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와 부러움을 넘어서 깨닫게 된 감사

by 고니비니SN

나는 두 명의 동생이 있다.

여동생과 남동생 하나. 나는 그중 첫째다. 두 살, 네 살 터울의 동생들은 어릴 적 나에게는 돌봐야 할 책임이었고, 또 가장 가까운 친구였다. 과자를 더 먹기 위해 싸우기도 했고, 때론 서로를 위해 싸움에 나서기도 했다.

맞벌이를 하시던 부모님 덕분에, 우리는 셋이서만 밥을 먹는 날이 많았다. 엄마가 미리 준비해 놓고 간 반찬을 꺼내 먹으며 분홍 소시지를 두고 티격태격하던 저녁 시간. 그 시끌벅적했던 시간들이 우리를 울리고 웃게 했다. 나이가 들고 각자 친구가 생기면서 우리는 함께보다는 따로 있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하지만 부모님의 빈자리를 서로가 채우며 여전히 곁을 지켜주는 관계로 자랐다.


결혼을 준비할 때도 가장 먼저 의지한 사람은 엄마가 아닌 여동생이었다. 8개월이라는 시간이 있었지만, 직장에 다니면서 준비까지 하려니 늘 시간이 부족했다. 그런 나를 위해 여동생은 예식장 리스트를 만들고, 준비물 목록을 정리해서 건네주었다. 다른 지역에 있던 남편보다 여동생과 먼저 현장을 보러 다녔다. 계약은 남편과 함께 마무리했다. 그렇게 여동생 덕분에 결혼 준비를 무탈하게 마칠 수 있었다.


출산 후에도 동생들은 내 곁에서 든든한 지원자가 되어주었다. 친자식보다 조카를 더 아끼는 마음에, 육아는 조금 덜 외롭고 덜 지쳤다. 힘든 시간 속에서 잠시 숨을 돌릴 수 있었고, 그 덕에 다시 아이를 사랑할 수 있는 여유도 얻을 수 있었다. 어릴 적 그렇게 싸우던 동생들이, 어른이 된 지금은 나에게 가장 큰 선물이 되었다.


2년 뒤, 여동생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했다. 하지만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선택을 했다. 부모님은 처음엔 충격을 받은 듯했지만, 몇 년 동안 아이 소식이 없는 동생 부부를 보며 결국 그들의 결정을 존중해 주었다. 그리고 몇 해가 지나, 동생 부부는 강아지를 키우기 시작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강아지를 무서워했다. 동생의 집을 방문할 때도 불편함이 있었다. 나를 배려해 동생은 강아지를 케이지에 넣어두곤 했다. 조심스레 다가가고 싶었지만, 내 몸은 마음처럼 움직여주지 않았다. 그렇게 1년 정도 지나면서 나는 점점 강아지에게 적응해 갔다. 다행히 강아지는 잘 훈련되어 있어 순하고 착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예기치 못한 상황이 자주 생긴다. 그럴 때마다 동생은 아무 말 없이 달려와 도와주었다. 그런 동생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든든했는지 모른다. 오빠만 있는 친구는 항상 나를 부러워했다. 아이가 생긴 후 여동생의 도움이 있었기에 나도 더 당당해질 수 있었다.


매주 수요일 캘리그래피 수업을 함께 듣는 언니가 있다. 언니는 자매가 많았고, 모두 가까운 거리에 살아 자주 왕래하며 여행도 함께 다닌다고 했다. 언니의 아이와 언니의 조카는 두 살 터울로 남매처럼 지낸다고 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나도 문득 생각이 들었다. 여동생에게 아이가 있다면, 외동인 우리 아이와 함께 자주 어울리고, 여행도 함께 다닐 수 있었을 텐데 하고 말이다. 친구는 여동생이 있는 나를 부러워하고, 나는 조카가 있는 언니를 부러워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부러워하는 것 같다. 하지만 부러움만으로 현실이 바뀌는 건 아니다. 게다가 내가 바라는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비교와 부러움은 어쩌면 내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열등감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조카는 없지만, 내 아이를 친자식처럼 아끼고 사랑해 주는 동생들이 있다. 이런 관계는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비교 대신 감사하고, 부러움 대신 내 곁의 사람들을 더 사랑하며 살아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런 삶이 어쩌면 정말 행복한 삶일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이전글두려움을 건너는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