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전, 이사 온 집 앞에는 강변 산책로가 있었다. 숲길과 바닷길로 나뉜 그 길은 마치 내 삶 한편에 준비된 작은 쉼터 같았다. 자연이 주는 고요와 평안이 그대로 담긴 공간이었지만, 그 좋은 곳도 마음의 여유가 없으면 그림의 떡일 뿐이었다.
허리가 아팠다. 육아에 지쳐 있었고, 몸도 마음도 무거웠다. 통증은 일상이 되었고, 운동으로 치유하겠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그저 현실을 한탄하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그러다 병원에서 들은 의사의 한마디.
허리디스크에는 “걷기와 수영이 좋습니다”
그제야 눈앞에 늘 존재하던 산책로가 생각났다.
아침에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신호등 하나를 건너면 강변 산책로가 이어졌다. 나의 걷기 인생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바다를 바라보며 멍하니 걷기만 했다. 바닷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머릿속 상념들이 흩날렸다. 마음속에 얽히고설킨 불편한 감정들을 바다로 날려 보내고 싶었지만, 그 감정들은 쉽게 떠나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에는 숲길을 택했다. 새소리가 길동무가 되어주었다. 이름 모를 풀잎들이 반갑게 나를 맞아주었다. 어떤 날은 개구리들의 합주에 나도 모르게 어깨가 들썩였다. 그렇게 걷고 또 걸었다.
걸으며 마주한 것은 세상보다 먼저 나 자신이었다. 뾰족하고 날카롭던 내 마음은 걷는 시간 속에서 조금씩 둥글게 다듬어졌다. 그 시절 나의 가장 큰 고민은 몸의 고통과 육아였다. 회복되지 않을 것 같은 통증 속에 스스로 불쌍한 존재라 여겼다. 아픔의 원인을 아이에게 돌리려 했던 나를 용서하기 힘들었다. 가끔은 ‘엄마’라는 이름보다, 단지 고통 없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앞섰다.
그렇게 3년을 걸었다. 바다는 늘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려주었고, 숲은 사계절을 함께 건너며 내 곁을 지켜주었다. 걷는 시간은 점점 후회를 긍정으로 바꾸는 힘을 주었다. 엄마로서 책임감과 엄마이기 이전에 나 자신을 찾고 싶은 열망이 마음속에서 수없이 부딪혔다.
걷기가 익숙해지자, 이어폰을 끼고 유튜브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육아, 학습, 동기부여, 자기 계발 등 다양한 주제를 찾아들었다. 처음엔 낯설고 어려웠지만, 내가 몰랐던 분야를 하나씩 알아갈수록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육아도 ‘배워야 하는 것’ 임을, 나는 그때서야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아이를 돌보며 잊고 있었던 ‘배우는 기쁨’이 다시 살아났다. 걸으면서 들은 이야기들이 내 마음에 씨앗처럼 박혔다.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들이 조금씩 쌓여갔다.
아이도 자라며 나의 체력을 조금씩 덜어주었다. 먼 미래라고만 생각했던 현실 속에서, 나를 지탱해 준 건 걷기였다. 산책은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나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이었다. 그 시간 속에서 나는 내 안에 숨어 있던 열망과 열정, 그리고 진실을 마주할 수 있었다.
걷는다는 것.
그것은 나를 되찾는 일이었다. 누군가의 엄마로, 누군가의 아내로 살아가느라 잊고 있던 ‘나’라는 존재를, 걷는 시간 속에서 다시 발견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걷는다. 바다와 나무, 새들과 함께, 그리고 이제는 지식과 성장이라는 또 다른 친구들과 함께, 나를 향해 한 걸음씩 내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