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간의 피 섞인 설사는, 결국 우리를 대학병원까지 가서야 멈춰 세웠다. 그 시간 동안, 우리 가족은 아이를 중심으로 단단히 묶였다.
‘건강’이라는 단어의 진짜 무게를 알게 되었고, 아이의 존재가 얼마나 귀한지를 다시금 되새기게 되었다. 나는 전보다 더 단단하게 아이를 밀착 케어 했고, 함께하는 하루하루를 소중히 쌓았다. 쿠키를 만들고, 그림을 그리고, 레고로 상상의 세계를 함께 만들어 가는 시간은 그 자체로 치유였고 감사였다.
하지만 그렇게 쌓아 올린 평화는 내 몸의 비명 앞에서 서서히 무너졌다. 허리 통증, 치질 재발, 잠 못 드는 밤들로 고통은 몸을 넘어 마음마저 갉아먹었다. 나는 점점 지쳐갔고, 그 피로는 가장 사랑하는 아이에게 독이 되어 꽂혔다.
“이제 혼자서 좀 놀아봐. 제발 엄마도 좀 쉬자.”
그 말은 분명 나의 외침이었지만, 아이에겐 날카로운 화살이었다. 의기소침해진 아이의 뒷모습에 자괴감이 밀려왔다. 그토록 지키고 싶었던 아이였는데, 나의 통증 앞에 쉽게 무너졌다.
무엇보다 마음을 찢는 건, 나를 바라보는 아이의 눈빛이었다.
아이에게 엄마는 세상의 전부였다. 엄마의 웃음을 보며 따라 웃고, 엄마의 울음에 함께 우는 아이의 우주는 바로 나였다. 그런 우주가 점점 변해가고 있다는 걸 아이도 느낀 듯했다. 내 얼굴에 드리운 그림자가 아이의 얼굴에도 서서히 내려앉기 시작했다. 웃던 아이가 조용해지고, 조금씩 나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아이에 대한 억울한 감정들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왜 우리 아이만 남들 그냥 들어간다는 어린이집에 다니지도 못할까. 힘들게 들어간 유치원을 3개월만 다니고 휴학해야 했을까. 왜 이렇게 예민해서 돌이 지나도록 2시간에 한 번씩 깼을까. 과거의 사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로 나에게로 다가왔다. 왜 나만 힘들어야 할까. 나는 내 고통의 이유를 아이에게 투사하고 있었다. 그런 나를 친정엄마는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냉정하게 말했다.
“너는 몇 살인데 아직도 아이랑 싸우니?”
그 말은 단순한 핀잔이 아니었다. 엄마의 말로 내 안에 억눌렸던 감정의 댐이 무너졌다.
“나도 미치겠어. 정말 닮기 싫었던 아빠의 모습인데, 나도 내 맘대로 안 돼. 배운 게 이거밖에 없잖아…”
그 말이 내 입에서 튀어나오는 순간, 나는 비로소 내가 왜 이렇게 버거웠는지 알게 되었다. 아이를 향한 감정의 뿌리는, 결국 나 자신이었다.
아이의 조금의 짜증에도 나의 감정이 건드려졌다. 반복되는 잔소리에 내가 지쳐 아이에게 소리쳤다. 놀란 아이는 토끼처럼 커다란 눈에서 눈물을 쏟아냈다. 아이의 눈물을 보며 이내 후회의 감정이 밀려들어 아이를 안고 연신 사과를 반복했다. 그 순간 스쳐 지나가는 한 장면이 떠올랐다.
어릴 적, 나도 똑같이 울고 있었다. 아빠의 버럭 소리에 움츠러든 채 방구석에 주저앉아 있었고, 말 대신 눈물로 감정을 표현했던 그때의 나. 무서워서, 억울해서, 하지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그냥 우는 수밖에 없었던 그 어린 날. 지금의 내 아이가 딱 그 모습이었다.
‘나는 절대 그런 부모가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는데, 지금 내 모습은 누구보다 아빠를 닮아 있었다. 더는 숨길 수 없었다. 나는 아이 앞에서 종종 무너졌고, 그 무너짐은 내 상처와 꼭 닮아 있었다. 아이가 울 때마다, 사실 내면의 어린 내가 함께 울고 있었다.
그날 밤, 나는 내 감정을 이해할 사람이 아무도 없단 걸 알았다. 누구도 내 폭주를 막아주지 않았다. 막을 수도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핸드폰 화면에 떠오른 빨간색 책 한 권이 나를 멈춰 세웠다. 하은맘의 『십팔년 책육아』. 강렬한 제목과 빨간 커버는 이상하게도 내 마음을 붙잡았다. 책을 사자마자 엄마에게 아이를 맡기고 독서를 시작했다. 결혼 후, 처음으로 나를 위한 독서였다. 책 속 하은맘은 마치 친정 언니 같았다. 나를 쓰다듬다가도 따귀를 날리는 듯한, 팩트 폭행이 오가는 문장들 사이에서 내 눈이 한 구절에 멈췄다.
“애 바꿀 생각 말고, 너부터 바꿔.”
이 말이 뇌리에 박혔다. 내가 편해지기 위해, 내가 덜 힘들기 위해 그동안 아이를 바꾸고 싶어서 안달이었다. 남들에게 육아 난이도 최하의 아이를 엄마인 나는 감당할 준비가 되지 않았던 것이었다.
아이 덕분에 다시 손에 든 책이 내 인생을 바꿀 줄 꿈에도 몰랐다. 육아는 나를 다시 태어나게 하는 시간이었다. 나를 들여다보게 하고, 치유하게 하고, 조금씩 자라게 한다. 아이 덕분에 나는 오늘도 배운다. 진짜 사랑이란, 바꾸려 하지 않는 용기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