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보다 따뜻한 한줄의 기록

by 고니비니SN

친구의 딸은 내 딸보다 세 살 어리다. 우리는 같은 동네에 살며 아이들을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보내고, 가끔 동네 브런치 카페에서 마주 앉아 육아의 고단함을 나누곤 했다. 그 시간은 하루 중 가장 소중한 쉼표였다. 엄마가 되고 나서야 진심으로 깨달았다. ‘남이 해주는 밥이 제일 맛있다’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니란 것을 말이다. 친구와 도란도란 수다를 떨며 먹는 브런치는 단순한 끼니가 아니었다. 마음까지 데워주는 따뜻한 위로였다.

육아는 생각보다 훨씬 더 고된 일이었다. 하루하루 쌓이는 피로는 체력을 갉아먹었고, 체력 저하는 곧바로 마음의 고갈로 이어졌다. 그때마다 짧은 브런치 한 끼가 나를 붙들어주는 유일한 시간이자 작은 숨통이 되어주었다.


아이의 첫 돌을 지나 처음으로 떠난 제주도 여행에서 동생의 권유로 인스타그램을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아이와 커플로 산 물건들을 올리는 소소한 기록이었다. 그러나 점점 남의 일상을 구경하는 재미에 빠졌고, 어느 순간부터 그들이 사는 세상이 부럽기 시작했다. 그들이 가진 것들이 나에게도 있어야 할 것처럼 느껴졌고, 그렇게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소비는 끝없이 이어졌다. 남편은 외벌이였다. 경제적으로 빠듯했지만, 말없이 나의 소비를 허락해 주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것이 그의 방식대로 나를 살리고 싶었던 마음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기 위해 펼쳤던 책 한 권이 나를 위한 책이 되었다. 육아서 속 문장 하나하나가 마치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 같았고, 책 속의 이야기들이 나를 토닥여주었다. ‘하은맘’의 [십팔 년 책 육아]를 통해 ‘책 육아’라는 세계를 알게 되었다. 인스타는 소비의 창구에서 책 정보를 찾는 통로로 바뀌었다.


책을 읽고, 서평을 쓰며 나의 일상도 조금씩 달라졌다. 글쓰기는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내 삶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러다 문득, 3년 전 인스타에서 스쳐 지나간 ‘브런치 작가’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처음엔 아침과 점심 사이의 식사쯤으로 여겼던 ‘브런치’였지만, 이제는 달랐다. 나도 내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 글로, 진심으로, 누군가에게 닿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브런치 작가가 되기 위한 문턱은 높았고, 다섯 번 도전해야 겨우 합격한다는 이야기에 시작도 하기 전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렇게 시간만 흘렀다. 그러던 중, 한 출판사에서 진행하는 서포터즈 챌린지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별 기대 없이 21일 습관 만들기에 참여했다. 단지 ‘채우기 위한 시간’이라고만 생각했던 그 챌린지는 뜻밖에도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매일의 작은 실천이 쌓여가자 마음도 조금씩 단단해졌고, 결국 리더로 활동하게 되었다.


리더로서의 시간은 내 안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과정이었다. 함께 습관을 만들고, 작은 성취를 쌓으며 응원하는 시간들 속에서 나는 글을 쓰고 싶어졌다. 리더의 혜택으로 브런치 작가 글쓰기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다. 총 3편의 글을 써야 했다. 서평만 써온 내게 긴 글쓰기는 막막하고 버거운 일이었다. 쓰고 지우 고를 반복하며 겨우 완성한 글을 제출했지만,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깊었다. 특히 함께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두 명이 모두 합격했다는 소식에 나는 무너졌다. 겉으로는 축하의 메시지를 전했지만, 마음 깊은 곳엔 질투와 자책이 뒤섞인 감정들이 남았다. 그 모습을 본 딸이 내게 말했다.


“엄마, 나는 엄마 글이 이 세상에서 제일 멋져. 그러니까 포기하지 말고 다시 한번 신청해 봐.”

그 말 한마디가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나는 다시 글을 다듬었고, 신청서도 전면 수정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다시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며칠 후, 믿을 수 없는 문구가 메일함에 도착했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눈물이 났다. 아이를 낳은 이후, 그렇게 기쁘게 소리를 질러본 적은 처음이었다. 남편에게 소식을 전하자, 그는 조용히 말했다.


“다시 용기 내줘서 고마워.”

브런치 작가로 합격했다는 것은 단지 글을 올릴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다시 나를 믿게 된 순간이었다. 오직 육아만을 바라보며 살아왔던 내가, 비로소 ‘나 자신’을 향해 내디딘 첫걸음이었다.

돌아보면 이 모든 변화는 책 한 권, 글 한 줄에서 시작되었다. 공허했던 마음은 책으로 채워졌고, 불안했던 감정은 글쓰기로 다독여졌다. 그렇게 나는 내 삶의 주인이 되었다.


이제는 안다. 브런치 작가란, 멋진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진심으로 마주하고, 그것을 기록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그 글이 누군가의 하루에 조용한 위로가 될 수 있다면, 나는 오늘도 브런치보다 따뜻한, 내 삶의 이야기들을 써 내려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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