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마다 우리 가족이 자주 찾던 곳은 바닷가였다. 부산의 자랑인 푸른 바다에서 조개를 줍고, 물놀이를 하며 웃음꽃을 피우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아빠, 동생들과 함께 바닷가에서 물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높고 푸른 하늘 아래, 거대한 자연 욕조처럼 펼쳐진 바다엔 사람들이 담겨 있었고, 웃음소리가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그 속에서 어린 나는 수영을 배우지 않았음에도 바다에 머리를 넣었다 뺐다를 반복하며 수영을 흉내 내고 있었다. 하지만 겁이 많던 나는 아빠와 동생들처럼 깊은 곳까지 들어갈 수 없어서 바닷가 입구에서만 머물며 물장난을 쳤다.
그러던 중, 갑작스럽게 발이 닿지 않았다. 당황한 나는 물속으로 가라앉았다가 나오기를 반복하며 필사적으로 손을 허우적댔다. 그 순간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게 머릿속에 그려진다. 아무도 내 곁에 없었다. 누구도 나를 알아채지 못했다. 몇 분이 지났을까, 다행히도 다시 발끝이 바닥에 닿는 감각이 느껴졌다. 온 힘이 빠진 채로 겨우 일어섰다. 물은 내 허벅지까지밖에 오지 않았지만, 그때의 공포는 나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그날 이후, 나는 물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아이를 낳고 나서도 물에 대한 두려움은 여전했다. 나처럼 물이 무서운 아이가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막상 아이가 물놀이를 하려 하면 내 불안이 먼저 앞섰다. 조심하라는 말만 반복해서 외쳤다. 아이에게 물과 친해질 기회조차 충분히 주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아이는 다섯 살이 되도록 물속에 얼굴을 넣는 것조차 어려워했다. 물놀이를 할 때도 늘 튜브 안에서만 놀았다. 엄마와 아빠의 보호 아래 안전한 물장난만이 허용된 전부였다.
초등학교 3학년이 되면 생존수영 수업이 있다. 많은 엄마들이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수영을 배울 수 있도록 유치원부터 수영 학원에 등록시킨다. 수영을 위해 몇십만 원의 비용을 투자하며 준비한다. 우리도 더 늦기 전에 시작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2년째 새벽 수영을 다니는 남편에게 아이를 맡겼다. 아이는 아빠를 따라 주말마다 기본적인 발차기를 배웠다. 하지만 아이는 물에 얼굴을 넣는 것이 두려워 숨 쉬는 법조차 배우기 어려워했다. 결국 아이는 거부했고, 나는 더 이상 두려움을 강요할 수 없었다. 그렇게 수영은 다시 미뤄졌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다니는 수영장에서 여름방학 동안 어린이 특강을 연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아이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아빠가 다니는 수영장에서 여름방학 특강을 한다는데, 이번 기회에 수영 배워볼래?” 아이는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응, 한 번 배워보고 싶어.”
아이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 얼른 특강 신청을 했다. 첫 수업 날, 나는 일일권을 끊고 아이와 함께 수영장에 들어갔다. 아이는 선생님의 수업을 들으며 서서히 물과 가까워졌다. 하지만 물속에 얼굴을 넣고 호흡하는 연습을 할 때가 되자 걱정이 앞섰다.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아이를 지켜보던 중, 어느 순간 아이가 물속에서 얼굴을 넣고 숨을 들이쉬는 모습을 보았다. 그 순간, 나는 물속에서 몰래 박수를 쳤다. 물이 무섭다고 말하던 아이가 드디어 그 벽을 넘은 것이다. 이후 아이는 수영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잠수도 시도하며 물속에서 자유롭게 움직였다. 여름 특강이 끝나는 날, 아이는 말했다.
“엄마, 나 학기 중에도 계속 수영 배우고 싶어.” 아이의 도전이 기특했다. 남편은 수영 수업 자리를 얻기 위해 3일 동안 새벽마다 컴퓨터 앞에 앉아 접속을 시도했다. 결국 9월부터 아이는 주 5일 정규 수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특강은 유아용 얕은 풀에서 진행되었기에 발이 닿았지만, 정규 수업은 깊이가 1.2미터에서 1.4미터에 이르렀다. 아이가 무서워하지 않을까 걱정되어 처음 몇 주간은 나도 함께 자유 수영을 하며 곁에 머물렀다. 그러면서도 아이의 수업을 멀리서 지켜보며 나의 불안을 달랬다. 그렇게 우리는 3개월간 함께 수영장을 다녔다. 그리고 어느 날, 아이 혼자 수영장으로 걸어 들어갔다. 나의 불안은 이제 내 몫으로 남겨 두기로 했다.
수영을 시작한 지 1년이 되는 날, 아이는 중급반으로 올라갔다. 중급반 첫날, 반 아이들과 순서를 정하기 위한 수영에서 우리 아이는 25명 중 3등을 기록했다. 수영이 무섭다던 아이가 물속을 자유롭게 누비는 모습을 보며, 나도 다시 한번 물과의 관계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아이의 수영은 단순한 기술 습득이 아니었다. 그것은 두려움을 극복해 낸 여정이자, 그 두려움을 함께 건너는 가족의 이야기였다. 아이의 작은 용기는 엄마의 불안을 벗어나, 결국 물은 더 이상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도전의 공간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물과 조금씩 가까워졌고, 그 안에서 서로를 다시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