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너머의 진짜 독서

by 고니비니SN

아빠는 어릴 적 꿈이 많은 아이였다. 운동에 재능이 있었고, 중학교 시절 축구부에서 스카우트 제의도 받았다. 하지만 세상은 그의 재능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세 살 되던 해, 술로 하루를 버티던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났고, 홀로 삼 남매를 키워야 했던 할머니의 막내아들은 그렇게 자신의 꿈보다 가족의 생계를 선택해야 했다.


아빠는 늘 이야기했다. 공부를 잘했지만, 가난해서 할 수 없었다고.

술을 마신 날이면 어김없이 “나는 공부하고 싶어도 못했다. 내가 도둑질을 해서라도 시켜줄 테니 너는 공부해라”라며 눈물 섞인 말을 꺼냈다.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아빠의 울부짖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나에게 고스란히 전해지는 감정의 무게는 어린 마음에도 버거웠다.



아빠에게 공부는 단순한 교육이 아니라 한이었다. 나는 그 한을 풀어줘야 할 의무처럼 느꼈다. 시험 점수에 따라 아빠의 표정이 달라지는 것을 보며, 점점 공부에 집착하게 되었다. 잘해야 한다는 강박, 그래야만 사랑받을 수 있을 것 같은 불안이 나를 지배했다.



하지만 집안은 공부를 뒷받침해 줄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책이라곤 교과서뿐이었고, 동화책조차 없는 집에서 나는 자습서와 문제집으로 공부했다. 아빠는 “교과서를 열 번 읽어라”라고 했고, 나는 그 말이 공부의 전부라 믿었다. 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단지 성적을 올리기 위한 수단이었다.



중학교 1학년, 학원을 그만두며 성적은 수직으로 추락했고, 중3 담임선생님은 “이러다 인문계도 못 간다”라고 말했다. 인문계 고등학교는 반드시 가야 한다던 아빠의 말이 떠오르며, 나는 다시 무거운 짐을 짊어졌다. 하지만 무너진 공부에 구멍을 메우긴 어려웠다. 점점 설명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자꾸만 감기는 눈꺼풀은 내 의지와 반대로 흘러갔다.



고등학교 3년은 지옥이었다. 성적순으로 줄 세우는 교실에서 나는 점점 작아졌고, 공부를 잘하고 싶은 마음과 달리, 잘하는 방법을 몰랐다. 결국 대학 입시에 실패했고, 아빠의 꿈도, 나의 자존심도 동시에 무너졌다. 그 죄책감은 나를 스스로 감옥에 가두었다. ‘실패자’라는 낙인을 찍고 시작한 대학생활은 공부도, 놀이도 아닌 어정쩡한 하루들의 연속이었다. 불안은 언제나 용기보다 앞섰고, 나는 평범함을 선택하며 점점 나를 잃어갔다.


그런 나에게 전환점이 찾아온 건 아이를 낳고 육아에 지쳐 있던 어느 날이었다. 너무 힘들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펼친 한 권의 책은 내가 몰랐던 세상을 보여주었다. 교과서 밖의 책은 처음이었다. 그 책은 내 감정을 이해해 주고, 삶의 해답을 건넸다. 처음으로 책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어릴 적, 책은 성적을 위한 도구였지만, 이제는 삶을 위한 친구가 되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진짜 공부는 성적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힘을 기르는 것임을. 내가 책을 통해 위로받았듯, 나의 아이도 책을 통해 삶의 방향을 찾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집 근처 도서관으로 달려갔다. 육아서를 읽고,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고, 나 자신을 다독이기 시작했다. 책이라곤 만화책도 싫어하던 내가 이제는 책 속 세상에서 행복을 꿈꾼다.



교과서만이 전부였던 시절을 지나, 이제 나는 진짜 ‘책’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 살아가는 법을 알려주고, 상처를 위로해 주며, 삶에 용기를 주는 존재였다. 그리고 나는 그 깨달음을,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다. 누군가의 한을 대신 짊어진 공부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배움으로써의 독서를 선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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