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꿈에 가정주부는 없었다.
아이를 낳으면 친정엄마가 도와주시기로 했다. 나는 출산 이후에도 금방 사회로 복귀할 줄 알았다. 하지만 임신과 동시에 나의 몸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었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몸과 감정은 내 삶의 주도권을 천천히 앗아갔다. 계획에 없던 전업주부라는 역할은 나의 적성과는 맞지 않았다. 외벌이의 경제적 부담보다, 일하지 않는 삶에서 느끼는 무기력함이 더 힘들었다. 하루라도 빨리 다시 일하고 싶었다. 그러나 출산 후 내 몸은 회복되지 않았고, 마음은 지쳐 있었다. ‘일하고 싶지 않다’는 감정과 ‘경제적 자유를 얻고 싶다’는 욕망 사이에서 나는 매일 흔들렸다.
어느 날, 멍한 눈으로 아이를 바라보는 나를 본 남편이 말을 건넸다. 하고 싶은 게 참 많았던 아내가, 몇 달째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니 걱정이 되었던 모양이다. 아이가 열 살이 되면 다시 사회에 나가겠다고 늘 장담했던 나였다.
“여보, 아직 열 살 되려면 3년이나 남았잖아. 그동안 자기가 좋아하는 걸 한번 찾아봐. 이번엔 자기가 진짜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었으면 좋겠어.”
남편의 말은 다정했고 듣기 좋았다. 그러나 그 말에도 나는 여전히 생각만 많았고, 의지는 생기지 않았다.
“그냥 알바나 할래. 이 나이에 다시 회사를 들어갈 수도 없고, 뭘 시작해도 다 돈이 들잖아.”
자포자기한 내 말에, 남편은 다시 부드럽게 말했다.
“자기, 하고 싶은 거 정말 많았잖아. 너무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생각해 봐.”
하지만 현실은 쉽지 않았다. 아이와 함께하는 하루하루는 전쟁이었고, 정신없이 바빴다. 정작 나 자신을 돌아볼 틈이 없었다. 나의 하루는 아이로 시작해 아이로 끝났다. 전업주부로 지낸 시간이 길어질수록 무기력은 깊어졌고, 의욕은 점점 사라졌다. 다시 사회로 나가기엔 나의 능력은 퇴화된 것만 같았다. 예전 경력을 살리기엔 실력도 부족하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다시 배우고자 하는 마음조차 잃어버리고 있었다.
“나는 앞으로 뭘 하며 살아야 할까?”
아이 열 살이 되면 뭐라도 하고 있을 줄 알았지만, 나는 여전히 집에 있었다. 그래도 달라진 것이 한 가지 있다면, 그것은 4년 전 시작한 서평 활동이었다. 그 일을 계기로 집 안엔 책이 하나둘 쌓여갔고, 나의 일상도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그 시간 속에서 다시 ‘꿈’이라는 것이 생겼다는 사실이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단순한 행위 속에서, 나는 가랑비에 옷 젖듯 조금씩 변해갔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용기’가 있었다. 책은 단순히 지식만을 주지 않았다. 삶의 관점을 바꾸었고, 멈춰 있던 나를 다시 움직이게 만들었다. 그렇게 나는 북토크와 독서모임에 참석하고, 작가님들과 연락을 주고받고, 필사 모임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나에게는 생소했던 새로운 경험들이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내 삶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나는 두 번째 꿈을 꾸게 되었다.
글로 사람을 변화시키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
글을 쓰며 알게 되었다. 한 권의 책은 단지 문장들의 나열이 아니라, 작가의 인생과 지혜가 응축된 하나의 철학서라는 것을 말이다. 요즘 많은 이들이 2만 원짜리 책 한 권 사는 것을 아깝다고 말한다. 하지만 책 속에는 누군가의 몇 년, 어쩌면 평생이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 출판 시장이 어렵다고 말하는 요즘에도 매일같이 수십, 수백 권의 책이 쏟아져 나오는 이유는 분명하다.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들, 즉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나를 살리는 동시에, 남을 도울 수 있는 사람.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빈 화면 앞에 앉아 글과 씨름하고 있다. 때로는 단어 하나를 붙들고 몇 시간을 고민하고, 때로는 마음속에 떠오른 문장을 놓칠까 급히 적는다. 쉽지 않다. 그러나 그 과정을 통해 나는 다시 살아 있다는 감각을 되찾는다. 그리고 믿는다. 베스트셀러를 바라며 쓴 글보다, 나를 살리기 위해 써 내려간 한 문장이 결국 누군가의 마음에 닿을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쓴다.
나처럼, 다시 꿈꾸기 시작한 이들이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우리가 써 내려가는 문장 하나하나가, 결국 잊고 있던 ‘나’를 다시 찾아가는 여정이 되기를.
그 기록들이 삶의 조각들을 하나씩 꿰매며, 우리를 다시 나답게 살아가게 해 주기를.
그리고 그 모든 문장이 결국, 다시 나로 살아가기 위한 기록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