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잠잠해지고, 아이가 다시 유치원에 등원하기 시작하면서 나에게 오랜만에 조용한 시간이 주어졌다. 처음에는 어색했다. 늘 아이와 붙어있던 일상이 갑자기 비워지자 허전함과 동시에 나를 감싸던 감정의 널뛰기가 더 심해졌다. 마음을 붙잡기 위해, 나는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렇게 책을 꺼내 들었다.
처음 손에 든 것은 육아서였다. 다른 엄마들의 이야기 속에 내 이야기가 있었다. 책장을 넘길수록 공감이 밀려왔고, 마음은 자주 눈물로 젖었다. 7년 동안 육아와 씨름하며, 스스로를 치유하려 무던히 애써 왔지만 여전히 제자리걸음인 나 자신을 바라보며 깊은 자책에 빠졌다. 책을 읽으며 '왜 나는 변하지 못할까'라는 질문이 쌓여갔다. 점점 후회와 눈물이 늘었고, 나의 말투와 감정이 고스란히 아이에게 대물림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땐, 무너지는 듯했다.
책을 읽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걸 느꼈다. 감정은 글자가 아닌 사람을 통해, 관계를 통해 배워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도서관을 벗어나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부모 교육 강의를 찾아 나섰다. 아픈 몸을 이끌고, 모자를 눌러쓴 채 강의실 제일 뒷자리에 앉았다. 화장기 없는 얼굴로, 기운 없는 눈빛으로 선생님을 바라보며 강의를 들었다. 이제는 나 자신을 바꾸고 싶었다. 한 강의를 시작으로 두 개, 세 개… 점점 듣고 싶은 강의가 늘어났다. 도서관, 평생학습관 사이트를 뒤지며 관심 있는 강의들을 찾아 하나씩 신청해서 들었다.
아이와 부대끼며 나를 잃어버렸던 시간들. 그 시간을 되찾고 싶었다. 아이가 허락한 5시간 동안 강의를 듣고, 집으로 돌아와 가사를 하고, 점심을 먹고, 다시 유치원으로 아이를 데리러 가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변화하고 있었다. 가랑비에 옷 젖듯, 매일 들은 강의들은 어느새 나에게 수료증과 자격증이라는 흔적을 남겨주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소중한 것은 ‘자신감’과 ‘용기’라는 보물이 마음속에 남았다는 사실이다. 그간 움츠러들었던 내 마음 한편에, ‘나도 할 수 있다’는 작은 불빛이 켜지기 시작했다. 작고 사소한 성공의 점들이 모여 선이 되었고, 그 선은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한때는 밑 빠진 독 같았던 내 마음, 아무리 노력해도 채워지지 않을 것 같았던 그 마음이, 꾸준히 듣고 실천한 강의들을 통해 서서히 채워지고 있었다. 내가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조금씩 실감할 수 있었다.
돌아보면, 나는 원래 배움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서울에서 첫 직장을 구했을 때도 주말마다 학원에 다니며 한글, 파워 포인트, 엑셀을 공부하며 자격증을 땄다. 여성가족부에서 주관한 봉사활동에도 참여했다. 부산에 내려와서는 ‘아름다운 가게’에서 일 년 동안 봉사활동을 이어갔다. 움직이고 배우며 사는 삶이 내게 익숙하고 즐거운 일이었다. 그래서 육아도 그렇게 하려고 했다. 책으로 배우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육아는 책으로만 배울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감정은 활자가 아닌,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이었다. 나의 감정이 이해받지 못하면, 아이의 감정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이제야 배웠다.
이제는 설거지를 할 때면 유튜브 부모 교육 채널을 틀어놓고 반복해서 듣는다. 나의 내면이, 나의 사고가 천천히 바뀌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부모 교육 강사님이 하신 말씀이 늘 머릿속을 맴돈다.
“생각이 바뀌면 감정이 바뀌고, 감정이 바뀌면 행동이 바뀐다.”
나는 그 말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려 노력한다. 완벽하진 않지만, 작은 행동의 변화들이 오늘의 나를 만들고 있다. 그 변화들이 쌓여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더 따뜻한 엄마로 다가가게 만든다. 그리고 앞으로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아이를 통해, 책을 통해, 강의를 통해 나는 다시 나를 배우고 있다. 이 길의 끝에서, 내가 꿈꿔온 엄마의 모습에 더 가까워지길 그날을 그리며 오늘도 한 걸음 더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