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에 찾아온 가장 소중한 책임

by 고니비니SN

법 없이도 살 수 있을 만큼 규칙을 잘 지키며, '착한 아이'로 살아온 시간이 벌써 40년이 흘렀다. 누가 보지 않아도 신호등 앞에서는 손을 들고 천천히 걸었다. 쓰레기는 꼭 쓰레기통에 넣으며, 어른을 보면 먼저 인사했다. 숙제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해내던 아이, 심지어 아파도 학교는 꼭 가야 한다는 신념을 지녔던 아이가 바로 나였다.


그런 나의 마음속엔 늘 '책임감'이라는 단어가 또렷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규칙을 어기면 마땅히 감당해야 할 벌이 있었고, 예의 없다는 소리를 듣기 싫다는 마음과 불편한 감정을 회피하고 싶다는 이유가 결국은 '스스로를 지키는 책임감'으로 이어졌다.


어른이 되어 사회인이 되고, 엄마가 되면서 나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단어는 여전히 ‘책임감’이었다. 자기소개서에 늘 쓰던 문장처럼, "책임감 있는 사람입니다. 믿고 맡길 수 있습니다." 나는 스스로를 책임감이라는 틀에 맞춰 살아왔다. 그리고 맡은 바는 늘 최선을 다해 해냈다. 그런 나에게 스스로도 뿌듯함을 느꼈다.


하지만 그 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들,
“이렇게까지 해야 하니?”

“넌 안 힘들어?”

“정말 이게 네가 원하는 삶이야?”
그 질문들은 늘 조용히 무시한 채 선택한 길에 대해 묵묵히 책임을 다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를 갖게 되며 그 믿음은 완전히 무너졌다. 다니던 회사는 규모가 있었고, 출산휴가 3개월이 보장된 곳이었다. 선배들이 임신 막달까지 일하고, 출산 후 복직하는 모습을 보며 나 또한 그렇게 하리라 마음먹었다. 하지만 인생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임신 초기부터 찾아온 하혈로 결국 10개월 중 7개월을 침대에서 누워 보내야 했다. 그 시간 동안 ‘건강하게 출산하는 것’만이 내가 지켜야 할 유일한 책임이라 여겼다. 매일이 죄책감과 걱정으로 가득했다. 다행히, 내 노력과 기도가 닿았는지 아이는 건강하게 태어났다. 하지만 그 이후가 더 힘겨웠다.


회복되지 않은 몸, 잠 못 이루는 밤, 반복되는 모유수유와 기저귀 갈기, 이유식 만들기. 마치 배터리를 장착한 기계처럼 움직였다. 어느 날 그 배터리는 멈췄다. 딸의 회복을 위해 매일 왕복 두 시간을 오가시던 친정엄마가 팔목을 다쳐 올 수 없다는 전화 한 통에, 절망이 밀려왔다.


아이와 단둘이 남겨진 시간. 아이가 울어도 미동조차 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앉아 있는 나.

책임감으로 살아왔던 내가,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에 처음으로 무력해졌다.


하지만 결국 나는 도망가지 않았다. 아이의 울음소리에 다시 정신을 차리고 아이를 안아 올렸다. 그 순간 아이가 웃었다. 그리고 나는 울었다. 그 웃음과 눈물이 겹쳐진 순간, 나는 어렴풋이 ‘엄마’라는 존재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날, 처음으로 깨달았다.
세상에 나보다 더 중요한 존재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 사실은 두려움이자 동시에 가장 크고 따뜻한 책임감이었다. 엄마라는 옷은 아직도 나에게 조금 헐겁지만, 점점 나에게 맞춰지고 있다. 완벽주의자였던 나는 이제 완벽하지 않은 나를 인정하며, 제법 ‘엄마 흉내’를 낼 수 있는 지금의 나에게 작은 미소를 보낸다.


엄마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책임감은 때로 나를 짓누르기도 하지만, 결코 놓고 싶지 않은 삶의 무게라는 것을 말이다. 지치지 않기 위해 나만의 속도도 배워가고 있다. 완벽한 부모는 세상에 없지만, 사랑하고 믿으며 끝까지 함께하는 부모는 있을 수 있다는 것도 말이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아이와 함께 성장 중이다. 그때의 ‘책임 있는 선택’ 덕분에 지금도 행복한 책임감을 품은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 여정에 함께 해준 아이와 남편, 친정엄마에게 오늘도 진심으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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