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근린공원에 ‘불편한 음악회’라는 이름의 공연 플래카드가 걸렸다. 장기간 이어진 코로나의 터널 끝에서 마주한 첫 야외 행사였기에, 내겐 그 문구조차 벅차게 다가왔다. 더욱이 출연진 중에는 장윤정이 있었다. 아이가 유튜브로 ‘돼지토끼’ 노래를 수없이 따라 부르던 터라, 우리 가족 모두 기대에 들떠 있었다.
하원 후 우리는 근린공원으로 향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아이는 오랜만의 야외활동이 즐거운 듯, 공원을 뛰놀고 체험 부스도 들르며 자유를 만끽했다. 하지만 나는 저녁 6시 장윤정의 공연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딸아이에게 물었다.
"지금부터 자리 잡으면 장윤정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데, 댄스 수업을 빠지고 공연을 볼래? 아니면 수업을 마치고 와서 볼래?" 댄스를 좋아하는 아이는 망설임 없이 후자를 택했다.
수업이 끝나갈 무렵, 퇴근한 남편이 아이를 데리러 왔다. 딸은 허기진 얼굴로 밥부터 먹자고 했다. 우리는 공연장 인근 식당에서 서둘러 식사를 마쳤다. 그러나 공연장 앞에 도착하자, 이미 진입은 불가능할 정도로 인파가 몰려 있었다. 차에서 먼저 내린 딸과 나는 입구에서부터 밀려드는 인파 사이를 비집고 서 있었다. 다행히 전광판에 가수들의 모습이 보여서, 나는 딸에게 말했다.
“여기 전광판 보면 네가 좋아하는 장윤정 언니 얼굴 볼 수 있어. 우리 여기서 같이 보자.”
그러나 아이는 대답도 없이 앞으로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나는 아이에게 고함쳤다.
“여기서도 잘 보이는데, 왜 자꾸 엄마 말 안 듣고 앞으로 가는 거야?”
내 말에 아이는 울먹이며 말했다.
“엄마, 나는 앞이 하나도 안 보여. 내 앞엔 다 어른들 머리뿐이야...”
순간 나는 답답한 마음에 되물었다.
“전광판에 다 보이잖아. 넌 왜 안 보인다는 거야?”
결국, 아이는 내 말에 고개를 떨구고 다시 내 옆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조용히 말했다.
“엄마, 아빠가 빨리 왔으면 좋겠어. 아빠가 나 목마 태워주면 장윤정 언니 얼굴 볼 수 있을 텐데. 엄마는 허리 아프니까 안아줄 수도 없잖아…”
그 순간, 아이의 말이 가슴을 찔렀다. ‘보이는데 왜 안 보인다는 걸까?’ 문득 나는 무릎을 굽히고, 아이의 시선까지 내려가 보았다. 그제야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아이의 눈앞엔 온통 어른들의 등과 머리, 그리고 암흑뿐이었다. 전광판도, 무대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답답하고 막막한 시야뿐이었다. 그제야 아이가 했던 모든 말이 진심으로 다가왔다.
나는 왜 아이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을까? 왜 내 기준으로 아이의 경험을 판단했을까?
그 순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아이는 갑자기 눈물을 보이는 엄마의 눈물을 고사리 같은 작은 손으로 닦아 주었다. 믿어주지 않는 엄마, 아이의 말을 귀 기울이지 않은 엄마. 아이의 마음엔 내가 만든 ‘암흑’이 펼쳐져 있었던 건 아닐까?
잠시 후 남편이 도착했고, 아이는 아빠 어깨 위에 올라탔다. 세상을 다 가진 듯한 얼굴로, 해맑게 웃으며 장윤정의 노래를 따라 불렀다. 그 순간, 나는 또 하나의 진실을 마주했다. 아이는 자신의 감정과 상황을 끊임없이 표현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어른이라는 이유로 내 시선과 기준으로 그것을 판단하고 해석했다.
엄마의 시선으로 본 아이는 불안하고, 때론 미성숙해 보인다. 그러나 엄마인 나 또한 완전한 존재가 아니다. 나 역시 실수하고, 아이의 마음을 오해하고, 때론 그 마음을 놓치기도 한다.
오늘도 나는 아이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바라보려 애쓴다. 아이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믿어주고, 그 마음에 귀 기울이는 엄마가 되기로 다짐한다. 아이는 지금 이 순간에도 온몸으로 나에게 세상을 가르쳐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