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살. 한차례 풍파를 겪은 아이는 3개월의 휴학을 거쳐 2학기부터 다시 등원을 시작했다. 처음엔 낯설고 힘들어했지만, 엄마와 아빠의 기다림과 믿음 아래에서 아이는 조금씩 적응해 나갔다. 곧 6살이 되는 겨울, 예고 없이 코로나가 터졌다. 처음엔 남의 나라 일이라 여겼지만, 전 세계를 덮친 팬데믹은 결국 아이의 유치원도 강제로 멈춰 세웠다.
그때부터 모든 것이 무너졌다.
코로나로 인해 외부 도움도 끊겼다. 평소 몸이 좋지 않은 나를 위해 손과 발이 되어주던 친정엄마의 발길도 멈췄다. 단지 육아를 돕는 것 이상의 존재였던 엄마 없이 시작된 독박육아는 감당할 수 없는 무게로 다가왔다. 건강을 회복하지 못한 몸, 허리디스크로 일어나는 것도 힘겨운 아침이었다. 그런데 아이는 날마다 아침 기상을 알리는 닭이 되어 내 몸 위로 기어 올라와 뽀뽀를 퍼붓고 손을 끌어당겼다. 그런 사랑스러운 행동조차 버겁게 느껴지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유치원에 보낸 후 생긴 ‘내 시간’이 사라졌다는 사실이 더 괴로웠다. 하루 종일 이어지는 육아와 가사는 내 안의 괴물을 빠르게 깨웠다. 스킨십을 좋아하던 아이는 눈 뜨자마자 나를 필요로 했지만, 나는 그런 아이의 애정마저 짜증으로 받아들였다.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 아니, 좋은 엄마로 보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엄마표 미술과 만들기, 요리를 준비했다. 온라인에서 ‘좋은 엄마’라 불리는 사람들이 하는 것들을 따라 했다. 색연필을 꺼내 아이와 그림을 그리고, 종이와 풀을 준비해 만들고 붙이면서 아이가 원하는 세상을 알려고 노력했다. 함께 쿠키를 굽고 반죽을 빚으며 아이의 웃는 얼굴 속에서, 나도 좋은 엄마가 된 것만 같았다. 아이가 웃는 순간에만 내 존재가 의미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 웃음 뒤에 남겨진 물감 자국, 종이조각, 밀가루 반죽 자국들은 내 신경을 자극했다. 바닥에 떨어진 조각 하나에도 민감하게 반응했고, 자유롭게 노는 아이에게 자꾸 “조심해”, “거기 놓지 마”, “그만 흘려” 하고 제지했다. 창의성은 자유로운 환경에서 피어난다고들 하지만, 나는 내 기준과 편의를 아이에게 강요하고 있었다. 결국 감정의 화살은 아이에게로 날아갔다.
처음과는 다른 엄마의 모습에 아이는 끝내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그런 아이를 달래기보다, 어지러운 바닥을 치우는 데 집중했다. 엄마의 품이 아닌, 무인도에 홀로 남겨진 아이는 눈물을 흘리며 나를 바라봤다. 그 소리마저 듣기 싫어, 결국 이렇게 말해버렸다.
“너 계속 울면 엄마한테 맞을 줄 알아. 조용히 못 해?”
협박이 만든 고요는 평온이 아니었다. 아이는 조용히 내 옆을 맴돌며 엄마가 다시 자신을 불러주길 기다렸다. 그 마음을 알고 있었지만, 외면했다. 아이보다 더 아이 같던 나는, 종지그릇만큼의 여유도 없었다.
점심이면 남편은 전화를 했다. 아이와 내 안부를 묻는 그의 다정한 말에, 참지 못하고 모든 화를 쏟아냈다. 엄마가 아빠에게 소리를 지르는 모습을 아이는 겁먹은 얼굴로 지켜봤다.
그 순간, 나 자신이 너무도 싫었다.
문득, 오래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나의 어린 시절. 고함과 짜증, 폭력과 비난이 일상이던 집. 엄마는 단 한 번도 학교에 오지 않았고, 비 오는 날 마중 나오는 친구 엄마들을 보며 오지 않을 엄마를 기다리던 날들이 있었다. 나는 엄마가 곁에서 함께 해주길 바랐다. 책 한 권 없는 집에서 공부만 잘하길 바라던 아빠의 기대는 오히려 나를 공부로부터 멀어지게 했다. 그래서 나는 모든 걸 반대로 하기로 마음먹었다.
아이의 등하원을 자처했고, 매일 손을 잡고 유치원을 오갔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빠짐없이 함께했다. 어릴 적 그렇게 갖고 싶었던 책들을 아이에게는 아낌없이 안겨주었다. 한 권이 열 권이 되고, 백 권이 되어 결국 집안은 책으로 도배되었다. 내가 받지 못했던 것을 아이에게 모두 주고 싶었다.
하지만 단 하나, 바뀌지 않은 것이 있었다.
그토록 닮고 싶지 않았던 아빠의 모습을, 나는 복사하듯 그대로 닮아 있었다.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부모는 아이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다. 아무리 좋은 물건을 사주고, 멋진 교육을 시켜도, 내면에 새겨진 상처는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그 과정을 온몸으로 겪었던 내가 바로 그 산증인이었다.
아이보다 더 아이 같았던 나는, 이제야 그 시절의 나를 정면으로 마주한다. 어릴 적 나 역시, 누군가의 품 안에서 안심하고 울 수 있길 바랐던 존재였다는 것을 내 아이를 통해 다시 깨닫는다. 이제는 그 상처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아이의 눈을 먼저 마주하려 한다.
아이가 아닌, 엄마인 내가 먼저 다가가 손을 내밀고,
“미안해. 너를 사랑해.”라고 말해주려 한다.
그리고 그토록 오랫동안 외면해 왔던 내 안의 아이에게도, 처음으로 이렇게 말해본다.
“이제 괜찮아. 너, 정말 잘 견뎌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