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네 개의 눈으로 하루를 살아간다.
두 눈은 세상을 바라보고, 나머지 두 눈은 그 세상을 선명하게 만들어 주는 보조 도구, 안경이다.
처음 안경을 쓴 건, 사회생활을 다시 시작하면서였다. 학창 시절엔 안경 없이도 칠판을 또렷이 볼 수 있었고, 공부에도 큰 불편함이 없었다. 하지만 회사를 향해 버스를 기다리던 어느 날, 버스 번호판이 흐릿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분명히 어딘가 이상했지만, 안경을 쓰고 싶지 않았다. 작은 글씨를 읽기 힘들어도, 흐릿한 세상을 마주하면서도 한동안은 그렇게 버텼다. 결국 업무 중 실수에 대한 불안감이 커져 안경점을 찾았고, 그날 이후 안경은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
결혼과 함께 안경은 마치 또 하나의 옷처럼 내 얼굴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처음엔 어색하고 불편했지만, 내 눈은 점점 안경에 길들여졌고, 이제는 안경 없는 하루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러나 안경을 쓴다는 건 단지 시력을 보완하는 문제만은 아니었다. 매일 아침 눈 화장은 생략하게 되었고, 가장 예뻐 보였던 눈이라는 부위가 안경 너머로 숨어버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내 아이만큼은 안경과 멀리 지내기를 바랐다.
다행히도 아이는 시력이 좋았다. 학교 검진에서도 0.8에서 1.0 사이를 유지했고, 나는 안심했다. 예쁘고 동그란 눈망울이 오래도록 그대로이길 바랐다. 수업 시간에 칠판이 잘 보이냐는 내 물음에도 아이는 “괜찮아”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아이는 어릴 적부터 눈을 자주 비볐다. 충혈이 잦았고, 간지럽다고도 했다. 병원에선 알레르기라는 진단과 함께 안약을 처방해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름방학 중 친구의 딸이 안경을 맞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핸드폰도 없는 아이였기에, 책을 많이 읽어서 그렇겠거니 했다. 그 말을 듣고 나서 나는 다시 아이에게 물었다.
“너는 학교에서 칠판이 잘 보여?”
아이의 대답은 여전했다. “응, 괜찮아.”
눈이 가렵다는 이유로 안과를 방문한 날, 진료를 받던 김에 시력 검사도 해보기로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이는 0.2 이하의 숫자를 읽지 못했다. 믿기지 않는 결과였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불편하지 않다”라고 말하던 아이의 시력이 이렇게나 낮아졌다는 사실에 나는 충격을 받았다.
“선생님, 하루아침에 시력이 이렇게 떨어질 수 있나요?”
의사는 아이들이 성장기에는 시력이 빠르게 나빠질 수 있다고 했다. 특히 요즘 아이들은 멀리보다는 가까이 보는 활동이 많아 근시가 빨리 진행된다고 했다. 우리 아이는 아직 스마트폰도 없었지만, 3학년이 되면서 책을 많이 읽었다. 자랑스러운 습관이었지만, 그것이 원인이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쓰렸다.
"엄마가 계속 물어봤잖아. 칠판 잘 보이냐고…"
내 말에 아이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나는 정말 불편하지 않았어…”
그 말에 나의 짜증 섞인 말들이 아이에게 상처로 남았을까 마음이 쓰라렸다. 아이는 자신이 뭔가 잘못한 것처럼 작아져 있었고, 그 모습이 더 안타까웠다.
2주 뒤 정밀 시력 검사가 진행되었다. 동공을 확장하는 안약을 세 번 넣고 다시 검사를 했지만, 결과는 같았다. 0.2. 근시, 난시, 그리고 약간의 사시까지 있었다. 의사는 안경 착용이 시력 보정은 물론, 사시 교정에도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병원을 나와, 내 안경을 맞췄던 동네 안경점으로 향했다. 내 마음은 물먹은 솜처럼 무겁고 복잡했다. 안경을 쓰기 싫다던 아이는 안경점에 들어서자마자 다양한 안경테에 시선을 빼앗겼다. 나와 비슷한 색의 테를 고른 아이는 금세 신이 났다. 결국 두 번 압축된 렌즈를 선택하고 우리는 새 안경이 완성되길 기다렸다.
10분 뒤, 아이는 새 안경을 썼다. 입가에 환한 웃음이 번졌다. 밝은 세상이 다시 아이의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안경사 선생님은 사용 시 주의사항을 차분히 설명했다. 나는 그 말 하나하나에 귀를 기울였다.
아이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엄마, 나도 엄마처럼 안경을 끼네.”
아이의 말은 공감이었지만, 그 공감이 마냥 반갑진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받아들여야 했다. 현실은 변하지 않고, 내 감정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해결책이 필요했다. 그 해결책은 바로 지금부터 시작되는 우리의 새로운 일상일 것이다.
핑크색의 동그란 안경이 아이의 얼굴에 자리 잡았다.
나를 바라보며 웃는 아이의 얼굴에, 미안함과 설렘이 동시에 스친다.
내가 아이에게 건네줄 수 있는 건 더 나은 내일을 위한 관심과 보살핌이다.
안경 너머로 선명한 세상을 보게 된 아이가, 밝은 세상에서 오래도록 행복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