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앞에서 선택을 배우다

by 고니비니SN

“자기야, 우리 TV 없이 살아볼까?”

아이 출산을 앞둔 어느 날, 남편이 조심스럽게 건넨 말이었다. 순간 귀를 의심했다. TV는 내 일상의 일부였다. 어릴 적부터 우리 집 거실엔 늘 TV가 켜져 있었고, 아빠는 거실에서 TV를 벗 삼아 지냈다. 나는 드라마를 사랑했고, 드라마가 주는 위로와 재미는 내 삶의 활력소였다. 그런 나에게 ‘TV 없는 삶’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었다.


“안 돼. 난 TV 없인 못 살아. 스트레스도 풀어야 하고, 그건 나의 일상이야.”

나의 강한 반응에도 남편은 차분하게 말했다.

“아이에게 TV 없는 환경이 더 좋을 것 같아서 말해본 거야. 너무 흥분하지 말고 천천히 한번 생각해 봐.”

그 말에 억지로 고개를 끄덕였지만, TV 없는 거실은 여전히 낯설고 불안했다.


그러나 아이가 태어난 후, 상황은 달라졌다. 하루 종일 육아에 쫓기다 보니 TV를 켤 겨를조차 없었다. 대신 손에 쥔 스마트폰이 TV를 대신했다. 그렇게 TV는 자연스럽게 꺼졌고, 전셋집에 무상 옵션으로 있던 TV도 결국 켜지지 않았다. 어느덧 우리 가족은 TV 없는 삶에 익숙해져 갔다. 그리고 아이도 자연스럽게 그 환경 속에서 자라났다.


시간이 흐르고 우리는 집을 구입하기로 결심했다. 계약도 하기 전에 먼저 가전제품부터 구경하러 다녔다. 풀옵션 전셋집 덕에 밥솥과 전자레인지 외에는 우리가 소유한 가전이 없었다.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소파 등 필요한 것이 많았다. 아이를 안고 전자제품 설명을 들으며, 할인 혜택에 끌려 결국 집보다 먼저 가전을 계약하게 됐다. 그 목록에 TV는 없었다. 그만큼 우리에게 TV 없는 생활은 자연스러워져 있었다.


하지만 막상 새 집에 입주하려 보니, 이미 천장형 에어컨이 설치돼 있었다. 우리가 산 에어컨은 실외기 공간이 없어 사용할 수 없었고, 결국 다른 제품으로 교환해야 했다. 어떤 물건을 고를지 고민하던 중, 남편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자기야, 우리 TV 사자.”

순간, 내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TV 없애자던 사람이 누구더라? 이젠 아이도 4살이고 우리도 이 삶에 익숙해졌는데, 갑자기 왜?”

남편은 웃으며 답했다.


“아이가 잠든 후 영화도 보면서 우리도 좀 쉬자. 그리고 영어 영상도 핸드폰보다 큰 화면에 연결해서 보여주면 아이 눈에도 더 좋을 것 같아. 매일 보자는 게 아니고, 필요할 때 선택적으로 사용하는 거지.”

남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3년 동안 TV 없는 삶을 충분히 경험해 봤고, 이제는 우리가 TV를 조절하며 사용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게 TV는 다시 우리 집 거실에 나타났다. 남편은 직접 고른 TV 앞에서 함박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TV는 거실의 장식품처럼 조용히 자리를 지켰다. 눈앞에 있지만 안 보이는, 마치 신기한 마술 같았다. 리모컨을 누르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러다 아이가 7살 무렵, 영어 영상 교육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작은 스마트폰 화면 대신 큰 화면으로 보여주기로 하고 TV에 연결했다. 아이는 커다란 화면에서 움직이는 영상에 눈을 떼지 못했다. 하지만 아이는 엄마와 약속한 시간을 지켰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결국 아이와 함께 영상 콘텐츠를 활용하는 것도, 우리 선택에 달린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함께 보면서 이야기 나누고, 균형 잡힌 사용 습관을 만들어간다면 충분히 긍정적인 도구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TV 없는 삶은 우리에게 ‘선택하는 삶’을 가르쳐 주었다. 다시 TV를 들였지만, 예전처럼 그것에 이끌려 살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는 TV를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필요한 때에만 사용하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그 변화 속에서, 우리 가족은 조금 더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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