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며 떼를 쓰면서도 조금씩 적응해 가는 아이를 보며,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아이보다 내가 더 약해질 수는 없었다. 외벌이인 우리에게 맞벌이 부부에게 주어진 방과 후 수업의 기회는 고마웠다. 추첨제였는데도 우리는 당첨되었고, 아이의 하원 시간은 오후 4시로 늦춰졌다. 공립 유치원에 이어 방과 후 수업까지, 연이은 행운이었다. 그러나 오후 4시까지 이어진 긴 하루는 어린아이에겐 버거웠던 모양이다. 적응기를 따로 두지 않고 엄마와 떨어지는 시간이 하루아침에 길어지자, 아이는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나갈 즈음, 아이가 열이 났다. 어릴 적부터 감기로 자주 열이 나 병원을 드나들었던 터라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 여겼다. 병원에서 링거를 맞고 약을 지어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는 40도까지 오른 고열에도 불구하고 내 손을 꼭 잡고 싱글벙글 웃었다. 엄마와 함께 있는 시간이 좋아서일까. 하지만 아이의 손과 발은 얼음처럼 차가웠고, 그 온도는 고스란히 내 마음마저 차갑게 얼게 했다.
3일이 지나도 열은 가시지 않았다. 병원에서 권유한 피검사 결과, 의사는 낯선 말을 꺼냈다.
“염증 수치가 높습니다. 가와사키병이 의심됩니다. 대학병원으로 가보세요.”
순간, 뇌가 멈췄다. 병명은 낯설었고, 상황은 갑작스러웠다. 정신없이 남편에게 연락하고, 이사 전 다녔던 입원실이 있는 소아청소년과에 연락했지만, 담당 선생님은 퇴사하신 상태였다. 간절한 마음에 선생님을 찾아 달라 부탁했지만, 개인정보라 알려 줄 수가 없다고 했다. 나는 남편에게 꼭 선생님을 찾아 달라고 말했다. 남편의 수소문 끝에 감사하게도 근처 병원에서 진료 중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는 곧장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익숙한 얼굴, 오래도록 아이를 봐주시던 선생님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아이를 살폈다. 열이 잡히지 않자 다시 항생제 링거를 권유했고, 이미 며칠째 주사를 맞은 아이는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두 명의 간호사와 내가 아이를 붙잡고서야 겨우 링거를 놓을 수 있었다. 허리가 아픈 나를 대신해 친정엄마는 매일 아이를 업고 병원으로 함께 동행했다. 먹은 게 고스란히 설사로 빠져나가자, 열이 나도 장난감을 갖고 놀았던 아이는 조금씩 처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3일간 치료를 받은 뒤, 다행히 아이의 열은 내렸다. 이제 끝났구나 싶었지만, 진짜 고통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마지막 링거를 맞은 날, 아이는 배가 아프다고 했다. 그리고 설사를 시작했다. 피가 섞인 설사였다. 처음엔 항생제 부작용이라 여겼다. 그러나 설사는 멈추지 않았고, 혈변으로 이어졌다. 하루에도 수십 번 화장실을 드나들며 아이는 다시 기저귀를 찼다. 새벽에도, 한밤중에도, 아이는 아프다고 울었고, 나는 그 작고 여린 몸이 더는 버틸 수 없을까 봐 겁이 났다. 한 달이 넘도록 계속된 설사 끝에 우리는 입원실이 있는 병원을 찾았다. 아이의 상태를 들은 의사는 다소 단호하게 말했다.
“왜 지금까지 대학병원에 가지 않으셨어요?”
나는 설명했다. 믿고 따르던 의사 선생님을 어렵게 다시 만나 열을 잡았고, 처음엔 설사가 심각한 줄 몰랐다고. 그런데 계속되는 출혈과 아이의 고통이 더는 견딜 수 없게 되어 입원을 결심했다고.
그러나 병원에서는 다시 대학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필요한 검사 장비가 없다는 이유였다. 우리는 다시 짐을 챙겨 부산대학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긴급한 상황이었기에 아이와 나만 들어갔고, 다시 링거가 꽂혔다. 하루 종일 굶은 아이에게 죽이라도 먹이고 싶어 남편에게 부탁했다. 아이는 나에게서 잠시도 눈을 떼지 않고 죽을 받아 먹엇다. 검사 결과가 나온 뒤 의사는 말했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 대장내시경이 필요합니다. 지금부터 장을 비워야 합니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나는 절망했다. 그제야 힘들 죽을 먹인 것이 후회되었다.
대장내시경을 위해 아이는 총 3리터의 관장액을 마셔야 했다. 아직도 설사가 멈추지 않은 아이에게는 너무 과한 양이었다. 억지로 1리터, 또 1리터. 새벽까지 이어진 강요와 설득 끝에 아이는 탈진했고, 마지막 1리터를 남긴 채 잠이 들었다. 그런데 간호사가 다시 깨우며 말했다.
“다 못 마시면 목으로 관을 연결해서 먹일 수밖에 없습니다.”
꿈인지, 악몽인지 혼란스러웠다. 억지로 아이를 깨우고, 먹이려 했지만 아이는 울고 떼를 쓰며 괴로워했다.모든 잠든 새벽 결국 복도로 데리고 나가 마지막 남은 약을 겨우 먹이던 중, 아이가 배가 아프다며 울부짖었다.
“조금만 기다려보자”라는 남편의 말에 잠시 참았지만, 곧 아이의 눈이 돌아가고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곧바로 간호사를 불렀다. 담당 의사가 나타났고, 주사 치료를 하자 아이는 신기하게도 평온을 되찾았다. 그리고 검사실로 이동했다.
그날 나는 마음속으로 외쳤다.
그 누구도 이 작은 아이가 얼마나 긴 시간을, 얼마나 많은 아픔을 버티며 견뎌냈는지 모른다.
잦은 설사로 엉덩이는 이미 다 헐었고, 설사를 할 때마다 엉덩이가 따갑다고 울부짖었다. 그런 아이를 보며 눈물이 났다. 나에게 다가와 눈물을 닦아주는 아이를 보며 이 작고 여린 몸 안에, 내가 감히 따라가지 못할 단단한 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직 끝나지 않은 대학병원에서의 긴 시간이 우리를 긴장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