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 생각한다.
엄마의 발목을 붙잡고 놓지 않았던 아이가 바로 나였다.
숱한 반대에도 나를 지키고자 했던 엄마의 삶은, 내 눈엔 그저 불행하게만 보였다.
엄마의 불행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던 나는, 결국 외면했다.
그렇게 등을 돌린 나는 엄마에게 친절하지 못한 딸이었다.
내 말과 표정은, 엄마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이렇게 키울 거면 왜 날 낳았어?”
목이 터져라 울부짖던 내 모습을 바라보며, 엄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자신과 맞바꾼 딸이 처절하게 자신을 원망하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엄마 앞에서,
나는 죄책감조차 느끼지 못한 채 차갑게 돌아섰다.
그때 나는 어려서 몰랐다.
엄마도 누군가의 딸이었고, 나처럼 상처도 많고 소망도 많았던 한 사람이었다.
매일 삶 앞에서 버티며 살아가는 한 인간이었다.
어릴 적, 내게 부모는 ‘산’ 같았다.
든든하게 나를 지켜주는 존재이자, 감히 넘을 수 없는 두려움의 상징이었다.
엄마는 날이 갈수록 아빠에 대한 하소연이 많아졌다.
하지만 바뀌지 않는 아빠를 끝까지 믿고 싶어 했던 엄마의 마음이 어린 나에겐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아빠가 술을 마시지 않는 날엔 엄마 얼굴에 웃음이 피었다. 하지만 술을 마신 날엔 세상에서 가장 가련하고 비참한 여인이 되어 있었다. 그 모습을 반복해서 지켜보며 나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나는 절대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말이다. 그런 나에게 어느 날 엄마는 조용히 말했다.
“너는 하고 싶은 거 다 하며 살아. 엄마는 그러지 못했어.
엄마는 그냥 바람이 되고 싶다. 정처 없이 여기저기 떠돌고 싶어.”
그 말 한마디에 담긴 체념은, 자신의 삶을 가족을 위해, 아니 정확히는 삼 형제를 위해 포기했던 엄마의 고백이었다.
아빠는 가족을 위해 몸이 부서져라 일했지만, 끝내 가족이 그토록 원하던 술은 끊지 못했다.
책임감으로 쌓아 올린 그의 인생은 결국 술로 무너졌고, 그 무너짐은 가족의 실망으로 이어졌다.
나는 그런 아빠가 안쓰러웠다. 그러면서도 다시금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나는 자식에게 나를 다 내어주며 살지 않겠다고.
남편에게 나를 맞춰가며 살지도 않겠다고.
내 삶은 나 스스로 지켜내겠다고 말이다.
그러나 결혼을 하고, 아내가 되고, 아이의 엄마가 되고 나니, 그 다짐은 너무도 쉽게 무너졌다.
하나부터 열까지 내 손을 필요로 하는 작고 여린 생명을 마주하니, 그동안 내가 부정하고 외면했던 엄마의 삶이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나는 혼자 자란 게 아니었다. 누군가가 나를 위해 밤을 지새우고, 울고 웃으며, 자신의 시간과 생을 나에게 건네주었기에 지금의 내가 존재하는 것이었다.
그제야 엄마가 떠올랐다.
그날, 차가운 내 말에 상처받고 멍하니 서 있던 엄마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이제는 알 것 같다.
엄마도 나처럼 살아냈다는 것을 말이다.
그저 자신의 방식대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매일을 견디고, 버텨냈다는 것을 말이다.