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단거리 달리기에 강한 사람이었다. 빠르게 몰입하고, 빠르게 결과를 보는 일에 익숙했다. 그래서일까. 육아라는 장거리 레이스 앞에서 나는 처음부터 흔들렸다.
‘엄마’라는 이름표를 달면, 없던 인내심도, 지혜도 자연스레 생겨날 줄 알았다. 하지만 아이보다 더 아이 같은 내 모습에 실망하고, 그런 나를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에 주눅이 들었다.
과연 나는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이 질문은 하루에도 수십 번 나를 따라다녔다. 아이는 하루 24시간을 멈추지 않고 달렸고, 육아 역시 멈출 수 없는 일이었다. 마치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에 홀로 갇혀 있는 것 같았다. 간절히 혼자이고 싶었다. 누구의 손도 잡지 않고, 아무 책임도 지지 않고, 그저 나로 존재하고 싶었다. 남편과 엄마가 “잠깐 나갔다 와”라고 말해도, 내 손이 닿지 않으면 아이가 불안해할까 두려워 선뜻 나서지 못했다. 아이가 아니라, 사실은 내가 그 불안을 견딜 수 없었다.
‘엄마’라는 무게에 눌려 압사당할 것 같은 날들이 계속되었다. 그때 나는 책을 꺼냈다. 책 속 세상이, 그나마 숨 쉴 수 있는 곳이었다. 어린이집도 가지 못한 아이와 하루 종일 몸을 부딪치며 보내는 날들 속에서 책을 읽어주는 시간이 우리 둘 모두에게 가장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책과 목소리만 있으면, 아이는 내 옆에 조용히 붙어 앉아 있었다. 움직이지 않고, 나를 온전히 바라보며 귀 기울이는 그 시간은 내게도 휴식이었다. 한 권이 열 권이 되고, 어느새 스무 권이 되었다.
하지만 반복되는 책 읽기에 목이 갈라지고, 같은 책을 수도 없이 읽어달라는 아이의 요청에 나의 체력은 금세 바닥났다. 결국 어느 날, “책 읽어줘”라는 아이의 말에 나도 모르게 짜증을 냈다.
이게 아닌데…
책육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책도, 아이의 집중력도 아닌, ‘엄마의 체력’이라는 사실을 그제야 알았다. 음원을 틀어주면 아이는 금세 정지 버튼을 눌렀고, 나는 다시 입을 열어 읽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어느 날, 퇴근한 남편에게 부탁했다.
“오늘은 당신이 책 좀 읽어줄래?”
남편은 잠시 망설이다가 이렇게 말했다.
“그냥 읽어주기만 하면 되는 거지? 나는 당신처럼 구연동화까지는 못하겠어.”
며칠은 성실히 읽어주었다. 그러나 이내 자연스럽게 멈췄다. 못내 서운했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아이에게 더 많은 책을 읽어주고 싶다는 욕심은 남편을 점점 다그쳤다.
“조금만 더 읽어줘”, “어제는 왜 안 했어?” 그런 말들이 날카롭게 쏟아졌다.
그런데도 남편은 단 한 번도 짜증을 내지 않았다.
화도 내지 않았고, 무심하게 외면하지도 않았다. 조용히 책을 들고 아이 옆에 앉아 다시 읽어주었다. 그 모습이 고마우면서도 미안했다.
수십 번, 수백 번의 반복 끝에 남편은 점점 아이와의 잠자리 독서에 익숙해졌다. 아이는 잠들기 전, 거실 책장에서 원하는 책을 골라 당당히 아빠에게 내밀었다. 아빠 품 안에서 이야기를 들으며 천천히 눈을 감던 아이의 모습은 평화로웠다.
하루는 남편이 바빠 책을 깜빡한 날이 있었는데, 아이가 먼저 책을 들고 다가가 “책 읽어줘”라고 말했다. 그 장면을 멀찍이서 지켜보던 나는 습관의 위대함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육아는 모두 내 책임이라고 생각했던 시간들, 불안이 나를 사로잡아 누구도 믿지 못하게 만들었던 날들. 결국 그 무게에 짓눌려 스스로를 몰아붙여야 했던, 그 시간들이 이제 와 돌아보니 너무나 어리숙했다.
내가 만든 외로움 속에서 애써 버티던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다행히, 나는 포기하지 않았고, 남편은 나를 탓하지 않았다.
꾸준한 실천과 반복 속에서 아이와 남편은 잠자리 독서를 통해 하루를 정화했고, 아이는 책 속 세상에서 행복을 그리며 꿈나라로 빠져들었다. 그런 남편이 정말 고마웠다. 내가 다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나 혼자 모든 걸 짊어질 필요는 없다는 걸 남편은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스스로에게 수없이 물었던 물음들.
“나는 잘하고 있는 걸까?”,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걸까?”
그 질문들에 바로 답을 얻진 못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견디고, 다시 돌아보고, 또 실천했던 그 모든 시간들이 결국 나에게 답을 주었다.
육아는 아이만 성장시키지 않았다. 아이의 성장이 곧 나의 성장의 기록이었고, 우리 가족이 함께 만들어가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오늘도, 나는 조용히 책 한 권을 들고 아이 옆에 앉는다. 이 시간이, 이 이야기가 우리를 조금 더 단단하게 이어주는 중이라는 걸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육아는 여전히 끝나지 않은 장거리 레이스다. 하지만 이제는 숨 고르는 법을 배웠고, 함께 달리는 방법도 알게 되었다. 남편과 함께하는 육아는 우리 가족을 더욱 단단히 이어주고 있었다. 아이가 자라는 시간 속에서, 나도 함께 자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