 대자가 많을 리 없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말했다.


“아빠, 대자도 모자를 수 있어요.”

하지만 음식이 나온 후에도 아빠는 계속해서 양이 많다고, 맛이 별로라고 말을 이었다. 결국 나는 참지 못했다.


“아빠, 이왕 시킨 거 맛있게 먹어요. 자꾸 말씀하시면 체할 것 같아요.”

그 순간, 공기가 얼어붙었다. 어릴 적부터 익숙했던 그 ‘차가운 정적’이었다.

아빠는 이가 좋지 않아 딱딱한 음식은 드시지 못한다. 그래서 항상 아빠가 드실 수 있는 음식점 위주로 외식을 했고, 선택은 늘 제한적이었다. 하지만 음식의 선택뿐 아니라, 늘 모든 것에서 아빠는 '가성비'와 ‘절제’를 중요하게 여겼다. 어릴 적부터 나는 그 기준에 맞춰 조심스럽게 먹었고, 가족 모두가 아빠의 눈치를 봤다. 오늘도 그랬다. 그게 숨이 막혔다.


식사 후, 남포동으로 향했다. 엄마와 함께 쇼핑을 시작하자마자, 아빠가 가게로 들어왔다.

“집에 옷도 많은데 또 사느냐”며 엄마를 다그쳤다. 엄마는 아무 말 없이 서둘러 옷 하나를 골랐다. 참다 못해결국 아빠에게 말했다.


“아빠, 나는 아직 다 못 봤어요. 기다려 주세요.”

아빠는 대꾸 없이 가게를 나갔고, 결국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 그날 내내 아빠는 “왜 여기 왔느냐”, “이걸 왜 구경하느냐”며 투덜댔고, 나는 다시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아빠는 이미 중국집에서 술 한 병을 마셨다. 한 병을 더 원했지만, 지금 출발해도 차가 막힌다며 남포동에 가서 한 병을 더 마시자고 해서 온 것이었다. 결국 모든 가족의 시간은, 아빠가 원하는 ‘한 잔’을 위한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나의 감정은 그 사실 앞에서 더 거칠어졌다.


나는 아빠의 말에 따박따박 말대답을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아빠는 나보다 말수가 적은 엄마에게 짜증을 냈고, 엄마는 나에게 눈짓으로 “제발 좀 참아 달라”라고 부탁했다.

나는 엄마의 눈빛에 한숨이 났다. 언제까지 엄마는 남편의 기분에 맞춰 자신을 희생하며 살아야 할까. 엄마의 모습을 보면 가슴이 답답해 온다. 그래서 더 옳은 말로 아빠의 논리를 무너뜨리고 싶었다.


나는 감정표현에 서툴다. 그래서 감정을 조절하고 싶어 공부했다. 내 아이에게는 평온한 환경을 제공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아직 멀었다. 여전히 아빠의 말 한마디에, 나는 쉽게 흔들린다.

이론과 실전은 다르고, 상처받지 않은 듯 행동하고 싶지만 아직은 그럴 수 없다. 다만, 이 감정을 대물림하고 싶지 않다는 결심은 더 굳건해졌다. 나의 감정과 지금도 싸우고 있고, 매번 지기도 하지만,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감정의 고리를 내 손으로 끊어내고 싶다. 그래야 내 아이는 나처럼 눈치를 보지 않고, 자기감정에 당당한 아이로 자랄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아직 멀었다. 하지만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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