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내시경을 받기 위해 5살 아이와 함께 병원 검사실로 향했다. 수면 마취 전까지는 보호자가 동행할 수 있다는 말에, 아이의 손을 꼭 잡고 검사실 문을 열었다. 아이는 아무 말 없이 내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 눈동자에 작고 여린 두려움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 눈을 마주하는 순간,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내 눈이 아이를 보며 울고 있었다.
검사실은 생각보다 차가웠고 건조했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기계음, 바쁘게 움직이는 간호사들, 낯선 풍경 속에서 아이의 얼굴은 점점 공포로 물들어 갔다. 엄마 손을 꼭 잡은 채 아무 말 없던 아이가 작은 목소리로 “엄마…”라고 불렀다. 그 한마디에 나도 모르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빈아, 엄마가 옆에 있을 거야. 그러니 잠시만 자고 일어나자. 금방 끝날 거야.”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담당 의사 선생님이 들어오셨고, 수면 마취가 시작되었다. 마취약이 들어가자, 아이는 스르르 눈을 감았다. 나는 터져 나올 것 같은 울음을 눌러 삼키며 검사실 밖으로 나왔다. 복도에 있던 남편을 보자마자 참아왔던 눈물이 쏟아졌다. 남편은 묵묵히 내 어깨를 감싸며 “괜찮다”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정신을 다잡고 대학병원에 근무하는 사촌 형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장내시경 검사가 진행 중이라고 전하며 또 한 번 울음을 터뜨렸다. 형님은 “걱정하지 마. 의사 선생님이 잘 해주실 거야”라며 나를 위로해 주었다. 검사 시간이 30분 정도 걸린다는 말에 통화는 길어졌다.
그때 남편이 허겁지겁 달려와 말했다.
“여보, 비니가 중간에 깼어. 울면서 엄마 찾고 있어. 어서 들어가 봐.”
정신없이 검사실로 달려갔다. 검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마취 상태에서 소변을 보며 아이가 깨어난 것이다. 겁에 질린 채 울고 있는 아이를 품에 안았다. 아이는 기저귀를 찬 채 옷이 젖어 있었고, 간호사 선생님이 갈아입혀 주셨다고 했다. 엄마를 본 아이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이동 침대에 누워 병실로 돌아갔다.
검사가 끝나고, 아이는 “배고파…”라고 말했다. 공복 상태에서 물만 마셨던 아이는 지쳐 있었고, 힘없이 축 늘어졌다.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이 무거웠다. 하루 휴가를 냈던 남편은 내 허리 통증이 심해진 걸 알고는 하루를 더 내어 함께 있어 주었다. 그 마음이 참 고마웠다.
잠시 후, 의사 선생님이 병실에 오셨다. 검사 결과 대장에 염증이 있었다고 했다. 항생제 부작용으로 추정된다며, 퇴원해도 된다고 하셨다. 다음날 외래 진료에서는 약도 먹지 않아도 된다는 말과 함께 며칠간 설사가 계속될 수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예약을 잡고 병원을 나서던 길, 아이가 나지막이 말했다.
“엄마, 이 병원 진짜 크다. 나도 커서 간호사 선생님이 되고 싶어.”
뜻밖의 말에 이유를 묻자, 아이는 또박또박 대답했다.
“의사 선생님은 내가 아픈데도 안 오고, 간호사 선생님은 내가 아프면 제일 먼저 달려오잖아. 나도 그렇게 아픈 사람들한테 달려가고 싶어.”
그 말을 듣는 순간, 눈시울이 다시 뜨거워졌다. 몸의 치료도 중요하지만, 마음의 위로가 더 클 수 있다는 걸 그제야 진심으로 깨달았다. 이 정도에서 끝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한 달 내내 혈변과 사투를 벌이며 조마조마했던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결국 아이는 유치원 최초로 1학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휴학을 하게 되었다. 유치원에서도 처음 있는 일이라며 이리저리 방법을 알아보며 처리해 주셨다. 그렇게 아이의 첫 사회생활은 3개월 만에 막을 내렸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하루 종일 함께 지내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한 달간의 아픔은 우리 가족 모두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도 아이는 자신만의 꿈을 품었다. 아픈 이를 향해 가장 먼저 손을 내미는 사람. 아이가 바라는 그 따뜻한 사람이 되기를, 나는 진심으로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