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의 브런치처럼 따뜻한 우정

by 고니비니SN

이사 온 아파트는 낯설었지만, 그곳에 고등학교 친구가 먼저 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이 놓였다. 나보다 세 달 먼저 이사 온 친구 덕분에 새로운 동네에 빨리 적응할 수 있었다. 일주일 뒤 친구가 아이를 낳으면서 우리는 엄마라는 공통분모가 생겼다.



우리 딸과 친구의 딸은 26개월 차이지만, 함께 자라며 자매처럼 지냈다. 서로의 집을 오가며 남편들끼리도 인사를 나누었다. 아이들의 울음과 웃음소리가 집안 가득 울려 퍼지는 날이면 정신없는 하루가 때론 버겁기도 하지만, 건강하게 자라주는 아이들 덕분에 평온한 날들을 보낼 수 있었다.



친구는 언제나 먹거리가 생기면 먼저 나눠주었고, 내가 말하지 않아도 힘들 때 손을 내밀어 주었다. 육아 방식이 비슷한 우리는 금세 가까워졌고, 서로의 아픔과 힘듦을 나누며 함께 울고 웃었다. 아이를 낳고 몸이 안 좋아지면서 자연스레 멀어진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래서인지 곁에 남아 준 친구가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같은 아파트 놀이터에서 아이들을 놀리고, 종종 저녁도 함께 먹었다. 유치원 등하원차를 거부한 딸아이 덕분에 나는 유모차를 끌고 매일 20분 거리를 오갔다. 장마철이면 우비를 입혀도 옷과 신발이 흠뻑 젖었다. 면허만 있고 차는 없던 나는 아이의 손을 잡고 걷는 수밖에 없었다. 태풍 예보가 있었던 그 아침. 친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세나야, 오늘 비바람 심하네. 내가 은지 보내고 데려다줄게. 전화하면 내려와.”

그 말 한마디가 난로처럼 마음을 따뜻하게 데웠다. 아이는 이모차를 타고 뽀송뽀송한 모습으로 유치원에 도착했고, 친구는 나를 태우고 브런치집으로 향했다.

“비도 오고, 기분도 꿀꿀하니까 우리 기분전환하자. 내가 맛있는 데 알아봤어.”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고, 맛 집 정보를 꿰고 있는 친구 덕분에 마음속 답답한 감정이 조금은 풀렸다. 출산 이후 치질과 허리 통증으로 힘든 나를 위해 친구는 아이 하원을 도와주기도 했다. 코로나로 친정 엄마들의 방문이 어려워졌을 때, 우리는 서로에게 더없이 필요한 존재가 되어갔다.



우정이라는 이름 안에서, 우리는 가족보다 더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외동인 딸에게 친구의 딸 은지는 친동생 같은 존재였다. 함께 가족 여행도 다니며 추억을 쌓았고, 자연스럽게 삶의 많은 순간을 함께했다.

어느 날부터 시작된 독서는 ‘책육아’로 이어졌고, 중고책을 모아 아이에게 읽어주는 소박한 일상이 반복되었다. 우리는 서로 책을 교환해 가며 아이들에게 더 많은 세상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어릴 적 친구는 즐거움을 함께하는 존재였다. 아픔을 나누기엔 어색하고, 공감받기 어려운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결혼하고 출산하면서부터 달라졌다. 같은 시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서로의 경험에 진심으로 공감했고, 때론 가족보다 더 깊은 위로가 되었다.



친구란 존재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 건, 아마도 이 모든 시간이 쌓인 덕분이다. 비 오는 날 친구가 건넨 전화 한 통처럼 마음이 젖기 전 따뜻하게 감싸주는 그런 존재가 내 옆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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